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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29
알레산드로 보파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독자가 믿을 만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고 말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아니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거짓말의 수준을 뛰어넘어 기상천외할 정도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해야 어느정도 알레산드로 보파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 되지 않을까라는 감정이 들 정도로 작품자체가 상상초월이라고 해야 겠다. 소설의 최고의 덕목이 재미라고 한다면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는 그야말로 최고의 소설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그저 읽는 내내 희희낙낙하면서 아무런 생각없이 책장을 넘기게 하지만도 않는다. 아주 짧은 우화를 통해서 정체성, 나르시시즘, 동성애, 권력과 부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메세지를 내포하고 있어 작품성을 중시하는 독자들에게도 노벨상 수상작 못지않는 엄청난 내공이 깔려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흔히 이솝우화를 비롯한 우화은 인간사의 모든 것을 다소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인 동물에 비유하여 권선징악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은근히 슬쩍 다루면서 삶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이고 언제부터인가 독자들의 뇌리속엔 이러한 정형화된 공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를 통해서 고착화된 일련의 메세지와 이미지속에 선과 악을 구분하고 도식화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바람직한 사유와는 결별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깨끗하면서 티끌하나 남김없이 머리속에서 지워야 한다. 권선징악이라는 획일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의 고착성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매력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분명 이 소설은 우화임에 틀림없지만 작가가 생물학자라는 특이한 이력이 만들어 낸 정말 유니크하고 시니컬한 생물학 보고서이자 인간행동 보고서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고 고상한 학문적인 견해가 감미되고 우화적인 영향으로 소설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비스코비츠와 리우바(상어,전갈,개미,벌,경찰견등 다양한 형태의 동물)를 통해서 철학적인 교훈을 굳이 지향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삶 자체만을 읽어나간다는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작품이다. 마치 이들 동물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고 이러한 감정이입이 다소 거추장스럽다면 그저 동물의 세계를 음미해보는 것도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그 만큼 생물학자 출신으로서의 정확하고 과학적인 고찰이 또 다른 동물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Cool한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장을 덮고 나서 가슴속 깊이 민트향이 퍼져 나오듯이 시원하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이라고 해야 겠다. 개인적으로 요 몇년사이에 읽은 소설중에서 가장 잘된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작품성에 비중을 두는 독자들과 흥미위주에 비중을 둔 독자층 양쪽을 이 만큼 거리감 없이 하나로 충족시켜주는 소설을 솔직히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에 유니크한 프레임과 시니컬한 뉘양스, 다소 그로데스크한 소재와 시크한 등장인물(동물이라고 해야겠지만)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면서 조화롭게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필력이 그저 대단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게다가 부담스럽지 않은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 효과를 배가 시키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대게 유명 리뷰어지에서 평가하는 멘트를 보고 많은 독자들이 살짝 실망아닌 실망을 하게 되지만 이번 소설만큼은 제대로된 평가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