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세기 - 20세기는 왜 피로 물들었는가
니얼 퍼거슨 지음,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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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과 안정적인 정치이데올로기의 산실인 민주정(아직도 일부에서는 진행중이고 체득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을 바탕으로 물질적인 기준만으로 보면 풍요로운 21세를 살아가고 있다. 물론 지금 21세기의 이러한 일련의 발전된 모습의 뿌리는 당연히 20세기의 산물임을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럼 1900년으로 시작된 지난 세기 20세기는 현재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시기이기도 하고 현재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근원적인 시대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정작 지난 20세기에 대한 명확한 자리매김을 하는데는 주저할 수 밖에 없는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통계수치와 외관적인 현상으로만 제단할 수 있는 20세기는 제2의 물결이라는 산업화의 물결과 제3의 물결로 불리우는 디지털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류역사상 가장 커다란 변혁을 가져온 세기이다. 그야말로 인류가 탄생하고 진화해온 지난 수십세기를 다 합친 변혁들을 들이대더라로 20세기의 변혁을 제단하기란 그리 녹녹치 않을 정도로 지난 20세기는 인류에게 있어 거대한 변곡점을 가져온 세기라는 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럼 과연 이러한 일련의 표현들이 20세기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거의 전 대륙에 걸쳐 자행된 전쟁과 학살이라는 어두운면을 애써 외면한다면 맞는 표현들일 수도 있다. 

<증오의 세기>는 보통 사람들의 뇌리속에 잠재되어 있는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의 해석을 거부한 새로운 20세기를 평가하고 있는 저서이다. 우선 책 제목부터가 짙은 회색빛을 감지하게 하는 [증오]라는 단어를 채택하면서 20세기 전반의 색깔을 미리 짐작하게 한다. 저자가 지난 20세기를 증오의 세기로 명명한 것은 다름 아닌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인류간의 끔직스러운 학살이 난무했던 시기가 바로 우리에게 그토록 부의 폭발을 가졌왔고 거대한 패러다임의 기폭제였던 20세기에 발생했고 이러한 전쟁과 학살은 인류역사상 가장 끔찍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공개적으로 뻔뻔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증오]라는 단어이외에는 달리 어떠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20세기를 단적으로 증오의 세기로 규정하고 있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크고 작은 충돌을 겪으면서 왔다. 씨족이나 부족체간의 전쟁과 학살 나아가 민족의 개념에서 근대국가라는 개념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학살은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저자는 왜 이처럼 인류사와 전쟁은 수레바퀴처럼 함께 진행되어왔는데 전쟁과 학살이 유독 지난 20세기를 대표할 수 있는 모토로 그 상징성을 부여해야 할까라는 점에 의구심을 갖게된다. 로마제국에서 칭기스칸까지, 그리 멀리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삼국시대등 인간에게 전쟁은 역사를 퇴보시키기도 하고 발전의 촉매제 역활을 하면서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것이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20세기의 전쟁과 학살의 양상은 그동안 인류가 경험했던 전쟁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게 된다. 우선 지난 전쟁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의 세계양차대전을 통해 8200만명이라는 인명이 사망을 했다는 점만으로도 그 인적피해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다. 인류 역사상 이러한 규모의 피해는 존재하지 않았을뿐더러 일부민족간의 충돌을 떠나서 세계대전으로 그 대상자가 늘어난 경우도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성을 띠고 있다는 측면에서 분명 지난 세월의 충돌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전쟁당사자인 군인들의 피해보다 민간인들의 피해가 더 컸다는 점 그리고 오히려 민간인의 피해를 조직적으로 조장하고 실행했다는 점에서 인류사를 통틀어 지난 20세기에 발생했던 전쟁들의 참혹성은 그 어떠한 세기보다 컸다는 점이다. 이는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살상무기의 집적화와 고도화로 인한 살상의 용이성이 증대한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몇가지의 숨겨진 원인이 있다는 것이 저자가 주목하는 바이다. 저자는 20세기 전쟁의 원인을 근대민족국가의 출현, 경제변동성(호황/위기), 호전적 종교간의 갈등, 인종/민족 대립, 제국의 쇠퇴에 주목하면서 각 원인별로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동기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생활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동원하여 전쟁의 조짐에서 확산에 이르기까지의 양상을 설명하고 있으며 경제적 변동성은 파시즘등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낳고 이는 곧 전쟁으로 이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20세기의 전쟁을 크게 두 부분으로 규명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를 빌리자면 50년 세계전쟁과 제3세계 전쟁으로 규명된다. 1904년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쟁으로 끝맺는 1953년까지를 50년 세계전쟁으로 그리고 이후 발생하는 국지전의 양상을 띤 전쟁들을 제3세계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세계2차대전의 발발시점을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시점은 극히 유럽적인 시각이고 실질적인 시점은 1937년 7월 7일 일본 중국을 침공했던 시점을 그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번 저서에는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의 비리, 케인스의 2차대전 발발 예측,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반지의 제왕]의 탄생배경등 읽을거리 또한 소소하게 보이고 있다. 특히 한반도와 관련하여 일본종군위안군과 징집병문제에 대해선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으나 제3자의 시각이 어떠한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필요케 한다. 

<증오의 세기>는 최대 1억8000만명의 묵숨을 앗아간 지난 20세기 전쟁사를 다루고 있다. 유럽,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등 사망자 수 만큼이나 광범위 하게 지구 전 대륙에서 자행되었던 정규군을 포함한 비정규군과 민간인들이 자행하는 학살의 배경에 무엇이 있었으며 과연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정당했는가에 대한 냉철한 의견을 제시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판단케 한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억울하게 아니 왜 죽어가야하는 이유조차 모르고 죽어간 이들의 주검을 발판으로 또 다른 세기를 맞이하여 살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겐 지난 세기 굴곡의 역사적 산물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혁명적인 산업화와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문명의 이기로 인해 인류 역사상 그 어느때 보다 많은 풍요로운 해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면엔 지난 세기 왜곡된 이데올로기와 비뚤어진 우생학이 낳은 전쟁과 인종학살로 인한 상처 역시 고스란히 들어 있다.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20세기는 어쩌면 화려하고 눈부신 발전만을 기억하고 싶어하는 인자가 더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항상 전쟁과 학살로 인한 상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종보다 빨리 잊어버리는게 바로 인간이라는 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류는 전쟁과 학살을 되풀이 하면서 진화해왔을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과 학살은 아마도 없어지지 않을 지도 모르는 등식과도 같은 존재로 남을지도 모르고 발달된 과학기술로 인해 그런 가능성이 갈수록 더 높아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들이 어쩌면 인류에게 새로운 해답을 제시할 수 도 있다는 역논리가 강하게 대두될 시점으로 보인다. 금세기에 다시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더 이상 인류에게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공감대와 더불어 이제는 전쟁과 학살의 기억들이 새로운 인류발전의 기폭제로서 상기되어야 하고 반성하면서 상호 모색의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분쟁으로 인한 전쟁과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어쩌면 20세기의 한축이었던 제3세계 전쟁의 연장선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겐 공존과 상생의 길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에 지금 이 시각에도 분쟁으로 인한 전쟁과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하지만 금번세기는 뭔가는 달라져야 한단는 절박한 시기에 와닿아 있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수 도 없고 물러나서도 안되는 지점으로 가고 있다. 공존과 상생의 길은 상호 존중이라는 아주 작은 실천에서 시작하고 작은 실천이 모여서 증오의 시대를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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