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의 불꽃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3
톰 울프 지음, 이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1973년에 촉발된 제1차 석유파동은 종교적인 문제와 더불어 자원의 무기화라는 이슈를 탄생시키면서 향후 한번의 오일쇼크를 야기시키면서 세계경제를 뒤흔들어 놓았고 세계는 다시 세계대공항이 대두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쌓여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라는 신자유주의 기치하에 양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는 엄청난 부의 폭발을 이룩했다. 신자유주의는 그동안 실물파트에서 실권을 쥐고 있던 경제패턴을 단숨에 금융경제위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금융경제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고 미국 뉴욕의 월가는 바로 거위목장으로 탈바꿈하면서 어마어마한 부를 쥐고 흔드는 우주의 지배자로 우뚝서게 된다. 톰 울프의 <허영의 불꽃>는 바로 1980년대 신자유주의로 인해 부의 패권을 손에 거머쥔 이들과 이에 반해 철저하게 소외 받은 흑인들 그리고 이민자들의 삶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기자 출신인 작가는 아주 정말 우연히 흑인들의 세계인 브롱스에서 벌어진 뺑소니 교통사고로 인해 미국의 정신이라고 대표되는 뉴욕의 정서를 마치 신문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르포르타주 형식의 소설로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을 읽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허영의 불꽃>은 제목 그 자체에서 어느 정도 작품의 플롯이나 네러티브를 감지할 수 있듯이 당시 미국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왠만한 문제를 거의 다 다루고 있는 사회고발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주인공 셔면 메코이를 통해서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아킬레스건인 빈익빈 부익부의 괴리감, 앵글로색슨계열과 흑인들 그리고 이민자들간의 인종문제, 특종과 선정주의 대박만을 노리는 옐로/블랙저널리즘의 병폐, 미국 사법시스템의 폐악, 정치권과 종교인의 비리, 그리고 무너져 내려가는 개인들의 가치관을 기자가 기사를 투고하듯이 세세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읽는 내내 독자들로 하여금 속이 시원하다는 대리만족도 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마치 작품속 등장인물들이 상상의 픽션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수 없게 한다. 특히 이 작품이 돋보이는 것은 그저 단순하게 사회고발적인 내용이나 이를 추적하는 르포형식을 띄어 넘어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진행상황에 대한 철저한 배경 묘사가 마치 엑스선을 투과하여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 못해 참석하게 되는 디너파티에서 참석자들의 핵핵핵, 허허허, 호호호, 후후후, 흑흑흑, 하하하 등으로 묘사되는 웃음소리는 사건에 쫓기고 있는 셔면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적나라하게 들어내주고 있다. 또한 셔면의 집 내부 인테리어 장식에서 그의 정부 마리아의 옷차림과 브롱스교도소 건물의 묘사등은 마치 그곳을 직접보지 않았다면 지면에 담을 수 없을 만큼 현장감과 생동감을 불어 넣고 있다. 이러한 장치들로 인해 다소 딱딱하고 무거운 사회고발장르를 섬세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견인할 수 있는 것은 작가만의 역량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허영의 불꽃>은 불편한 진실을 내제하고 있기도 하다. 앵글로색슨계 미국 신교도인 와스프이자 정통지배계층 가문의 출신으로 예일대을 나온 우수한 채권딜러인 주인공 셔면의 몰락을 마치 흑인들과 이민자들의 인종주의 희생양처럼 그리고 있는 작가의 보수적인 이념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옥에 티라고 하면 비약적인 발상일까? 흑인들과 이민자들이라는 미국사회의 비주류계층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그리 곱지 못한점이 아쉬움으로 남는 불편한 진실이다. 

초화주택과 명품과 파티의 연속인 삶 그리고 이러한 화련한 치장과는 별개로 은밀한 사생활을 즐기는 또 다른 이면, 죄수와 증인들과 협상하면서 여성 배심원을 흠모하는 검사, 종교인으로 종교적인 영적삶을 포기하고 군중선동과 비리를 저지르는 목사, 정치라는 허영심을 위해선 거짓말을 서슴치 않는 시장과 검사장, 특종을 위해서라면 개인적인 영역조차 확대 포장하는 저질 언론인과 언론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너무나 쉽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배신하는 사람들 작가는 그야말로 미국사회에 현존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군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미합중국내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왠지 작품을 읽고 난 후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씁쓸한 느낌과 더불어 독자 자신도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는 패러독스에 빠져들게 하는 시니컬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에드가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에 등장하는 붉은 죽음이라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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