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민음사 모던 클래식 41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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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이 소설을 소설로 읽고 싶어한다. 작은 소소한 이야기을 통해서 시간의 무료함이나 각박한 감정의 매마름을 달래기 위해서 무슨 목적의식을 가지고 않고 그렇게 그냥 읽어나가는 것이 소설일 것이다. 뭐 이런 세속적인 차원을 뛰어 넘어버리는 순간 소설은 그 정체성을 상실함과 동시에 손에서 마냥 멀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소설들이 이러한 단순한 충족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고 그럴수도 없다는 것이 소설만의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에 200페이지 내외의 짧막한 분량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작품속 세계에서 허우적 거려도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니엘 켈만의 <명예>를 손에 들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9가지의 짧은 단편을 담아내고 있기에 더욱더 초이스에 대한 두렵움 없이 시간가는줄 모르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작품이라 여겨지면서... 

이 작품은 책의 분량에 비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난해한 요소들로 가득차 있는 유니크한 프레임과 플롯(특히 규정할 수 있는 플롯 자체가 없지만 오히려 이러한 불특정확가 플롯을 이루고 있다면) 그리고 러시아 전통 인형인 마트로시카처럼 별개의 내러티브를 가진 개개의 단편소설들이 끊임없이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막상 책장을 다 덮고 나면(아니 몇편만 읽어보더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듯하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끝과 정의을 명확히 규정하기가 힘든 작품이다. 각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상호 연결되어 어느 이야기속에서는 주인공처럼 비중있는 인물이고 또 다른 이야기속에서는 그저 한순간 스쳐가는 실루엣정도로 밖에 처리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상으로는 9편의 이야기가 모여 모여서 한편의 장편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작품 프레임의 이러한 유니크한 설정과 더불어 이야기들 전반에 흐르고 있는 개별의 내러티브들은 상당히 시니컬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저 짧은 단편이라 쉽게 생각하고 뛰어든 독자들의 얄팍한 기대감을 무너뜨린다. 아마 두세편의 이야기를 접하는 순간 책장을 맨 처음으로 되돌리고 한손에 필기구와 메모지를 들어 각 이야기속의 등장인물의 이름과 직업등 간략한 신상명세를 메모해 가면서 일종의 가계도 비슷한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무슨 무거운 인문서적을 읽는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을 가져보지만 이러한 일련의 행위가 독자들로 하여금 이 소설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자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비록 마지막 이야기를 덮고 나서 자신이 그린 다이어그램을 쳐다보게 되더라고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개별적인 이야기속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전화 즉 휴대전화라는 문명의 최첨단이 가져다 준 획기적인 발명품이 등장한다.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든 문자를 주고 받던 혹은 잘못 걸려오거나 아예 몇날 몇일 동안 한통의 연락도 오질 않아 휴대전화가 혹시라도 잘못되지 않았나라고 쳐다보게 되는 우리 손 바로 옆에 항상 붙어다니는 휴대전화가 등장하고 이와는 상당한 반대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여겨지는 책(미구엘 아우리스토스 블랑코스라는 인생에 길잡이 역활을 하는 삶의 철학을 논하는 책)이 꼬박 꼬박 등장하고 있다. 작가는 이 두가지의 메타포를 통해서 우리 삶을 어느정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과 소통이라는 대전제에 해당하는 휴대전화와 책이 제대로 된 역활을 수행하지 못할때 마트로시카처럼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로 밖에 인식될 수 없는 현실을 은근히 말해주는 의미심장함을 남기고 있다. 

소재나 내러티브의 모던함과 더불어 작가의 사유에서 엿볼수 있는 클래식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그야말로 모던클래식이라는 테마가 적절하게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새롭고 산뜻함고 맞딱드리는 작품이다. 그리고 9가지의 테마별로 가지는 의미성에 덧대어 전체을 하나로 아우르는 또 하나의 의미는 많은 여운을 남기는 소설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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