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야담 - 전2권
유몽인 지음, 신익철, 이형대, 조융희, 노영미 옮김 / 돌베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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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野譚)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관하여 민간에서 전해온 이야기로 야사(野史), 야승(野乘), 패사(稗史), 패설(稗說) 등의 용어로 통용되기도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 같은 개념은 아니다. 야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야사보다는 허구성이 중시된다는 점이 구별되며, 넓은 의미로는 설화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기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후기 <역옹패설>를 시두로하여 조선중기 유몽인의 <어유야담>에 이르러 본격화되었고 이후 18세기 후반부터 성황리에 집대성되었다. 

유몽인은 선조,광해군대에 살았고 인조반정으로 인해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던 학자이다. 그는 임진왜란으로 분조를 이끌던 당시 세자인 광해군의 세자시강원 문학이 될 정도 문장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었던 인물이었고 정치에도 가담하여 임란당시 선조의 밀명의 받고 전국을 시찰하던 암행어사 역활도 수행했다. 비록 이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발생(이충무공의 난중일기엔 유몽인이 현실상황과 괴리된 시책을 강구하여 전장장수나 관리들에게 욕을 먹는 장면도 나온다)하지만 나름대로의 역활수행은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게 정치보다는 문장이 몸에 걸맞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어우야담>은 유몽인 자신의 호를 빌려와서 그야말로 정사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기록되지 못한 기록될 수 없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어우야담에는 천민층에서도 부터 사대부 왕실에 이르기까지 신분계층을 뛰어넘고 승려에서 가파치에 이르기까지 그 직업 또한 두루두루 다양하다. 특히 유몽인은 자신의 누이와 논개등을 비롯한 조선사회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여성들에 대한 후일담을 많이 수록하고 있어 당시 여성상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처럼 일개 개인의 평전에 가까운 이야기에서 종교,인륜,학예 그리고 민간신앙등 우리 선조들의 거의 모든 역사가 담겨져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어우야담에 수록된 이야기들을 어디까지 믿을것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그럴 필요성 또한 없다. 문화라는 컨텐츠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기억과 믿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조선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왔던 이야기들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당시 선조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연의 <삼국유사>를 <삼국사기>에 비해 그 격이 떨어진다고 해서 역사서로서의 가치마저 부정하지 않듯이 유몽인의 <어우야담>역시 그런 맥락의 접근이 필요하다. <조선왕조실록>등을 비롯한 정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신빙성이 부족한 야사이지만 당시 대다수의 민중들의 공유했던 이야기라는 점에서 어찌보면 문자로 기록된 역동성이 부족한 이야기도 보다 훨씬 더 살아있는 당시 민중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가슴에 깊게 와닿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수록된 이야기들 중 정말 황망스러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이 또한 당시 지배계층에 대한 민중들의 소외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다른 분출구를 찾았다는 반증의 표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가 공식적인 이야기보다 인포멀적인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듯이 당시 민중들에겐 이러한 비공식적인 이야기들이 어쩌면 더 자신들의 가치관을 대변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역사의 기록들은 우리가 정사라고 지칭하는 기록물보다 오히려 야담이니 야사니 하는 비공식적인 기록이 있기에 더 풍요로운 것이고 시대상을 이해하는데도 더 현실적인 것이다. 특히 역사기록이 국가와 지배계층이라는 한정되고 접근하기 힘든 소수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왕조시대에 이러한 야담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동안 구두설화정도로 자리매김할 뻔한 이야기들을 사대부라는 신분의식을 뛰어넘어 야담집으로 편찬한 유몽인의 노력이 있었기에 후대에 야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선조들의 풍요로운 상상력과 그들의 삶을 인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 정사이외의 기록물에 대한 후대인의 접근방법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공식적인 기록물과 비공식적인 기록물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의 접근이 아닌 상호 보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하겠다. 정사가 당시 발생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면 야담이나 야사는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 그리고 공통적인 바램을 담고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비록 그 구성이나 소재등이 비현실적인 것은 당시 정사에 접근할 수 없는 대다수 민중들의 메타포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라는 수레바퀴가 정사라는 한쪽 바퀴만으로는 굴러갈 수 없듯이 야담과 야사라는 또 하나의 수레바퀴와 더불어 공존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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