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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평점 :
<하얀 성> 은 오르한 파묵의 세번째 작품이면서 전작인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고요한 집> 과는 사뭇 다른 스트럭쳐와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파묵은 두 작품을 통해서 신생 터키공화국의 성립과정과 그 과정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질곡의 근현대사를 가족사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작품 <하얀 성> 역시 그렇지만 차이점이라면 기존의 작품들은 터키(동양)의 관점에서 서구(서양)의 이데올로기나 담론이 충돌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촛점을 맞추었다면 <하얀 성> 은 서구의 시각에서 터키(동양)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지는가에 대해서 촛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스트럭쳐면에서도 액자구조 형식을 취해서 파묵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배제한 듯한 뉘양스를 주어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양측의 담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물론 강한 부정이기도 하지만요)
<고요한 집> 에 등장했던 파룩- 파묵 자신을 지칭하죠-이 게브제군 기록보관서에서 발견한 17세기의 고문서를 책으로 출간하는 형식을 빌려 시작되는 단순하게 '서로의 삶을 바꾼 두 사람의 이야기' 같지만 그 내면은 개인의 정체성 발견을 넘어서 동서양간의 담론의 수용과 이해 그리고 발전에 관한 문화간의 충돌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은 앞의 두 작품에 비해서 상당히 난해하고 심오한 담론을 다루고 있는 다소 무겁고 어려운 작품입니다. 솔직히 작품의 분량에 비해서 진도도 그리 팍팍 나가지 않고 뭔가 곱씹어 보게 하는 작품으로 '나는 왜 나인가' 라는 극히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정체성의 문제와 동서양 이데올로기이라는 거대한 담론까지 같이 결부되어 고뇌의 폭을 사정없이 확 넓혀 버리기 때문에 만만하게 접근했다가 다시 리셋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 할 정도로 심오함 그 자체를 보여주네요. 음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움직일 수 없는 수렁속으로 자꾸 자꾸 빠져든다고 할까 마치 주위에 빛나는 불빛이란 불빛는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블랙홀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게 합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나(서양을 대변하는) 와 그('호자' 동양을 대변)- 이 두 사람은 서로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상대방)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못하기도 합니다- 의 관계성 및 호칭등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왔다갔다하고 있고 동서양의 담론들과 개인적인 정체성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독자들의 눈을 혼란케 하네요. 상당한 인내심과 집중력을 가지지 않고 대한다면 대체 뭔 내용인지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이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파묵의 전작인 두 작품을 대하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더욱 더 파묵의 서사가 상당히 낯설고 난해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우려도 되고요.
개인적으로 왜 오르한 파묵이 노벨상을 수상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게 하는 작품이 바로 <하얀 성> 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물론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해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통해서 동서간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노예와 주인간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단순한 지식을 공유하는 협력자의 관계로 그리고 나아가 인생의 동반자와도 같은 형제애 나, 너의 경계가 없이 내가 너이고 너가 나인 동심체로서의 이해, 반복적인 표현이지만 '나'(서양)의 관점에서 그리고 위주로(혹은 주연으로) '호자'(동양)를 바라보지만 결국 서양과 동양이 서로 다른 '나' 와 '너' 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같은 모습의 '나' 와 '너' 라는 인식 '나는 왜 나인가' 라는 개인적 정체성에 대한 담론 역시 위와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음을 서사하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 인식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더욱 더 혼란스럽고 어렵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결국 이 두 가지가 별개로 존재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 있죠.
다 아시다시피 터키 그 중에서도 이스탄불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충돌점이자 접점의 위치에 놓여 있죠. 그리고 종교를 포함한 문화의 충돌이자 접점으로 동서양이 혼재에 있는 세계유일의 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파묵이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에 영향을 받은점도 있겠지만 파묵처럼 양대문명과 문화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고민 그리고 이러한 사유의 서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런면에서 이번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크고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동서양 담론과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파묵은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에서는 방대한 시간과 공간속(거시적인 시각에서)를 다루었다면 <고요한 집> 은 상당히 협소한 범위 속으로 담론을 끌어들였고 <하얀 성> 와서 앞의 두 작품을 바탕으로 동서양과 개인들의 정체성이 완결되고 이해해될 수 있는 최종판을 선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이 세 작품은 향후 파묵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결정적 기반이 될 것이고 기본 뿌리로서 작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비쳐보네요.
전반적으로 <하얀 성> 은 파묵의 기존 두 작품과 비교해 볼때 스트럭쳐면에서나 내러티브면에서 색다른 요소가 가미된 작품입니다.-그래서 살짝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기도 하죠- 물론 두 작품의 기본적인 베이스처럼 내러티브 근저에는 동서양 패러다임이라는 거대한 담론과 개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지만 앞의 두 작품이 동양적인 관점에서 그 해결방안을 제시했다면 이번 작품은 양측의 시각을 다 담은 보다 객관적이고 현실성 있는 주제를 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분량은 가볍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심오하고 어렵게 다가 오네요. 그래서 그런지 한번만으로는 제대로된 맛을 느끼기게 저 개인적인 역량이 뒷받침 하지 못한다는 점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이런 점 물론 독자들 마다 편차는 있겠지만요- 그래도 이런 다루기 힘들고 해답을 구하기 만만치 않는 주제를 가지고 풀어가는 파묵의 필력에 절로 감탄사가 나올 뿐입니다.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이 방대한 시간과 공간속를 다루었다면 <고요한 집> 은 상당히 협소한 범위 속으로 담론을 끌어 들였고 <하얀 성> 앞의 두 작품을 바탕으로 동서양과 개인들의 정체성이 완결된 모습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