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밀란 쿤데라 전집 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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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사실 그 유명한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난생 처음 접하게 되었네요. 저 처럼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는 독자라도 제목만으로도 귀에 낮익는<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등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굉장히 낮설지 않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에 마치 저같은 독자들에겐 제목만 들어도 마치 접해본 작품인양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할 묘한 뉘양스를 주는것 같습니다. 그나마 분량이 약간은 만만하게 보이는 <정체성> 을 먼저 접하게 되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요. 하지만 이번 작품 <정체성> 역시 작가의 여타 작품들 처럼 제목에서 부터 풍기는 강력한 포스로 인해 상당히 난해할 것 같다는 선입관을 가지게 되더라구요. 물론 다 읽고 난 느낌 역시 첫 느낌처럼 만만치 않는 작품이라는 강한 잔상을 지울수 없게 하네요. 아무래도 작품 가독적인 면이나 이해력에서 스텐다드 문학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선이 저에겐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합니다.

 

남녀 주인공인 상탈과 장마르크 각각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작가시점 내지는 관찰자 시점이 혼용되어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마치 쌍방향 소통식으로 전개해 가고 있어 전반적으로 진도를 내는데는 큰 무리감이 없어 보이는 평이한 구성력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다가옵니다. 어느날 연인인 상탈의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라는 한마디(결국 샹탈의 이 한마디가 작품 전체의 축약하는 모멘트가 되기도 하죠)의 맨트가 발단이 되어 연인을 기쁘게 할(혹은 사랑을 확인하는 유치한 일종의 테스트도 될 수 있을 것 같구요) 요량으로 시작된 묘령의 편지는 남자주인공이 의도했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이를 기화로 각자 자신의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과정을 그려가게 되면서 각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심도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구도가 이번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죠.

 

뭐 제목 자체에서 부터 오는 무게감의 부담감을 결코 떨쳐버릴 수 없을 만큼 상당히 소화하기 만만치 않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전통적인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력의 차이겠지만요). 분량이 중편소설정도로 적고 남녀주인공의 대화체로 스토리를 끌어가는등 별반 어렵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작품 곳곳에서 작가가 피력하는 견해들은 상당히 난해하고 수준높은 철학의 반열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우정이나 권태에 대한 상념들은 기본적으로 인식론과 존재론에 대한 기초적인 인지력을 요구하기도 하는것 같아 몇번을 되새겨 읽어봐야할 대목으로 기억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권태에 대한 상념들을 오늘날과 과거의에 대한 비교를 통해서 '오늘날 무관심이라는 공통점 자체는 무관심이 우리 시대의 유일한 집단적 열정이다 ' 라는 작가의 표현은 그야말로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다가오면서 작품 전반을 흐르는 핵심을 보여주는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체성>을 통해서 우리는 상당히 시니컬하면서도 인텔리하고 유니크한 커플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샹탈의 직업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가 의도했던 아니던 간에 '정체성'이라는 메타포와 일맥상통하면서도 상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컨셉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서 독자들 스스로 정체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 표현은 하지만 그렇다고 실마리를 찾기는 상당히 힘들다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또한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갑자기 몽환적이면서 현실성과 괴리된 분위기로 칫닫는 부분이 독자들을 약간 당황스럽게 하지만 달리 보면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크라이막스적인 표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전반적으로 분량만 믿고 쉽게 접근했던 무지의 소치에 땅을 치게 할정도로 만만치 않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 밀란 쿤데라의 여타 작품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가지고 사전작업을 병행해야하지 않을까라는 노파심마저도 들게 합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가장 고민거리인 '정체성' 에 대해서 나름 한번쯤은 심도 깊게 생각할 방향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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