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6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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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유명 작가의 처녀작을 접한다는건 약간의 설레임을 가져다 줍니다. 특히나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더할나위 없는 설레임이 앞서기 마련이죠.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는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오르한 파묵의 처녀작으로 이번에야 국내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하마평과 함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겠습니까(그 동안 오르한 파묵의 매니아들이나 난생 처음 오르한 파묵을 접하는 독자들 모두 다 처녀작이라는 것 만으로도 호기심의 대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두갈래의 극명한 반응이 있으리라 여겨지네요. 한쪽은 이미 파묵의 작품세계를 경험했던 측의 반응일 것이고 또 다른 측은 처음으로 파묵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층이겠죠. 그래서 솔직한 심정은 약간의 우려감도 드네요. 이미 파묵의 작품을 접했던 독자들이라면 '아~~ 역시 파묵답다' 라는 느낌이 먼저 들 것이고 처음 파묵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들이라면 '뭐야~~ 기대만큼 별 것 없는데' 라는 상반된 느낌을 줄 수 도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그동안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접했던 입장으로 이번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의 느낌을 말해보겠습니다. 뭐 항상 파묵의 작품을 접할때 마다 가지는 느낌중에 하나인데요, 좀 극단적인 표현을 하자면 얼마전에 읽었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 라는 작품과 극명하게 비교됩니다.(굳이 제노사이드말고도 이와 유사한 장르의 작품들) 제노사이드는 상당히 빠른속도로 읽었갔습니다. 워낙 엔터테이먼트적인 요소가 짙은 이유도 있었지만 그 결말을 하루라도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속도가 났던 것이지만 파묵의 작품은 이와는 사뭇 다르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결말이 그러니까 책을 읽는 동안 언제가는 들어나겠지만(그리고 그 결말 또한 그리 파토스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왠지 하루라도 늦게 알고 싶은 심정에 속도가 더디게 흘러가고 그런 더딘 시간만큼 그의 작품속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위안(그러니까 작품을 대하는 내내 어디쯤에서 한번의 극적인 반전이 올까 내지는 결말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라는 생각 자체를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그저 작가가 서술에 나가는 방식대로 읽어간다는 말이 맞을것 같네요. 물론 개인적으로 봐서 파묵의 작품에서 극적인 반전이나 결말을 기대하기란 힘듭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게 없습니다. 고작 <내 이름은 빨강> 정도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여타 다른 작가에 비하면 명함을 내밀기엔 부족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묵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이유가 바로 그런 위안이 아닐까라는 생각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을 받는 그런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이 파묵의 작품 세계이고 그의 작품에 끌리는 매력인 것 같습니다.  

 

故박경리선생의 <토지>를 연상케 하는 한 가족의 가족사를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전개해나가는 방식의 작품입니다. 그러다보니 역사소설와 개인사를 동시에 혼합한 구조의 대하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다만 <토지> 와는 다른 구조를 보이는 것은 크게 30년 단위를 주기로 칼로 무를 자르듯이 토막내서 내러티브를 끌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바로 요런 스트럭처가 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터기에 대한 전반적인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라면(뭐 전공자 내지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다 해당되니 그리 걱정할필요도 없지만요) 인터넷포탈 싸이트의 터키역사를 PC창에 띄어놓고 읽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처음 프롤로그에 이어 2부초반에서 다소 벙찐 느낌(30년이라는 세월에 대한 일체의 서비스가 없다보니 다소 혼란스럽네요)이 먼저 듭니다. 하지만 내러티브를 쫒아가는데는 별다른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도 파묵의 전략적인 부분일 것이고 비록 비터키인 아니더라도 충분한 이해가 될 정도로 제브데트씨 일가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는 아무런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동양화에서 느끼는 '여백의 미' 가 바로 이러한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또한 만약 65년이라는 세월을 연대순으로 나열하는 방식의 구조를 채택했다면 아마도 작품의 매력이 한참은 반감되지 않았을까라는 느낌도 드네요.

 

이러한 공백은 다양하게 독자들의 상상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프롤로그에서 1부로 넘어가는 과정에 대한 독자들의 약간의 관심도 과감하게 저버리고 바로 30년이라느 세월을 훌쩍 넘겨버린다. 그 과정에서 제브데트는 과연 결혼했을까? 결혼했다면 파샤의 딸인 니갼과 했을까(사실 이부분이 가장 흥미롭게 독자들을 자극하죠. 왜냐하면 프롤로그에서 은근히 형의 여인인 '마리' 의 등장이 애사롭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2부에서 '귈레르' 역시 레피크와 연관성이 비슷한 뉘양스를 비치고 있죠. 근데 이 역시 파묵의 작품답게 이런 상상들 그저 독자의 몫으로 돌려놓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오스만제국의 붕괴 과정을 포함한 일련의 역사적 변혁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물론 누스레트, 푸아트의 생각으로 그렇게 진행될 것라는 뉘양스를 주고 있기는 하죠) 하여튼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미시적인 한 가족의 가족사와 보다 거시적인 국가민족의 근현대사를 접목시켜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터키의 지정학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죠. 동서양 가치관의 혼돈과 발전이라는 패러다임과 국가민족중심의 패러다임의 충돌이 개인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부분들(향후 파묵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저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구요)은 마치 우리의 근현대사와 유사한 부분을 많이 보여주고 있어 공감되는 부분들 또한 상당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끌리는 내러티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2부에서 거론된 '국가' 의 존재와 역활부분은 우리의 1960-70년대 상황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도 깊은 사유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렇듯 파묵은 가족사을 통해서 터키의 근현대사를 아우르고 있는 가치관의 혼란과 그 정점에 서 있었던 지식인들의 고뇌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어 무게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게감을 의도적으로 대놓고 어필하는 방식이 아닌 각 개인들의 심리묘사에 녹여 놓아서 적절한 균형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배려부분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로 눈여겨 볼 만한 장면도 여럿 있네요 '카다이프', '돌마' ,'뵈렉' ,'라크'(라크는 정말 한잔 먹어보고싶네요)등 터키 전통음식과 술들이 줄줄이 등장하죠 뭐 이런 기회니까 다른 세상의 음식도 한번 맛간을 통해서 구경할 수 있고 하여튼 구미를 당긴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셰의 약혼식 장면은 마치 8mm 비디오 카메라로 영상을 담는 듯한 묘사가 일품입니다.(존 맥그리거의 선명하고 상세한 CCTV HD 중계와는 사뭇 맛이 다르지만 오히려 구식 비디오의 영상이 더 정감있게 다가옵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작품은 가족사와 근현대사의 경계선에서 묘한 유사성과 상호보완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가벼움(개인가족사)과 무거움(국가역사)이 교차하면서 향후 파묵의 작품에 근간이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또한 작품속 등장인물들의 고뇌가 그리 이질적이 않는 것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살아왔던 이들과 일맥상통한다는 느낌도 강하게 받게 하는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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