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쇼크 -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
테드 피시먼 지음, 안세민 옮김 / 반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장성한 자식들이 부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전통국악인의 흥겨운 축가속에 절을 올리고 가족,친지,동네지인들을 초청하여 하루동안 떠들석한 잔치를 베풀었던 풍경이 케케묵은 고래적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30년전 이 나라의 보편적인 풍습중에 하나였다. 당시 회갑을 지칭하는 61세라는 나이는 많은 의미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때까지 생존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심장했던 것이기도 했다. 하물며 70을 넘어 세상을 등질경우 호상이라는 아이러니한 표현까지 성행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노인들이 이제 살만큼 살았다고 자위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몇십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주변엔 이러한 풍경은 찾을 수도 없거니와 회갑, 칠순을 지난 사람들을 대놓고 노인이라고 말하기도 뭔가 어색한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다.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에서 이제 또 다른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시기라고 해야할 정도로 나이에 대한 개념이 180도 변했다는 것이다. 통계는 우리도 이제 고령화 사회(사실 이 단어가 출현한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30년전만 해도 가까운 일본이나 유럽 선진산업국에만 해당되는 부러운 현상으로 받아졌으니까)에 진입했고 조만간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인류가 출현하고 역사시대를 개척하면서 장족의 발전을 이룩하였다고 자부하지만 실상 산업혁명이전의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평균수명에 대한 개념자체가 모호할 정도로 정작 자신의 수명에 대해선 통제불가능한 상태였다. 멀리 갈필요도 없이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이 47세정도였으니 의료적,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했던 일반대중의 평균 수명은 그야말로 의미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종교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고 사후에 대한 보전책으로 장례관련문화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삶의 길이에 대한 로망이 어쩌면 인생의 목표이기도 했던 것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고한 철학적 명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만큼이나 오래 살아볼 것인가' 가 더 현실적이고 중요한 과제였는지도 모른다. 이에 비한다면 지금의 시절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풍족하고 풍요로운 시대이다. 얼마큼 살 것인가에 대한 대략적인 아웃라인이 정해져 있고 거의 돌발적인 사태가 아니다면 삶의 길이는 보장받는 시대에 각 개인들은 예전 철학자들이 부르짖었던 어떻게 살 것이가를 고민하는 시대이니 그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을 셈인가? 하지만 살짝 돌려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가 주는 압박감과 이면의 또 다른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담론이 또 다른 발목을 잡는 형국으로 커져가고만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말은 근대시대이전 사람들보다 두배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자 동시에 두배의 고민거리도 같이 안고 가야한다는 이율배반적인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색 쇼크>는 날로 고령화 되어가는 세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며 또 어떻게 대비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인류학,정치학,경제학,사회학적 다양한 측면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는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신선한 보고서이다. 과학혁명으로 인한 의학의 진보로 인해 평균 수명 자체가 길어지는 것을 우리는 당연시 받아 들이면서 모든 촛점은 좀 더 평균수명을 늘릴는데만 집중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고령화가 과연 인간에게 축복인지 아니면 오일쇼크와 같은 충격인지에 대한 모호한 경계점에 도달했다는 점을 인식해 본적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인 일본,스페인,미국의 노인층들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고령화가 가져오는 폐해(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고령화가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생산활동인구의 감소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 자녀 양육기간의 증대, 사회보장보험(의료보험,연금등)에 대한 막대한 부담 그리고 생산구조(제조업의 쇠퇴등) 자체의 변화, 고령층을 상대로 한 사회적 범죄의 증가등 예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고령화문제는 리얼타임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경제축에 의해 이제 더 이상 일국의 사회적 문제를 떠나 세계 각국이 서로 연관될 수 밖에 없는 범지구적인 문제로 급상승하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과 일본의 실례에서 보여주듯이 생산적정인력의 부족은 이민의 부정적인 면을 증가시켜 자칫 잘못하면 인종적인 문제로까지 비약될 수 있음을 상기 시킨다. 반면에 이러한 부정적인 요인의 이면에 또 다른 경제적 틈새시장의 길이 열여 있음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인해 은퇴연령층을 겨냥하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증가는 새로운 블루마켓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래 저래 고령화 문제는 여러 방면에서 많은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소리일 것이다.  

극히 인간적인 입장에서 분명 기대수명의 증가는 바람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나 오랫동안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근대이전 인간의 수명은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외부적 요인(전염병,전쟁,기아등)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했기에 죽음을 받아들일 수 밖에는 없는 구조였다면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는 수명의 시간적인 개념 보다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담론이 전염병이나 전쟁으로 인한 요인보다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한 획기적인 담론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인간수명은 다시 퇴보할 소지도 있다는 점이 두려운 것이다. 

<회색 쇼크>는 전체적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고 있어 그 현실감이 뛰어나고 그동안 고령화 문제를 원론적이고 통계적인 문제에서 보아왔던 시각을 미시적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볼 기회를 주고 있다. 플로리다 세러소타의 신개념 주거단지인 CCRC, 물류업의 부상, 개인의 기억을 저장하는 라이프로깅등의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분야에 대한 언급은 고령화 시대와 발맞추어 어떠한 방식으로 삶의 질을 제고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인간노화의 과정을 30대부터 연령별로 분류한 항목은 그 어떠한 의학서적보다 더 현실감 있게 풀어 설명해주고 있어 호기심 많은 독자들에게 색다른 재미(약간의 서글픔을 포함하여)를 선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슴에 와닿은 점은 스페인과 일본의 고령화 사회상을 살펴 보면서 특히, 별다른 준비없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의 현실을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인간의 어머니 자궁에서 착상되어 태아로 발달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명시계의 축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더 오래살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이제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고령화시대는 한편으로 축복의 시대가 될 수 도 있지만 반면에 기억하고 싶지 않는 시대가 될 수 도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살 것인가를 떠나서 이제는 정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범사회적인 담론 형성이 시급한 때임을 우리는<회색 쇼크>를 통해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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