레미제라블 세트 - 전5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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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장 발장' 으로 더 알려진 <레 미제라블> 은 고전 중에 고전으로 다양한 버전(책 제목도 다양하거니와 번안본 다이제스트본등 출판 형식도 다양합니다)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더랬죠. 제 기억에도 학창시절에 축소 요약된 문고판 혹은 시험용으로 전체 줄거리만 써머리된 페이퍼 형식으로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네요. 그러다 보니 사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아니 <장 발장> 에 대한 감흥은 그리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아주 판에 박힌 권선징악적인 결말과 교훈적인 울림은 <백설공주> 와 같은 우화 비슷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원작이 이렇게 방대한 내용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거든요.(하긴 그 동안 클래식을 접하면서 다소 놀라는 부분들이 바로 이런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알고 있다고 혹은 읽어 봤다고 생각했던 유명작들을 막상 대면할때 느끼는 부분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처음 출발은 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로 시작하지만 작품속에 들어가게 되니 정말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게 합니다. 그리고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속으로 빠져들면서 절로 무릎을 치게 만들고 '아하' 라는 감타사를 연발하게 만드네요.

 

  자 그럼 <레 미제라블> 의 세계로 한번 들어가보죠. 주의할 점은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주절주절 서평도 길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구요. 이 점은 나름 빅토르 위고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 표명이라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음 도저히 간단하게 줄여서 리뷰를 올릴 자신이 없더라구요. 아마도 저의 무지와 능력의 부재이지 않을까라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런 말투도 위고를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참 깜박했는데 전제가 있네요. 지금까지 레 미제라블을 장 발장이라는 문고판 내지는 축소 번안판으로 읽은 독자들 그러니까 완역 작품을 대하지 못했던 독자들 이라면 더 공감되지 않을까 싶네요.

 

▣ 첫 도입부는 정말(물론 저한테 해당됩니다) 지루하고 약간의 짜증을 동반합니다. 아~ 고전이라는 이런 것 인가 하는 생각 예전에 그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생각들(저한테는 솔직히 이게 뭐야라는 느낌이 더 강했고 5권을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로 시작됩니다. 그래도 일단 고전이니까 참아가면서 읽어 나가다 보면 그 이름도 익숙한 우리의 주인공인 장 발장이 등장하면서 내러티브의 속도와 긴장감이 급상승 하기 시작하네요. 뭐 대부분의 유럽 소설들이 그렇지만 이번 작품은 유독 인물에 대한 설명이 마치 엑스레이로 투과하듯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세세하게 설명되고 있어 정말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작품 전반에 걸쳐 투영되어 있어 등장 인물들의 숨소리를 듣는 듯한 사실감을 증폭시켜 준다는 점에서 위고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다소 반복되고 있어 약간은 지루한 맛도 있지만요. 워낙 인물 묘사에 대가인 점 인정치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내러티브(여기까지는 예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가 갑자기 샹 마티외 재판을 계기로 돌변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유명한 장 발장이라고 까발리는 마들렌 시장의 고백은 재판장과 판,검사 그리고 배심원과 방청객을 당황케 하는 만큼 독자들도 상당히 당황하게 한다는 것이죠(음 대충 작품의 분량을 미루어 짐작해 봐도 아니 왜 이렇게 초장에서 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뭐 이런거 있지 않습니까. 어디선가 대충은 본 듯한 현상이 데자뷰되는 듯 한데 왠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들. 물론 그 동안 알아왔던 레 미제라블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모른체 말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도입부를 건너가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게 되죠.

   

   그런데 2부에 들어서면 또 다시 한번 더 작품의 분위기가 확 돌변합니다(이거 왜 항상 초입부에 이런 설정을 해 놨는지 도통 모르겠지만요). 약간 생뚱 맞다고 할까요(물론 전 작품의 분량에 비해선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요) 막상 작품을 대하는 독자의 눈에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게 하죠. 갑자기 등장하는 워털루 전투와 다시 권력을 잡는 부르봉 왕가등 당시 프랑스, 유럽의 역사가 서사되면서 우리의 장 발장은 귀퉁으로 밀려납니다. 특히 워털루 전투의 발발과 전개 그리고 결말에 이르는 서사는 카이사르의 내전기 이후 가장 전쟁을 제대로 묘사한 부분으로 남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책을 읽는 내내 화약냄새와 포성과 병사들의 함성을 느낄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묘사가 1부 도입부에서 주교에 대한 묘사에서 눈치는 챈 독자라면 아 이 양반의 주전공임을 알아채게 합니다. 이러한 스트럭쳐는 3, 4, 5부로 가면 갈수록 독자들이 넘어서야할 무거운 담론과 서사의 시초라는 점, 그리고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문학작품인지 정치,역사 혹은 시대 평설인지 아리까리 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생각외로 진도가 팍팍 나가질 않습니다. 근데 이런 구조가 은근히 시선을 붙들어 매고 있다는 점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 작품 전체적인 내러티브 진행중에 군데 군데-아마도 어떤 독자들은 짜증낼 만큼 장 발장에 빠져들려면 등장하고 불쑥 머리를 들이대는 위고의 너스레라고 할까요. 생뚱 맞는듯한 또 다른 부연 설명들 마치 굳이 그렇게 친절하게 서사를 하지 않더라도 전체 내러티브를 이해하고 읽어나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듯 한데 -예를 들어 워털루전투의 상세묘사, 베르나르 수도원, 파리시내의 하수도의 구조도와 연혁, 공화제와 왕정의 비교 검토, 내란과 외란의 차이점(특히 4부는 분량도 가장 많은데다 정치적인 담론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더욱 더 진도 빼기가 힘듭니다)- 오히려 이런 카메오 같은 서사들이 내러티브 전반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등장들이 작품의 진정한 맛과 이해와 더불어 독자들로 하여금 그 장소, 그 시대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장 발장을 위주로한 소설부분만 도려내더라도 제법 훌륭한 평설을 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빅토로 위고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장치적인 구조가 상호 보완 역활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작품의 가치를 배가 시킨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네요.

