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3
로랑 고데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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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시인이자 음악가인 오르페우스는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의 죽음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금기인 저승 즉 지옥으로 아내를 찾아 떠난다. 그리고 지옥의 神인 하데스를 감복시켜 죽은 아내의 영혼을 데리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 받지만 우리가 다 알다시피 오르페우스의 원대한 계획은 실패로 결말 짓게 된다. <세상의 마지막 밤>은 바로 오르페우스의 신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아버지의 지구지순한 사랑과 대을 이은 복수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대판 오르페우스인 피포의 아버지 마테오 역시 오르페우스처럼 정말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린 아들 피포를 잃게 되고 삷을 방황속에 허비하다가 마침내 살인자를 찾아 복수에 나서지만 결국 이를 실행하지 못하고 더 없는 나락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된다. 마침내 소아성애자 교수의 도움으로 저승으로 통하게 되는 문을 통과하여 우여곡절 끝에 아들 피포를 다시 이세상으로 데려오지만 정작 자신은 아들 목숨의 댓가로 지옥에 남게 된다. 그리고 지옥에서 다시 돌아온 아들이 성장해서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복수를 완결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이다. 얼피보면 그저 그런 소설로 다가올 수 도 있다. 모성애 못지 않는 극단적인 부성애의 표출과 그 사랑에 대해서 복수로서 마무리하는 되갚음이라는 평범한 구도와 지옥과 현실을 오가는 다소 SF적인 플롯으로 약간의 신비감을 더한 작품정도로 보일 소지가 다분히 존재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돋보이는 것은 다름아닌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를 획일적으로 단순하게 정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르페우스가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듯이 마테오 역시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을 떠나서 대승적으로 작가의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죽음과 삶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우리시대에 어쩌면 죽음도 삶의 일부 내지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도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작중에서 지옥의 통로를 찾아 인생을 매진했던 교수의 표현처럼 우리의 삶은 죽음이 우리 내부에서 살며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넘추지 않고 계속 자라난다는 것을, 즉 죽음은 삶의 시작과 동시에 우리 내면속에 존재해왔다는 것을 암시한다. 삶과 죽음의 세계가 서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비의 날개 한쌍처럼 서로 포개져 있는 것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시 잊어버린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원제 지옥의 문(La Porte des Enfers)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쩌면 우리가 흔히 출입하는 하나의 작은 문으로 표시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나폴리의 지진(역사적으로 1980년 11월 나폴린 인근인 메쪼죠르노에서 발생한 대지진을 차용했다)으로 죽은자와 살아있는자의 경계가 구분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진이라는 형식을 빌려 죽은자가 다시 산자들의 틈에 뒤섞이고 산자 역시 죽은자들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발상자체가 매우 유니크한 플롯이라고 해야 겠다. 또한 작가는 마테오가 아들을 구해 지옥의 문을 나서는 순간을 재치있게 처리했다. 죽음과 삶을 구분했던 오르페우스는 그 문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삶과 죽음은 단지 문의 이편과 저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진 마테오는 과감하게 자신 목숨의 댓가로 아들을 문밖으로 밀쳐내는 설정에서 작가는 죽음과 삶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한번 더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 영화나 소설하면 대게 독자들이 떠올리는 것은 예술성이다. 미디어의 색감이 아름다운 영상과 주옥같은 빛의 향연 그리고 작가의 예술성이 극에 달한 작품들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보통의 프랑스문학과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왠지 지옥에서 다시 살아나와 복수를 감행하는 내러티브 자체가 프랑스적이라고 하기엔 어색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폴리 거리의 묘사나 죽음과 삶에 대한 묘사 그리고 심지어 복수를 향한 증오의 증폭이나 그 과정에서의 심리적인 묘사는 극히 프랑스적인 예술감이 그대로 베어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카론의 배를 타고 아케론(비통의 강,눈물의 강), 시름의 강(코퀴토스), 불길의 강(플레게톤), 망각의 강(레테), 증오의 강(스튁스)을 건너면서 죽음의 세계를 확실하게 삶에서 분리한다. 하지만 작가는 영혼들이 사라지는 것을 산자들의 기억에서 차츰차츰 잊혀져 갈때야 비로소 죽음이 당연시 됨을 말하고 있다. 즉 삶과 죽음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는 하나의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잃었듯이 그리고 마테오가 아들을 사고로 잃었듯이 죽음이라는 것은 삶의 작은 일부분처럼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 오는 것이고 이러한 죽음은 세월이 지나면 삶의 한부분속에 녹아 들듯이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혹시 아나 지하의 공동구와 연결된 우리 주변의 멘홀뚜껑이 실은 지옥의 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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