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중록]의 저자인 혜경궁 홍씨는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군주로서 개혁정치를 단행했던 정조의 생모이자 조선역사를 통틀어 가장 비운의 죽음을 맞은 사도세자의 부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아니 조선후기 구중궁궐의 삶과 외부와 차단된 채 정치권력의 한 복판에서 한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던 여인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하는 역사적, 문학적으로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문헌자료의 저자로 더 유명할 것이다. 1980년대 국사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특히 한중록의 의미는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세자빈으로써 임오화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더불어 사도세자라는 인물의 성정과 왜 그런 사단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세하게 그것도 가슴 애절하게 들려주고 있어 읽은 이들로 하여금 애잔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혜경궁이 묘사하고 있는 사도세자는 정신분열증과 중증의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광인으로 묘사되고 있고 이러한 자신의 정신병적 성정과 영조의 엄함 부정의 충돌이 결국 임오년의 변으로 진행되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고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렇게 믿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국정 교과서인 국사와 국어과목을 통해서 교육 받았고 그 진위성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세대가 바로 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내 이들의 공통된 역사관이기도 하다.

 

그러면 과연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의 내용은 진실일까? 정말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이 정신병이나 엄한 부정등 개인적인 원인에 의한 것일까? 그리고 혜경궁은 남편의 죽음과 관련해서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 정상적(상식적)인 사유의 방법론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마저 가질 수 없는 교육체제를 겪다 보니 사도세자==광인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사도세자의 고백>을 통해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역사적 진실을 새롭게 조명하고 혜경궁 홍씨의 작품인 한중록의 이면에 감춰진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밝힌다 있다. 첫 출간 당시 많은 반향을 일으켰지만 강단사학계의 터무니 없는 공격과 학계권력을 이용한 파상공세등으로 오히려 역사왜곡을 단행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역사학자도 아닌 서울대 정병설 교수의 비판은 전입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사실상 독자들로 하여금 의혹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에 개정판으로 이번에 출간된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를 통해 저자는 정병설 교수가 제기한 점에 대해서 조목 조목 역사적 문헌를 들어 반박함으로써 노론식민사관를 신앙처럼 받들고 있는 강단사학계의 현 주소를 만천하에 들어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그동안 배워왔고 그렇게 달달 외어왔던 한중록은 정병설 교수 자신의 말처럼 사실에 기초한 역사서라고 할 수 도 없고, 허구의 수준은 거의 소설에 가깝고 그 소설적 논리는 소설이 되기에도 터무니 없는 그런 그런 작품이다는 것이다. 좀더 쉽게 말해서 가해자의 입장에서 자기 합리화의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이러한 극히 개인적인 소견을 피력한 작품(그것도 앞뒤의 논리가 서로 상충되고 맞지 않는)이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공식적인 역사기록서인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보다 우선시 평가되어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일부의 공식적인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는 논리의 연장선에서 개인 기록의 중요성과 신뢰성을 인정할 수 도 있겠지만 조선시대는 오히려 지금 우리의 역사기록보다 더 처절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무리 당파가 달라 역사적 판단 견해가 달라도 조선시대에는 기록 전체를 말살하지 않고 수정실록이라는 형태로 반대당파에 맞선 논리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집권층인 노론이 직접 편찬한 영조실록의 기록들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한중록이라는 잣대로 역사를 판단하고 있다는 자체가 넌세스이자 코메디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라는 작자의 역사관이 이렇다고 하니 그 대학을 다녀본적이 없는 이들에겐 더 말하면 입만 아플것이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는 사도세자의 죽음의 진실을 숙종시대부터 고찰하여 경종독살과 영조의 치세 그리고 정조의 치세에 이르기 까지 조선후기 기울어 가는 왕권의 실상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택군을 떠나서 살군에 이르는 그야말로 왕조국가라고는 볼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시정잡배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중심에 송시열의 끄나풀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당파와 가문을 위해서라면 남편과 사위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그것도 모자라 소설아닌 소설같은 작품으로 자신의 행위를 감추고 정당화 할 수 밖에 없었던 혜경궁이라는 비운의 여인을 탄생시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번 책을 통해서 다시금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많은 가정을 품고 있다. 그래서 위서도 많은 것이고 다른 견해도 널려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역사적 기록물을 한쪽의 프리즘으로 제단해서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동시대의 기록물을 같이 보면서 어느 것이 정당한 역사를 말해주는 것인가를 먼저 판단해야 보다 진실에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노론식민사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학계권력에서 설파하고 있는 교리가 바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관을 마치 검인 부동산 계약서처럼 유포하고 있고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일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이 결여된 일반 대중들에게 이들 전문가의 견해는 곧 법전의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더욱더 세심하고 바른 견해가 필요하다. 물론 이제 이들의 세치혀에 수긍하는 대중들이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자와 같은 이들의 노력이 서서히 독자와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이제 한국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 열리기 시작했다. 중국이나 일본같이 역사자체를 왜곡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적어도 어느것이 제대로된 한국사인지에 대해선 알아야할 권리를 이제 대중과 독자들이 찾아야할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번 책을 통해서 잘못된 역사관이 미치는 폐해가 얼마나 심각해지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관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고 확대 재생산되어 많은 병폐를 낳게 됨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다음 세대들에게 이러한 잘못된 노론식민사관이 그대로 전수된다면 앞선 세대를 살아간 우리들의 책임 역시 면할 길 없을 것이다. 

서산대사의 시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는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그 발걸음을  어지럽게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늦었다고 할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이제라도 우리는 눈 내린 들판을 처음 걸어가는 심정으로 올바른 한국사 찾기에 나서야할 때이다. 우리 자신뿐 아니라 다음세대 우리의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