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많은 시작 민음사 모던 클래식 37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어나가면서 자꾸 한가지가 머리속을 맴돌게 된다. 뭐더라 이거 비슷한 모티브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있었는데라는 생각을 품게 되고 그것은 아마도 소소한 수집품과 이에 연관된 사연들 그리고 병적인 집착 정도로 끊임없이 수집하는 광경은 마치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에서 케말이 사랑하는 여인 퓌순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수집하는 광경을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면서 우리의 주인공인 데이비드의 스크랩행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된다. 단지 케말의 수집광적인 행위가 사랑하는 한 여인에 대한 것이였다면 데이비드의 수집은 자신을 버린 친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족과 주변인물들에 대한 수집이라는 차이점만 있을 뿐 둘다 과거의 기억과 추억들을 대변하는 수집행위를 통해 삶의 한 궤적을 말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한가지 머리속을 맴도는 것은 그의 전작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한번쯤은 궁금증을 가졌을 만한 여주인공의 정체가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 윤곽이 들어난다. 처음에는 별개의 소재인가 하는 생각에 별 생각 없이 읽어나가지만 읽을수록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두권을 같이 읽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너무나 많은 시작>이라는 책 제목처럼 우리는 이번 작품을 읽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웬지 더 기대되고 그 끝을 은근히 예견해 보게 되고 마지막장을 편안하게 덮게 된다. 

전작에서도 느꼈듯이 강렬한 내러티브나 급반전 그리고 스펙타클할 정도는 아니더라도(제목 자체가 그런 뉘양스를 전혀 풍기지도 않고 있지만)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기대했다가 한순간 이건 아닌데라고 그러면서도 뭔가 모를 감흥이 잔잔하게 풍기는 야생화의 향내처럼 다가왔듯이 이번 작품 역시 작가의 전매특허로 남을 분위기를 맘껏 풍기고 있다. 마치 CCTV로 현장를 그대로 생중계하는 듯한 섬세하고 리얼감있는 인물들의 묘사는 그동안 자극적인 내러티브의 향연을 맛본 독자들에게 흥미자극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독자의 시선을 충분히 집중케 하고,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조용하면서도 약간씩 들썩거리는 내러티브의 리듬감은 잔잔한 바다위에 떠있는 조각배속의 편안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딸(케이트)의 이야기에 이어진 아버지(데이비드)의 또하나의 이야기는 가족관의 소통, 의미, 사랑,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특히 작중에 자주 등장하는 '어야~'라는 감탄사 역시 낯설게 다가오다가도 서서히 독자들의 삶자체에 녹아있는 일상적인 언어처럼 느껴지면서 나도 모르게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어야~'가 절로 입속에서 튀어나오는 웃지 못할 진풍경도 연출하게 된다. 마치 이런 것 또한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이페드, 디지털카메라, MP3, 동영상등을 비롯한 파일형식을 빌려서 개인 각자의 삶을 기억코져 하는 라이프 로깅에 부던히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왠지 궁상스럽기까지한 데이비드의 담뱃갑, 지도, 월급봉투, 장난감 배, 주소를 휘갈긴 냅킨, 열쇠,포두주 마개등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소소한 사물을 통해서 시각, 촉각, 후각적으로 살아 있는 실체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진정한 의미의 라이프 로깅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삶이란 이렇게 작고도 많은 시작들이 모여서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일 것이고 어디쯤에 급류가 나타날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지만 그렇더라고 흘러가야 하는 강물처럼 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편이지 않을까라는 의미를 부여해 보고싶어지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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