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12
플뢰르 이애기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들 "글쓰는 고통마저도 감미롭게 다가온다"라는 짧막한 멘트 한방을 날리면서 글쓰는 행복감을 은근히 슬쩍 에둘러 표현한다. 물론 이런경우에 해당되는 이들은 글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전문작가나 비평가들의 언어의 유희라고 적어도 그렇게 느껴진다. 갑자기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다름아닌 난감한 서평을 써야하는 괴로움의 변이라고 해야겠다. 상당히 많은 책을 읽고 상당한 양의 서평을 써다고 생각했지만 플뢰르 이애기의 <아름다운 나날>은 그야말로 고통을 안겨다 주는 소설이다. 솔직히 많지 않는 분량에 지난번 읽었던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이 너무 많은 인상을 남겨 비록 여성작품이지만 많은 기대를 갖고 시작했다. 물론 성차별적인 발상에서 여성작가 운운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나름의 맛이 다르기 때문임을 부인하진 않는다. 하지만 첫장부터 시작한 책읽기는 상당한 인내력과 고역을 동반한 그야말로 "글읽는 고통마저도 감미롭게 다가온다"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힘에 부친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레퀴엠 단조같은 풍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작가가 이 작품에서 표방하는 전체적인 프레임의 구조와 내러티브의 향배가 의도적인 장치적 역활을 충실히 수행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재미와 작품성 양쪽에 길들여진 못된 습관을 비웃기라고 하듯이 시종일관 한쪽(재미)포기하게 하는 작가의 고집스러움 역시 대단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기 하다. 이말은 그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부적으로 두개의 중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아름다운 나날><프롤레테르카 호>는 별개의 작품으로 보이지만 서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개연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앞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대부분의 독자들은 다소 맥 빠지는 최종결말을 대하게 되고 곧이어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면서 왠지 요하네스의 딸이 전편의 프레데리크를 흠모했던 주인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혼돈을 일으키는 특별한 장치(어머니보다는 많은 부분 아버지와 연계된 점등)가 없지만 작가 특유의 간결한 문장처리 기법에 익숙해지다 보면 왠지 그런 착각도 당위성으로 다가오게 된다. 물론 두 이야기가 작가의 자전적인 삶을 바탕에 두고 집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흐름과 플롯이 풍기는 색감은 <아름다운 나날>의 나와 <프롤레테르카 호>의 요하네스의 딸이 동일인이라고 느껴지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있다.그의 머릿속으로 그 탁자들을 채운다.방문객 목록을 작성한다.장례미사를 주관할 신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정말 간결하게 문장을 처리하고 있다. 단순하게 읽어보면 전혀 여성작가다운 심미함이나 미학적 언어의 향연들을 도통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지만 이러한 간결한 문장 처리는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재각각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고 감정이입을 극대화 시키는 교묘한 장치적 역활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문장 하나 하나가 내포하는 색깔은 무지개 색깔처럼 선명하게 획일긋고 있지만 이어지는 단순한 문장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프리즘의 영역대를 무한정 확장시키면서 그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고 해야 겠다. 이 점이 이 소설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고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내러티브의 치밀성, 약간의 스릴러, 여기에다 반전... 이러한 것을 기대하고 출발한다면 분명 십여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해야 소설이다. 하지만 적당하게 비가 내리는 날 읽기에 더할 나위 없는 소설로 여겨진다. 비와 연계된 센치함과 더불어 이 소설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향연에 빠져들게 한다. 극과 극을 대립하는 구도, 속고 속이는 반전, 너무나 비틀어 놓은 결말처럼 빨주노초파남보라는 색깔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플뢰르 이애기의 이번 작품은 조용한 안식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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