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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브 연락 없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0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참으로 특이한 형식과 내용의 작품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특히 이 작가의 전작 두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더욱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문학장르상 SF계열의 작품인 것 같기도 하고 팩션이 강한 역사소설류 같기도 하면서 인간의 심리나 사회풍자를 다룬 유머러스한 풍자물 같기도 하니 딱히 '이거다' 라고 정의 내리기 힘든 작품입니다. 특히나 2012년 런던 올림픽이 끝난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 언덕을 질주하던 바로 그곳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직전에 앞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라서 그런지 왠지 에스파니아문학 치고는 낯설지 않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캐나다의 민족 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여사에 버금갈 정도로 향토성이 짙은 스페인 문학의 대표주자인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구르브 연락 없다> 가 묘한 경계선을 왔다 갔다는 하는 바로 이 작품입니다. 멘도사의 전작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번 작품 역시 친숙하게 다가올 것으로 보이네요. 스페인 그중에서도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다지 낯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으로 접하는 독자들이라도 내러티브 자체가 멘도사의 전작에 비해서 상당히 가볍고 짧아서 스페인 근대사에 대한 사전적인 지식 없이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우선 이번 작품은 설정자체가 상당히 유머러스 하네요(공상과학소설로 분류한다면 더욱 더 코믹한 설정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그러니까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개최되기전에 머나 먼 우주에서 지구 탐사를 위해서 온 고등생명체중 하나(구르브)가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작품입니다. 뭐 단순하게 생각해서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거란 선입관이 뇌리를 스쳐가지만 이래서야 어디 멘도사의 작품이라고 할까요^^ 멘도사는 이러한 시츄에이션에 상당한 무게감을 부여하는 몇가지 소스를 뿌려서 상당히 의미 깊은 작품으로 탈바꿈시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몇가지 소스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의 고향인 바르셀로나에 대한 한 없이 애정입니다. 존 맥그리거 빰을 칠 정도 세밀하게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인접지방의 명소와 음식점 그리고 향토 음식을 CCTV에 담아내듯이 소개하고 있고, 바르셀로나 지역 특유의 문화 내지는 사회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교통문제, 노인문제등 현재 바르셀로나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포함하여)에서 작품의 맛을 더했고, 또 다른 소스는 올림픽을 앞둔 경제 특수로 인해 과소비 현상, 흥청망청한 경제관등을 그리 좋지 않는 시각으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작인 <경이로운 도시> 에서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정치, 경제문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현 주소를 일깨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풍자는 부자와 빈자에 대한 멘도사의 시각에서 절정을 이루면서 바르셀로나가 안고 있는 사회모순을 통열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풍자나 비판을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은근히 바르셀로나의 매력을 부각시키면서 세계인들로 하여금 스스럼없이 빠져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번 작품의 가장 주된 소스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네요. 이런 점에서 멘도사의 바르셀로나 사랑은 대단하다는 생각 지울 수 없네요.
이러한 소스들로 인해 SF물의 성격은 온데 간데 없어 지고 맙니다. 특히 지구탐사를 온 외계인의 사고방식 자체가 묘하게 흘러가는데요. 마치 지구인 특히 바르셀로나 지역민에 동화되듯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외계인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설정자체가 멘도사의 트릭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누구나 바르셀로나에 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라를 받아들일수 밖에 없다는 그런 암시이지 않을까 싶네요(작중 샌프란시코로 밀항하려던 중국인 바르셀로나에 와서 눌러앉게 되는 사연등을 유추해 보면 더욱더 그런 암시이지 않을까 싶네요) 하여튼 점점 더 지구인 아니 바르셀로나 사람으로 바꿔가는 이방인의 눈을 통해서 바로보는 바로셀로나는 어쩌면 가장 객관적인 모습의 바르셀로나가 아닌가 싶네요.(물론 의연중에는 바르셀로나만한 곳이 없다라는 뉘양스가 자신이 뿌려놓은 소스에 상당히 진하게 가미되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되겠죠) 멘도사는 "바르셀로나와 결혼을 했다", "생식적인 관계이다" 등으로 자신의 애정을 꺼리낌 없이 표출하고 있지만 이번 작품만큼 자신의 고향에 대해한 애착이 듬뿍 묻어난 작품은 없으리라 여겨지네요. 아마도 그 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멘도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설정이라 여겨집니다.
전반적으로 국내에 소개된 <사볼타 사건의 진실>, <경이로운 도시> 과 비교 한다면 상당히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외계인이라는 볼거리를 등장(외계인의 설정외에도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 그리고 등장인물의 해학적인 모습, 실존하는 명소, 축구팀, 토속적인 음식등)시켜 내러티브 자체를 상당히 부드럽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왠지 외도의 냄새(기존의 두 작품에 비하면)도 풍기지만 막상 작품이 표출하는 의도는 역시 만만치 않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네요. 다시한번 이번 작품을 통해서 바르셀로나와 멘도사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