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6
유디트 헤르만 지음, 이용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서는 정해져 있어도 이 세상을 떠나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 인간들에게 죽음이라는 현생과의 이별은 어쩌면 공식화된 룰과는 사뭇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 시간적인 개념의 장단의 유무를 떠나 항상 품에 안고 있는 죽음은 마치 최고 의사결정자의 시각에서는 제거할 수 없는 근원적이고 거대한 리스크같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다지 투자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미비한 아니 결정요인자체로 상정하지 않고 싶은 요인이라고 하면 너무 비약적일까?

인간은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는 혹자의 말처럼 우리는 매시간 죽음이라는 최종 종착점을 향해 브레이크없는 기차처럼 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인간에 있어 죽음이라는 명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인가? 인류사적인 관점에서 죽음은 일종의 삶의 연장선이라는 거대한 메타포적인 관념으로 인지되었고 이에 기반하여 종교와 신이라는 불세출의 발명품이 탄생하여 죽음에 대한 공포을 다른 출구로 돌려놓았지만 여전히 죽음에 대한 총체적인 불안과 공포는 인간인한 진행중에 있다. 특히 그 죽음이라는 것이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잣대에 놓이게 되면 그 어떠한 철학적 의미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마련인 것이다. 여기 독일문학계의 주목받는 여류작가 유디트 헤르만의 <알리스>라는 작품은 죽음을 소소하면서 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알리스라는 한 여인을 통해서 죽음과 죽음이 가져다 주는 감정의 기복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상당히 유니크한 작품이다.  

옛 연인, 나이를 초월한 지인, 지금 현재의 연인의 죽음을 겪으면서 받게 되는 일련의 감정상태를 별개의 이야기 처럼 다루면서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죽음과 그 뒷이야기라는 형식의 구조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 어둠, 공포, 피의 향연, 부정, 두려움등으로 대변되는 통상적인 죽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작가가 끌어 가는 내러티브의 큰 맥락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태양계의 행성을 이루고 있는 9개의 별중에 어느날 부터인가 명왕성이라는 별이 행성의 지위를 상실했듯이 죽음도 어쩌면 이런 명왕성의 상실처럼 어느날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런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죽음이라는 화학적인 종결보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다는 상실감으로 인한 혼돈이 더 크게 느껴질 수 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실감과 그 후유증은 자신이 태어나기전 얼굴한번 보지 못한 말테 삼촌의 죽음에 대한 시공간을 넘나드는 시크한 접근에서 더 명확하게 보여진다. 죽음을 직접 목격했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했거나를 떠나서(죽음의 시점이 현재이거나 과거이거나를 떠나서) 나와 관련있는 일련의 죽음들은 상실과 더불어 아픔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남기게 마련이고 그러한 극히 평범한 과정의 되풀이가 어쩌면 삶이지는 아닐까라는 무거운 철학적 의문을 남기고 있기도 하다. 

흥미본위의 호기심를 주안점으로 접근하게 되면 큰 낭패감을 갖게 된다. 전체적으로 이번 작품에는 스펙타클한 속도감이나 내러티브의 대반전, 모티브인 죽음에 대한 시니컬한 시각적 표현등 뭔가 숨겨진 장치적인 요소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니크하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때 까지도 이런 일말의 기대감을 저버릴만큼 상당히 건조한 문장의 연속으로 남는다. 다섯남자의 죽음과 이를 대면하게되는 주인공의 입장차는 왠지 모를 엇박자의 연속처럼 보여 당혹감을 주기고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엇박자 내지는 불협화음이 죽음이라는 존재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근원적인 접근방식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작가의 의도된 장치적 연출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역자는 이러한 표현 기법들이 작가만의 매력포인트라 논평하고 있기도 하다) 누구나 알고 있고 치명적인 리스크지만 왠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관점에서 죽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한다. 죽음(상실)에 대한 장대하고 거대한 사고의 담론을 일상적인 삶의 한복판으로 녹아낸 작가의 담론만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측면에서 작품을 보게 된다면 다소 무미건조하게 만 다가오는 문장들이 새삼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면서 잔잔한 수면을 흔드는 파장으로 가슴속에 오래토록 남게 될 것이다. 뭐라 딱히 표현하기 힘들지만 막연했던 상념들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현실화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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