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자연
제인 구달.세인 메이너드.게일 허든슨 지음, 김지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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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공중파를 통해 천연기념물 제330호인 수달이 먹이를 찾아 민가로 들어와 사람들과 동화되어 그냥 눌러앉아버린 내용을 신기한 것처럼 다룬 프그그램이 방영되었다. 어디 수달뿐이겠는가 까치가 가정집을 옮겨다니면서 먹이를 구걸하는등 인간과 동물의 생활경계가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다. 물론 우리의 선조들이 수렵채집활동의 할 시대에도 이러한 경계는 거의 없었지만 그때와 지금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점은 바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동물들의 모습은 신기한 눈요기거리나 해외 토픽감이 아닌 자연의 힘이 서서히 상실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저 씁쓸함을 감출수없다. 

영장류연구의 권위자이자 자연환경보호가인 제인구달의 <희망의 자연>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특히 지구라는 행성에서 이 별을 지배하는 권력을 부여 받았다고 자부하는 인간에게 과연 그러한 권능에 대한 역활을 충실히 하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현생인류가 출현하기전까지 이 지구상에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기후변화와 간간이 발생했던 자연재해이외에는 특별한 충격이 없었다. 하지만 인류라는 신종이 탄생하면서 지구라는 행성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그 어떠한 종보다 빠른 속도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인류는 지구자원의 거의 대부분을 소비하면서 자신들만의 특별시를 개척했고 심지어 같은 종까지 말살해가면서 지구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지구상의 생명체는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고 수 없이 많은 종들이 인류에 의해서 지구상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앞으로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지구를 살리기 위한 각성들이 여기저기 터져나오고 있지만 발전 지상주의라는 거함 앞에 그저 초라하고 작게만 보인다. 환경운동의 대명사인 그린피스의 캠페인이 해외토픽면을 장식할 정도로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지구와 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각성은 요원한 상태이다. 그나마 <희망의 자연>에서 보듯이 구달여사와 그녀가 만난 특이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우리는 아주 작지만 엄청난 희망의 메세지를 보게 된다. 알바트로스의 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외딴 섬의 바위 절벽을 기어오르는 조류학자, 독성 물질에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모이를 제공하기 위해 네팔 오지에서 독수리 급식소를 운영하는 젊은이, 비행기를 타고 아메리카흰두루미와 붉은볼따오기에게 새로운 이주 경로를 가르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벌목 회사를 설득해 마못의 서식지를 복원한 생물학자 등 멸종 위기의 종들을 되살려 내려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과 열정을 통해서 우리는 소위 경외감이라는 감정마저 불러 일으키게 된다. 

자연의 자정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하지만 한편으론 개발발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아마존이 열대우림의 훼손은 그 치유능력을 상실해 버릴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세계 곳곳의 자연생태계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도 보존보다는 개발쪽의 무게중심이 크다보니 곳곳에서 자행되는 자연파괴는 그 도를 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얼마되지 않은 동식물들은 자칫 잘못했으면 우리는 도감이나 박물관을 통해서나 볼 수 있는 존재들이다. 한편으로 그동안 인간이 자행해온 일들 극히 인간위주의 일들이 자연과 생태계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잔혹하고 엄청난것인가를 여실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당장 태고의 시대로 역행하자는 것은 아니다. 구달여사와 세계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것은 단지 작은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양보만 한다면 (어찌보면 그 양보라는 것 자체가 원래 자연의 것을 자연으로 품으로 돌려준다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삶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로 이 말 역시 극히 이기적일수 밖에 없는 인간의 관점이지만...) 우리를 둘러싼 생태계의 보존은 한결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대자연은 그 정도의 양보만 있어도 회복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작은 희망들이 쌓여 인간과 생태계가 공존할 수 있는 바탕을 이룰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처럼 단시간내에 지구와 자연을 훼손한 종은 없었다. 또한 인간은 자연을 정복과 경쟁의 상대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자만심은 여러곳에서 혹독한 댓가로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부랴부랴 우리는 그 대안을 연구하고 골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자연과의 조화나 공감에 대한 원천적인 의식은 부족한 듯 하다. 

우리는 자연과 인류가 적절한 거리감을 두었을 경우 또 다른 작은 희망을 보게된다. 화석어인 실러캔스나 2억년을 살아온 남양삼나무과의 올레미소나무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이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할 경우 자연은 자연나름대로의 툴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향후 자연보존의 롤모델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인간과 자연간의 적절한 거리감 유지는 상호간 생존의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상호 유대와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의 방향제시가 필요한 것이다.  

그나마 환경보존과 멸종위기에서 노력하는 이들의 노력과 약간의 완충효과(인간과 자연)만 부여하더라도 놀라울 정도의 회복력을 보이는 자연이 있기에 아직도 우리는 희망을 저버릴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희망의 메세지는 앞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정립에도 중요한 화두를 던져 주고 있다. 종속관계가 아닌 서로 상호간의 의존 내지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단지 의무적인 자연환경보호라는 낡은 개념을 벗어 던지고 이제 다가오는 시대에는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공존해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인 구달여사는 세계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작은 발견과 보호속에서 희망의 본성을 찾고자 한다. 즉 상터투성이로 전락한 지구이지만 아직까지 회복의 희망은 존재하고 이러한 희망을 저버리기엔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다양한 동식물을 만나게 된다. 첫장에 소개되는 앙증맞은 검은발족제비의 모습에서 부터 콘도르, 악어, 따오기, 송어등 항상 인류와 같이 생존해왔던 생물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인류에 의해 살아지거나 살아질 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을 바라보면서 대자연과 공감할 수 있는 작지만 위대한 희망을 보게 된다. 인간이 이들을 포기하지 않는한 대자연 역시 회복의 본능을 발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공감만이 상호간 생존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위기에 처한 종들을 구해야 한다. 어쩌면 정말 몇년안에 책의 칼러화보에 나오는 동식물들을 박물관이나 도감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 후대에게 명백한 죄악으로 남을 것이며 이러한 자연과의 불협화음은 결국 인류라는 종의 멸종을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들 동식물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어머니 품속같은 편안함임 것이다. 그 편안함이란 다름아닌 인간이라는 특별난 종 역시 대자연이라는 어머니 품안에서는 다 같은 자식이자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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