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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 하 - 백탑파白塔派 그 두 번째 이야기, 개정판 ㅣ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으로 소설이라는 문학장르는 일종의 볼가심(적은 음식으로 시장기를 면함)이나 초다짐(시장기를 면하기 위해 간단히 먹는 일)정도면 그 역활을 다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때의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더 큰 욕구를 채우기 위해 좀전까지 오로지 먹거리에 대한 상념을 가득차 있던 허기진 배가 대충 채워버리면 언제 그랬냐듯이 게슴츠레한 눈빛 아니 약간은 혐오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왠지 타인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심정으로 소설을 대했다. 아마도 개인적인 비뚤어진 편력이라고 할 수 도 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 만큼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역활의 소설 작품이 그닥 없었다는 변명아닌 변명일 수도 있다.
매번 김탁환 작가의 작품을 대할때 마다 느끼지만 그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볼가심이나 초다짐같은 욕구를 넘어서 향후 더 높은 욕구에 대한 추종력 마저 끊어버리는 마력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역사소설이라는 장르가 팩트와 픽션의 오버랩으로 이루어진 영역이다 보니 실존인물에 대한 역사적, 시대적 평가와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한 평가가 상충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에 대한 작가의 부담은 어느 분야 보다 높을 것이다. 또한 역사적 팩트에 대한 부분이 과하면 소설이라는 작품성에서 빗나가게 되고 작품성에 무게 중심을 두다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호한 작품으로 남게 마련이다. 하물려 여기에다 추리소설이라는 부분까지 가미하게 되면 정말 속된 표현으로 죽도 밥도 끓이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이러면에서 김탁환의 <열녀문의 비밀>은 세가지의 플롯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시대적 배경을 조선의 르네상스라 칭하는 정조시대 교조적인 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선땅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실학과 북학의 열풍 그리고 서학의 대두등으로 조선은 일대 가치관의 혼돈과 더불어 시대적 대격변을 서서히 맞이 하고 있었고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모토로 작가의 상상력은 날래를 펼친다. 무엇보다 이번 <열녀문의 비밀>은 거대한 메타포에 대한 견지보다는 당시 일반대중들이 몸소 겪었던 소소하지만 결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모티브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양난(임진왜란/병자호란)으로 이미 성리학에 대한 국가 통치적 가치관의 힘은 무의미 해지면서 조선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고 이러한 가치관의 혼동은 이미 일반 대중속으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맹지도의 희망을 끝까지 견지 해야만 했던 계층과 이미 새로운 사조를 몸으로 받아 들였던 계층간의 갈등을 작가는 자살을 가장한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통해 당시 대립각을 세웠던 논거들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실존인물인 이덕무,박제가,김홍도,백동수등을 통해 픽션을 마치 팩트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내러티브의 향연을 볼 수 있다. 꽃에 미친 화광 김진이라는 유니크하고 시니컬한 주인공의 캐리턱와 작중 화자인 의금부도사 이명방이 끌어가는 내러티브는 한국판 셜록홈즈를 보는 듯한 착가마저 자아낸다. 또한 작가답게 소설속에 또 다른 소설들이 등장하고 소설과 더불어 각종 서책들을 소품으로 끌어들이면서 왠지 소설이라는 것이 단순한 래퍼토리의 짜집기나 작가 개인의 취향만이 아니라는 점을 은근히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소설의 맹점중에 하나가 가독성의 수위조절을 어떻게 견지하느냐에 따라 진부한 역사이야기로 흘러갈 수도 있고 시대적 배경과 괴리된 허무맹랑한 픽션으로만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역사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나 독자들에게 부담으로 남는다. 그러면에서 보면 이번 작품은 옛스러운 고어나 당시 통용 되었던 언어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과 행동등을 최대한 살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옛스러움에 작가의 시각을 조심스럽게 반영함으로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여느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기막힌 대반전을 통해서 당시 시대적인 패러다임의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언듯 추리소설쪽에 무게감이 더해지지만 <열녀문의 비밀>은 기존 성리학이라는 교조적인 가치관에 대한 반기이자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장을 덮고 나면 사건 해결에 대한 희열이나 안도감이라는 개인적인 잔상보다는 그 시대의 격렬했던 사조의 교차가 더 크게 자리잡게 된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김탁환의 작품은 볼가심이나 초다짐 정도의 충족으론 그 깊이가 태없이 부족하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아귀처럼 그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들의 애간장만 태울 뿐이다. 그 만큼 재미와 더불어 오래남는 잔상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 이 작품을 원작으로 곧 <조선 명탐정>이라는 영화가 개봉된다고 한다. 대충의 시놉시스의 뉘양스는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코믹적인 요소가 다소 가미된 듯하다. 주인공 김명민의 역활은 아마도 민틈없는 오검서 김진과 의기충천한 의금부도사 이명방을 적절히 섞은 캐릭터가 될 것 같다. 거기에 원작에 없는 개장수 오달수라는 감칠맛 나는 캐릭터의 등장으로 흥미를 더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무릇 영화라는 시각적 매체가 가지는 장점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차별화된 시나리오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일 것이다. 그래서 불멸의 이순신 이후 미디어매체로 재 탄생하게 되는 이번 작품의 묘미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