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1 줄리애나 배곳 디스토피아 3부작
줄리애나 배곳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요즘드러 부쩍 디스토피아장르 소설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젊은 작가에서 부터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나이 먹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미국,캐나다,일본작가들 전반에 이르듯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는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세말에서 20세기초 까지만 하더라도 유토피아장르가 대세를 이루었다면 산업혁명의 절정기를 지나 디지털혁명기에 접어든 20세말에서 21세기는 희망섞인 미래보다는 암울한 미래상에 대해서 작가들이나 독자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성을 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자는 의미의 발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고게 한다. 여하튼 불확실성이 극도로 증폭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디스토피아장르의 작품들은 단순한 흥미위주의 가십거리가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소설속의 스토리가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독자들에게 다소 알려지지 않은 줄리애나 배곳의 <퓨어>는 전형적인 스트럭쳐를 갖춘 디스토피아장르의 작품이지만 대게의 디스토피아장르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비슷비슷한 플롯을 상호 공유하도 있기도 하다. 이번 작품인 <퓨어>역시 핵전쟁을 지칭하는 대폭발을 시발점으로 삼아 '돔'과 '돔' 밖의 삶을 대립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홍수>에서 홍수라는 대폭발, 리사 프라이스의 <스타터스>에서 세균폭발, 아사노 이츠고의<무한도시no.6>에서 핵전쟁등 일대의 사건을 시작하는 시점이 앞선 세대와 선을 긋는 단절적인 시발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퓨어>에서의 '돔'이라는 존재는 <홍수>에서 선택받은 이들의 보호처는 건강현인단지 <무한도시 no.6> 나 <스타터스>에서 특별자치보호구역과 일맥상통한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구조물로 등장하게 된다. 또한 세균폭발로 살아 남은 아이들을 지칭하는 스타터라는 개념과 '돔'에서 선택받은 융합되지 않는 이들을 지칭하는 퓨어라는 개념은 상호 모순적인 현상을 표현하는듯 하지만 실상 아주 유사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이 계통의 작품을 대하면서 많은 유사점과 더불어 약간의 특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퓨어>에서 대폭발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재앙이자 종말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이면엔 새로운 시작 즉 다른 순수한 탄생을 의미한다는 차원(지적설례론이나 창조론적 견지에서 다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한다는)에서 리사 프라이스의 <스타터스>의 스타터와 <퓨어>는 일맥상통한다. 새로운 순수한 탄생의 시작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인위적인 리모델링으로 시작하지만 또 다른 자연선택의 발휘로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그래서 비슷비슷한 플롯을 가지면서도 이번 작품만의 유니크한 묘미는 이러한 유사상충된 구도를 바탕으로 내러티브의 현실성을 높여 주는 역활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출간과 동시에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듯이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블록버스트 영화를 보는 듯한 장대한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 내러티브의 스피드에서 부터 스트럭쳐의 짜임새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창작성등 다양한 뷰주얼을 보여줌으로써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상당한 반향을 불러 오리라 보여진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합성인 구루피, 인간과 물체가 융합된 더스트, 인간과 동물의 융합인 비스트등 화려한 컴퓨터그래픽과 특수효과를 120%만끽할만한 눈요기 꺼리가 산재하고 있어 스팩타컬 블록버스트를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보인다. 여기에 내러티브 자체가 전형적인 대립구도와 탄탄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효과를 배가 시킬 것으로 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적인 감흥이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지나간 영상에 그치지 않고 작품 전반에 걸쳐 잔잔한 감흥을 일으키는 오버랩으로 남을 만큼 묘한 인간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묘미을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퓨어>는 플롯자체의 한계성으로 기존에 출간된 디스토피아장르의 작품들과 소재의 유사성과 더불어 많은 연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작중 잉거십이 정의한 순수라는 개념 자체가 섬뜩하리 만큼 나치즘의 논거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왜곡된 인종우월주의, 민족주의(나아가 인간 지상주의),이기주의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대폭발이후 변형되고 기형화된 그루피,더스트,비스트,퓨어(돔이란 특수환경에 적응해 살아가야 하는 지엽적인 존재라는 점에서)들 삶을 통해서 대폭발을 야기한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이면과 이를 극복하고 적응하며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순수의 의미를 체득하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새로운 희망의 단초로 만들어가는 작가의 천재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그래서 후속편이 더 기대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할아버지 역에는 모건 프리먼, 패트리지 아버지역에 게리 올드만 이라는 식의 연상을 하면서 읽는다면 한층 독자들의 상상력을 증폭시키리라 여겨 진다.

 

전반적으로 '백조의 아내'라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동화 같은 프레임이 뷰주얼만을 강조한 SF적으로만 흘러갈 수 있는 소지를 방지해 주고 있어 멋있는 앙상블을 연출하고 있는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여하튼 모든 곁가지 같은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이 작품은 가벼움과 무거움을 교묘하게 줄타기 하면서 독자들 뇌리속에 깊이 각인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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