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들, 자살하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8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옮김 / 민음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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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처녀들 자살하다>는 한마디로 정의하기엔 상당히 곤혹스러운 작품이다. 소설의 스트럭쳐나 내러티브가 지향하는 방향성 또는 작품속에 담겨져 있을법한 작가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화두등 일반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인 범주내에서 살펴보더라도 딱히 뭐라 표현하기 힘든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자살 ,(소녀들 특히 한 집안의 자매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다섯이라는 집단 자살)이라는 소재 자체가 그로데스크하면서 어두운 잿빛 요소를 충분히 던져줄 것 이라는 예견된 느낌을 가지고 이 작품을 접하는 독자 일반에게 작품을 읽는 내내 곤혹감 마저 들게 할 정도로 소재인 자살이라는 암울한 시발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해학스럽다는 느낌을 뛰어넘어 지극히 냉정하는 느낌마저 불러 일으키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작품속에 등장하는 리즈번 자매들의 성향이나 자살에 대한 특별한 동기 그리고 리즈번 자매들을 자살로 몰고갈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등 그녀들의 자살과 연관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도덕적 혹은 문학적인 접근 자체를 차단해 버리고 마치 CCTV에 녹화된 영상만(무성영화같은)을 보여주는 듯한 시선 자체에 또 한번 곤혹감을 감출수 없게 한다. 여기에다 리즈번 자매들의 자살과 디트로이트 시 외각의 소도시인 장소적 배경을 어떤 방식으로던 연관시켜 그녀들의 자살과 도시의 쇠락을 연결시켜봄으로서 대승적인 뉘양스라도 끄집어 내고 싶지만 이 또한 상당한 억측과 더불어 무리수를 둔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특히나 화자인 십대 소년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리즈번가와 그를 둘러싼 지역사회에 대한 묘사부분은 정말 번잡스러울 정도로 구석구석까지 화자들의 레이다망에서 벋어날 수 없을 정도로 마치 세밀화를 보는듯한 묘사를 작품이 끝나는 시점까지 끌어 가면서 독자들을 한층 더 미로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행여나 이쯤이면 화자의 작품에 대한 총평내지는 감정이입정도가 나오겠지라는 독자로서 최소한의 기대감과 그런 기대감으로 읽어온 인내심을 아주 간단하게 무시해 버린다. 이는 생물학적 나이가 더 많을 수록 더 크게 다가 오게 하는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일면은 무미건조함으로 혹은 무덤덤함으로 진행되는 저인망식 서술들이 은연중에 독자들 개개인들의 의식과 교묘하게 동화되어 작품과 별개의 또 다른 상상력이나 과거의 경험등을 믹스해서 묘한 상태로 이끌어 간다. 예를 들어 리즈번 자매들을 스캔하는듯한 시선들에서 어린시절 옆집 여학생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면서 느꼈던 당시의 야릇한 희열이 되살아나 자살이라는 모티브와 소도시의 쇠락이라는 암울한 감정보다는 훔쳐보기에 대한 감출수 없는 기쁨을 앞세우는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들면서 왠지 도덕성에 상처을 입었다는 죄스럼마저 갖게 한다. 이러한 묘사가 작가의 의도된 장치인지 아니면 그저 나레이션의 하나에 불과한지에 대한 판단 역시 모호하게 해버린다.  

그럼 이처럼 애매모호한 작품이 굳이 영화로 재탄생하고 모던클래식의 반열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면 다름아닌 특정화 내지는 확정화에 대한 나름의 반기를 들었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비추어보게 된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무엇인가에 대한 특정화를 도출하고자 한다. 그 특정화가 도덕적이든 감정적이든 좀더 확장하여 사회적이든간에 문학작품 그리고 작가가 암시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독자들 나름대로의 생각이나 느낌 그리고 이러한 느낌이나 생각을 마치 공통적인 연대감으로 이끌어 내고 그러한 사회적 연대감을 하나의 형식으로 규정함으로써 일련의 안도감을 자위하게 하는 것이 통상의 행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특정화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고 무엇을 특정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하지만 <처녀들 자살하다>는 그동안 독자들이 가지고 있던 바로 이런 특정화에 대한 관념을 흔들어 놓고 있는 작품이다. 역자의 표현대로 아마도 이 작품을 읽는 연령층 내지는 세대간에(혹은 개개인의 성향등에) 따라 이 작품은 아주 많은 편차를 가지고 독자들 개개인에게 다가올 것이다. 구세대에 가까운 나에겐 리즈번 자매들의 자살과 한 소도시의 쇠락이 동체로 느껴져 마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한 동질감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또다른 독자들에겐 이런 느낌이 많이 희석될 법하게 교묘하게 다중적인 분위기가 작품전반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이번 작품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번쯤은 문학작품의 홍수속에서 주제나 작품이 내비치고 있는 어떤 특정화에서 벋어나 무위속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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