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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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뮤지컬 그리고 연극등으로 이미 <거미 여인의 키스>라는 작품은 많이 알려져 있는 면에서 일반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상식적인 말일 것이다. 제목자체나 표지의 그림에서 느껴지듯이 왠지 고혹적이고 육감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면서 한번쯤은 필히 읽어봐야할 작품으로 도서목록 윗칸에 표기해둔 작품이다. 여기에 라틴아메리카 소설이라는 환상적인 느낌마저 배가되면서 궁금증 내지는 조급증은 책을 손에 들기전 부터 많은 유혹으로 다가오게 된다. 특히 동성애라는 시대의 금기사항마저 언급하고 있다면 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소설임에 틀림없다. 性에 대한 관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본연의 특징이자 인간자체에 대한 탐구일 것이고 그 방향이 양방성을 가지느냐 일방성을 가지느냐에 대한 논란이나 이견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인터넷 서점이나 각종 포탈사이트에 올라온 수많은 리뷰만을 보더라도 분명 이 작품의 대중성이나 작품성에 대해선 어느정도 공인받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문학적인 소견이나 감성적인 디테일의 부족인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이해도는 그야말로 난해성 그자체로 다가왔다. 프로이트, 마르쿠제, 랭크등의 복잡한 성이론과 심리이론은 각주로 도배하면서 이성애와 동성애에 대한 고차원적인 난해함을 더하고 특히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6편의 영화(반은 실재이고 반은 허구인)은 가득이나 몰리나 발렌티 두 사람의 대화 위주로 전개되는 내러티브의 가독성을 혼미 자체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의 장치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흥미를 반감시키면서 책을 들게한 최초의 의도와 책을 완독해야하는 현실속에서 똘레랑스의 미덕을 어떠한 형태로 지켜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갈등을 갖게 한다. 비록 번역가의 작품 해설을 보게 되더라도 솔직히 수긍하기 힘들정도의 혼란성은 여전히 남겨 두기 때문이다. 가히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문제작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라는 얄팍한 위안을 가져보게 되지만 그래도 왠지 석연치 않는 앙금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은 지금 공연중인 연극을 보게 되면서 얼음이 녹듯이 머리속을 파고 들게 됨을 알게 된다. 역시 2차원적인 활자화보다는 한차원 더해진 시각화와 단순화가 작품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된다는 현실에서 다시한번 몽매함을 탓하게 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책과 형상화된 표현물을 동시에 접하지 않고서는 <거미 여인의 키스>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나름의 변에 만족하게 된다. 책에 등장하는 6편의 영화이야기는 몰리라 라는 게이의 성 정체성과 사랑의 진리에 대한 끝없는 자기 탐구와 자기 합리화의 수단이자 파트너인 마르크스 혁명주의자 발렌틴이 갈구하는 혁명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결국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고차원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이념혁명과 사회(일반적인 사회라고 지칭되는 현실)에서 가장 터부시 되고 저급한 대상인 동성애와 관계 정립을 나름 제시하고 있다. 무엇이 고결하고 고급스럽고 또 어떤것이 저급하고 불가촉한 것인가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그 판단적 근거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숨막힐것 같은 작은 감방속에 수감된 두 사람의 대립적인 심리상태와 그리고 하나가 되는 섹스행위를 통해서 작가는 그 어떠한 이념적 고결함이나 제도적인 우월성도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본성과는 역행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전반적으로 작가는 작품전체를 비틀어 놓았다.(그것도 아주 심하게) 6편의 영화이야기와 두 수감자의 이야기가 뒤범벅 되면서 독자들의 눈과 생각을 뒤흔들어 놓고 테이프를 되감듯이 책장을 앞으로 돌리게 하고, 거기에다 상당히 긴 각주를 읽어야 하는 고통을 수반시키면서 내러티브를 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흥미를 서서히 잃어가게 하는 작품이다. 물론 이 말은 단순하게 소설만은 접하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을 전재해 두고 하는 말이다.(아니 극히 개인적인 소양의 미달이라고 해야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영화나 뮤지컬, 연극과 같이 읽게 된다면 한결 수월하게 작가의 숨어 있는 의도와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그리고 작중 인물들의 심리묘사등이 가슴 깊이 와닿는 흔치 않게 가슴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몰리나와 발렌틴의 사랑행위를 그저 단순한 시각으로 동성애로 몰아 갈 수 없는 것이 6편의 영화이야기속에 그 해답이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모처럼 많은 고민과 갈등을 유발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작품의 난해성속에 꼭꼭 숨어있는 작가의 뛰어난 사유를 찾았다는 쾌감에서 왜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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