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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레드 라인
제임스 존스 지음, 이나경 옮김, 홍희범 감수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했고, <고지전>에서 신대위는 "살아 남아서... 모두 집에 가자"라는 의미 있는 멘트를 날렸다. 결국 이말은 고대전쟁이나 현대전에서나 똑 같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를 말해주고 있다. 인류가 식량의 재생산 방법을 터득하면서 이와 동시에 전쟁이라는 신개념이 생겨났고 인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단한시도 멈춤없는 전쟁의 수레바퀴속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규모나 잔혹성을 차치하더라도 인류와 전쟁은 다른 종이 보기엔 정말 잘맞아 떨어지는 앙상블이라 할 정도로 우리는 전쟁을 달고 살았고 전쟁을 통해서 성장해 왔다. 그러다 보니 전쟁불감증 환자들 처럼 여차하면 전쟁, 전쟁하는 끔직한 발상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고 이를 듣는 이들 또한 거의 무감각한 위트정도로 밖에 받아 들이지 않고 있다. 최고 유일의 전쟁 진행중인 국가에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의 사람들에게도 전쟁는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처럼 무감각하고 때론 기억조차 하기 싫은 전쟁이지만 이 테마가 영화나 소설로 일반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면 이상하리만큼 흥행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는 이유 또한 아마도 우리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일련의 폭력성을 여실 없이 보여주는 일례는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광폭한 전투신이나 피의 향연이 결들어지면 그야말로 롱런을 하게 되는 대박작품으로 남게 되니 더 이상 말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지금까지 전쟁소설의 일련의 성공방정식은 제2차세계전을 주 배경으로 특히 유럽지역에서 벌어지는 나찌 독일군과의 치열한 전략전술 과정 그리고 약간의 분위기 전환을 위한 에로장면들과 결국 권선징악이라는 대단원의 결말을 거두는 라스트신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면에서 전쟁소설은 어찌보면 식상하면서도 이러한 작품의 스트럭쳐만 제대로 지켜 준다면 작가의 입장에서는 반타작을 하는 셈이었다.
제임스 존스의 <신 레드 라인>은 이러한 일련의 정형적인 전쟁소설의 틀에서 벗어난 소설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제외하곤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전쟁이란 유럽에서 마지막 구원투수의 요청으로 참전했던 2차세계대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느끼는 미국인들에게 정 반대편의 또 다른 전쟁을 다루면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이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면서 더 많은 부분들을 공감하게 되었겠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당시만 하더라도 상당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작가는 작품의 무대를 미국인들에게도 생소한 남태평양의 작은 섬 과달카날으로 선정하고 전투의 대상을 유럽의 독일이 아닌 동양의 일본으로 설정함으로써 기존 전투소설의 성공보장 카드를 슬그머니 포기해 버린다. 거기에다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나 에로신하나 없이 그야말로 시커먼 사내들의 이야기(문제는 동성애적인 장면을 첨부함으로서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은 일지감치 손을 놓아라는 암시도 던져주고 있다)로만 가득 채우는 우를 범하므로써 알량한 기대감 마저도 날려 버린다. 또 이 작품에는 그 흔하디 흔한 작품의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주인공 마져 없애버림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래파토리가 흘러감에 따라 과연 누가 살아남을지(뭐 이게 공식이라면 공식이겠지만)에 대한 어슬픈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이처럼 작품의 구조나 배경의 선정 그리고 내러티브의 진행등에 있어 기존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보는 도식화된 형태를 찾기 힘들다. 또 그렇다고 이 작품이 무슨 반전 평화 등의 일련의 고상한 담론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지도 않고 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전쟁소설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찬사는 과연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작품 전반은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시작하여 차분하게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고 있다. 하지만 내러티브가 본 궤도(물론 수송선에 실려 과달카날 섬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군인들의 심리묘사나 행동등에 있어 일부 엿보이고 있지만)에 오르는 시점에서부터 마치 영화의 한 컷 한 컷 처럼 등장인물들 개개인의 심리묘사나 그들의 둘러싸고 있는 상황 그리고 행동범위 내지는 절실해 보이는 작은 절규에 이르기까지 각 개인들의 입장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는 1인칭시점 같은 기법을 혼용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과달카날섬 전투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러한 작가의 장치적 기법은 전쟁 영화의 단면을 보는 듯한 스펙타클을한 긴장감과 생동감 넘치는 표현으로 인해 현장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고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섯부른 결과에 대한 어렴풋한 예측이나 기대 혹은 바램등의 모종의 종결샷을 머리속 한편에 그리면서도 지금 당장 연출되고 있는 장면들에 대한 각각의 장면들을 실사로 처리하여 한결 내러티브속으로에 빠져들게 한다. 마치 영화를 지배하는 감독이나 작가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주어진 역활만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는 촬영조감독의 단편적인 컷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전해준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엇박자 같은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유니크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또한 이러한 기법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자 동시에 이방인 듯한 묘한 감정의 이입을 이끌어 내면서 전쟁에 대해서 알게모르게 어렴풋한 담론을 동시에 담고 있다는 점이 <신 레드 라인>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전쟁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각 개인의 시점에서 전쟁과 자신의 미래 그리고 타인에 대한 시각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이러한 각 개인의 관점들이 한데 뭉쳐 또 다른 거시적인 전쟁을 말하는 혼용적인 시점 구조는 마치 전쟁에 대한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상념들이 저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있지만 결국 내러티브 전반을 관통하고 있고 작가가 보여주는 상념들은 바로 이런 개개인 상념들의 합일 수 밖에 없다는 극히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소 번거스럽더라도 등장인물들 하나 하나가 생각하고 있는 상념들 그리고 그들이 하는 행위들과 욕설담긴 말들을 그냥 흘려버릴 수 없게 한다. 이는 전쟁과 인간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굳이 적극적으로 부각시킬 필요성이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들 개개인의 행동과 생각의 합은 결국 하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음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전쟁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다라는 거대한 담론을 담고 있고 이를 알리고자 하는 그런 고상한 종류의 작품은 결코 아니지만 <신 레드 라인>은 각 개인의 극히 개인적인 심리적 묘사를 사실적으로 이끌어내므로서 오히려 거시적인 담론들을 무색하게 해 버린다. 생사가 코앞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도 본국에 두고온 아내의 외도만을 생각하는 벨, 어떻게 하든 진정한 카우보이임을 증명하고 싶은 돌, 전리품 수집에 혈안인 데일, 진급이외는 관심없는 밴드,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후송되고 싶어 하는 파이프.... 이런 인간 군상들의 솔직 담백한 묘사야 말로 진정으로 전쟁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 내 거짓말을 믿어 주면 네가 하는 거짓말도 믿어 줄께"라는 말로 작가는 전쟁에 대한 기억을 단순화 시켜 버렸다. 하지만 이 간단한 문장처럼 전쟁에 대한 의미는 단순화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엔 거시적이고 고상하고 약간은 애국적인 그런 가시적인 담론을 담고 있길 거부한다. 그저 전쟁은 각 개인에게 있어서는 거짓말의 향연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 거짓말은 상호 묵인하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각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삶과 죽음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전쟁소설 특유의 담론을 그리는 작품은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징집되어 투입된 전선에서 느닷없이 생사의 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무수한 젊은이들의 진솔하고 사실적인 모습을 통해서 전쟁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상당한 여운을 남기면서 오래토록 전쟁과 인간 그리고 삶에 대한 상념을 지울수 없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