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서술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공평해야 한다"라는 말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역사는 흘러간 과거의 기록이다. 아니 단지 문자상으로 전하는 기록이 아니라 그 시대를 말해주는 화석같은 그런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현대를 살아가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금석같은 역사가 잘못 서술되어 있었고 아니 잘못 해석되어 전해내려오고 어느 한편의 이익에 부합되어 왜곡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라는 아주 간단명료한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 이부분에 대한 대답 역시 모호한 상태이다 적어도 한국사를 바라보는 이들에겐... 

중국의 역사를 두고 우리는 춘추필법에 의한 자기합리화식의 역사라고 촌평을 하고 일본의 역사왜곡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에는 자국사인 한국사에 대한 깨끗함이 깔려 있음을 넌즈시 내포하고 있는 표현임과 동시에 역사기록 만큼은 제대로 하는 민족이라는 자긍심이 포함되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근데 과연 우리 한국사는 왜곡이나 춘추필법식의 역사와 정말 무관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 솔직히 1980년대 문교부검증교과서로 국사를 공부한 나(이후의 국사교사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어지지만)는 선뜻 '네'라는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그만큼 그동안 공교육에서 배웠던 역사와 실상의 역사는 많은 격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흥미롭기도 한 것이고 새롭게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점들이 매번 한국사 바로알기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이덕일선생의 저작들을 접하면서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전작이 김종서에 대한 평가에서도 역사 행간에 감추어져있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듯이 이번 백호 윤휴에 대한 저작인 <윤휴와 침묵의 제국>역시 사초를 기초로 하여 면밀한 분석과 애리한 판단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인식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백호 윤휴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그다지 없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 당쟁사에 관심있는 독자들이라면 숙종조 남인이 청남과 탁남으로 분파되고 청남의 영수정도로 당쟁사에 집중된 사안과 관련되어 있는것이 일반적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윤휴는 일반독자들에게 생소하다면 생소한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노론(서인)중심의 사관으로 기술된 조선후기 기록물들에 의하면 윤휴는 상당히 위험한 인물로 평가되어 사사된 공공의 적으로 남아 있기에 더욱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부분들이 왠지 모르게 윤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 내지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기에 우암을 당수로 하는 서인들에게 심지어 같은 남인(탁남계열)들에게 사문난적에 상종하지 못한 인물로 평가되었을까라는 의구심을 자연히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고 한번쯤은 윤휴에 대해서 올바르게 접근해보고 싶은 유혹을 가져 오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번 역사평설을 통해서 윤휴에 대한 그동안의 역사적 평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당쟁사라는 접근방식을 탈피해서 인조반정에서 시작되어 양대호란을 걸치면서 진행되었던 조선시대 후기 전반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까지 겸하고 있어 윤휴 개인뿐 아니라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인식의 변화까지도 다루고 있는 저작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그동안 인지되지 못했던 감추어진 혹은 왜곡되어진 한국사의 진실을 파헤져 나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전반적으로 그동안 교육받아 알고 있었고 그러리라고 생각되어진 부분들이 한쪽의 시각만으로 바라본 역사였다는 점에서 이번 저작 역시 많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남인이 청남과 탁남으로 분파된 계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점과 전작이었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도 조모조목 반박했던 북벌과 서인들의 실체등을 통해서 윤휴와 당시 시대상을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해야겠다. 

이미 왜와의 7년전쟁과 양대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사회는 그야말로 풍비박산난 상태로 신분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더불어 나라 존속이 심각한 국면에 처해 있었다. 그나마 광해군조의 실리외교가 엉뚱한 명분으로 짓밟히면서 조선은 세계정세(동북아정세)와 역행하게 되고 국왕이 삼배구고두라는 오점을 남기면서 군주국가와 사뭇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런형국에서 지배계층인 사대부는 죽은자식 불알잡기하듯 존명이라는 명분에만 매달리면서 민생은 파탄났던 것이다. 오히려 패망하지 않은것이 신기할 정도로 국가 정체성 자체를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지패법과 호포법, 오가작통법, 서얼허통만이 북벌을 가능케함과 동시에 민생을 추스리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백호 윤휴의 사상은 어찌보면 당연한 주장이지만 비뚤어진 주자학 계승자들의 눈엔 그야말로 사문난적이나 공공의 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윤휴라는 이름은 시대의 금기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하고 바로 잡는 것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자신들의 역사인 한국사부터 바로 잡지 못한다면 이또한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그동안 왜곡된 혹은 한쪽의 시각만으로 평가된 한국사를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내실을 다지고 외부의 주장에 올바른 반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독자들로 다시한번 역사를 어떻게 관조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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