 

▣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가장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담론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전중에 고전작품이기에 그럴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되지만 만약에 이러한 담론들이 일률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사되고 있다면 어디 문학작품이겠습니까 그저 바이블 같은 느낌의 수양록이 되겠죠. 하지만 빅토르 위고는 당시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아노미 상태에 빠져있는 시대상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담론들을 내러티브에 녹여 놓았다는 자체가 독자들에게 정형화되거나 진부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여기에 자신의 전공인 인물과 장소, 지리, 사물(심지어 깨진 그릇에 이르기까지요 정말 엄청납니다)에 이르는 세밀한 묘사는 문학적인 작품성을 높이고 등장인물들과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정과 효과는 이 작품 자체를 읽는 것 만으로도 마치 눈 앞에 펼쳐지는 스크린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생생한 현장감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고전작품과는 사뭇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별도의 각색없이 그 대로 원작을 차용하더라도 훌륭한 영상과 뮤지컬이 탄생할 수 있을 만큼 빅토르 위고섬세하고 치밀함을 볼 수 있습니다. 마르틴 베르가의 분원인 베르나르 교단의 수녀원의 건물 모습을 묘사하는 과정을 보게 되면 정말 문손잡이, 벽지의 문양과 색깔, 창틀의 구조, 마루바닥의 흠집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세세한 묘사를 하고, 파리 전역의 거리, 그 거리에 있는 상점과 건물들 그리고 그 거리를 활보하는 인물들의 표정과 옷차림(특히 위고는 이러한 인물들의 겉모습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심리상태까지 연상케 한다는 점은 가히 압권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건물들의 배치와  등등 이러한 면을 통해서도 가히 완벽한 영화의 시나리오와 뮤지컬의 극본에 걸맞는 무대효과를 설치하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 위고는 작품 전반을 통해서 제목에 걸맞는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 즉 당시 대다수의 프랑스 민중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혁명과 제정 그리고 왕정의 복고와 다시 맞은 혁명등 프랑스의 정치 사회는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좌와 우, 위와 아래를 번갈아 왔다갔다 했지만 정작 민중들에게는 특히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겐 그저 무의미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쪽의 서사(역사 평설)는 당시 정치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다른 한 쪽의 서사(소설작품)는 그저 그와는 별개의 세상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민중들의 비참한 이야기의 근원이 바로 정치였다는 점을 은근히 비꼬는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도 한 몫 거들고 있고요.

 

  정말 엄청난 大作을 만났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대작일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고요. 그저 몇 마디 말로만 표현하는 그런 대작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대작이자 명작입니다. 소설가 백영옥은 "고전이 재밌다 라는 말은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그건 마치 뜨거운 욕탕에 들어앉아 '어! 시원하다' 라는 아버지의 거짓말과 일맥상통한다." 고 했습니다. 이런 고전의 정형이 바로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요? 그 동안 한 쪽의 서사만을 다룬 간략한 번안이나 다이제스트본으로 접해왔던 <레 미제라블> 은 잊어야 할 것 같네요. <장 발장> 이 아닌 <레 미제라블> 의 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왠지 이 엄청난 명작을 읽고도 초라한 서평으로 댓가를 갈음하는 제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Tip 1.) 분명하게 문학작품임에 틀림없어 보이지만 정말 냉혹한 시선으로 바라 보면 역사평설과 문학소설이 혼합되어 있는 유니크한 스트럭쳐를 지니고 있습니다. 분명 문학적인 측면만 놓고 봐도 압권이지만 평설적인 부분 역시 빼어난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마지막 왕 루이 필리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아마도 자신이 2월 혁명을 계기로 왕당파에서 공화파로 전향하면서 "혁명은 바로 반항의 반대이다, 혁명은 훼손되더라도 지속되고 피투성이 되더라도 살아남는다 혁명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존재한다" 라는 서사가 자신의 공화파 전향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마리우스라는 청년을 내세워 자신의 사유를 보여주지만 질노르망 영감의 역활 역시 상당히 위고의 사유가 잔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번 작품은 필히 프랑스의 근대사를 한번 확인하고(2월, 7월 혁명등 뭔놈의 혁명이 많습니다) 읽어나간다면 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Tip 2.) 4부 7번째 챕터의 '결말' 이라는 장에서 위고는 당시 민중들 즉 레 미제라블이 사용하는 비어, 속어에 대한 별도의 장을 마련하여 곁말의 어원과 형식 그리고 사용처 등 상당히 고급스러운 언어학자다운 고찰을 보여주는데요. 이 갑작스러운 등장은 독자들을 다시 하번 당혹하게 하지만, 앞 뒤 면밀히 생각해보면 작품과 연계해서 더 부각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듯 <레 미제라블> 속에는 예상치 못한 서사들이 카메오 출연 같이 상당히 많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들이 장 발장을 비롯한 당시 프랑스 민중들의 삶을 보충하는 역활을 하고 있고요. 이런 점 같이 음미하면서 읽는다면 한층 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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