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 진시황과 이사 - 고독한 권력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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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여간 곤란하지 않다. 그저 흘러간 과거지사로 치부할 수 도 있지만 분명 우리는 역사에서 또 다른 현재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한편으로 미래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된다. 역사는 지엽적으로 고찰하더라도 특정 민족공동체의 공통된 사유가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류사의 발자취를 엿 볼 수 있는 비록 흘러간 강물이지만 그 면면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살아있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만큼 고리타분하고 현대와 동떨어진 개념의 분야도 드문것이 현실이다. 특히 고대사의 경우 신화적인 요소와 메타포들로 인해 역사와 신화사이를 넘나 들어야 하는 고역을 감내해야 하고 시간적으로 후대에 기록된 사서를 통해 당시를 상고함에 따라 다소의 왜곡이 첨가되는등 여러모로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역사 그중에서도 고대사이다. 하지만 이런 수고를 감내하고 역사를 접하게 되면 분명하게 그에 대한 댓가를 얻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고대사일 수 도 있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가 바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만화로 서술된 역사서라고 해서 기존의 딱딱하고 주가 본문의 반정도를 차지하는 고상한 역사서에 비견해서 그 질적인 면이 결코 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각적인 효과로 인해 독자들의 기억속에 오래토록 남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반복해서 읽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세세한 깊이 까지는 아니더라도 역사적인 흐름을 개략적으로 정립하는 데 실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권두에서 밝혔듯이 많은 부분중에서도 왜 하필 <한나라 이야기>인가라는 의문점이 생긴다. 진시황을 기점으로 유방과 항우로 대변되는 역사의 흐름은 익히 독자들로 하여금 줄줄 외울정도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아니겠는가? 물론 이렇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시기를 선택해서 한층 흥미를 자극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무엇보다 진나라에서 출발하는 중국 나아가 동양사는 서양의 로마제국과 일견 비교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냉정하게 고주알 미주알 따진다면 제국이라는 성립시기가 200년이상 앞서기 때문에 더욱더 이 시기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만큼 진나라의 성립은 서양사에서 로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듯이 동양사적인 입장에서도 커다란 획을 긋는 대사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의미는 춘추전국시대라는 난세를 통합했다는 단순한 의미보다 진의 출현으로 <제국>이라는 프로파간다의 시대로 접어들어기에 제국, 황제가 갖는 의미가 큰 것이다. 봉건제에서 군현제라는 중앙집권체제로의 전환, 법가사상의 도입으로 효율적인 인적네트워크의 창출, 전문적 관료제의 도입으로 경영과 소유를 분리한 혁신적인 기법등 그동안 보여주었던 체제와는 한 차원 다른 면을 진시황은 세상에 보여주었다. 비단 미완의 성공이었지만 이후 한나라를 필두로 탄생하는 모든 국가체계가 진시황의 정책을 거의 100%수용하여 국가통치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진시황을 창조적 파괴자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대게 역사를 보게 되면 처음 시행하는 자는 알게모르게 욕을 먹게 되는 법이다. 이러면에서 진시황의 역사적 재평가는 중국내부에서도 설득력을 얻고 있고 다시 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이번 편에서 주목되는 점은 그동안 진시황과 이사 그리고 법가사상에 대한 편향된 사고들을 새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졌다는 점에서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흔히들 분서갱유라는 희대의 사건은 후대에 두고 두고 진시황을 폭정과 잔인함의 화신으로 몰아가고 고착화 시켜 버렸다. 책을 불싸르고 유생들을 생매장했으니 그 얼마나 안하무인한 행동이겠는가? 하지만 정말 진시황이 이런 행동을 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러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후대에 평하는 분서갱유는 유가적인 입장에서 진시황과 법가사상을 폄하했던 내용들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분서갱제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유가학자들을 처형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민중을 현혹시켰던 방술사들과 체제번복을 바랬던 불순분자들을 칭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또한 분서에서도 현실생활에 실용적인 의학,과학등의 서적을 제외한 국가이념에 반하는 책들을 사장시켰던 것이 마치 모든 서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는 표현은 과장되어도 그 도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진시황의 입장에서는 좌시할 수 없는 국가반역행위였고 이에 대한 처분은 어떠한 형태로 있어야했던 것이다. 오히려 후대에 가혹한 행위에 비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뿐이다. 단지 중국사의 최초의 황제이자 제국이었던 진의 프로파간다가 한나라이후 제국들과 대척점에 놓였던 관계로 본의아니게 왜곡과 폄하가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하나 진시황과 법가사상에 대한 오해는 역사서를 비롯한 다양한 문헌에 소개되는 진시황의 초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탐욕스럽게 비쳐진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경우 황제들의 흉상과 비교해보면 왠지 초라할 정도로 까지 표현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사상으로 알려진 법가라는 사상에도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진시황의 초상부터 새로 정립했다. 그 기본적인 메타포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카리스마와 분위기를 접목시켜 진정한 최초의 황제에 부합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이런 이미지가 진시황의 실제적인 이미지에 더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제국을 창설한 진시황은 법가사상을 필두로 제국경영에 온힘을 바쳤다. 비단 다음자리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이 없었고 제국,황제라는 새로운 제도에 대한 운영의 미가 떨어졌지만 분명한 것은 진시황의 진을 시작으로 제국,황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대두되었고 2000년을 걸쳐 도도하게 중국땅을 흐르게 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평가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황제의 관이나 의복 그리고 제사, 가옥의 형태등 고대 유적터에서 발굴된 유물들의 기초로 역사적으로 재구성하여 현장감 있는 장면을 연출해주고 있어 역사서라는 딱딱한 고정관념을 불식 시켰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게만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와 차트의 끝부분에 사기의 열전이나 금석문의 내용들을 첨부하여 역사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삼국시대 조조와 유비까지 편찬 될 작가의 이번 시리즈는 중국고대사를 보다 쉽게 그러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끔 하는 훌륭한 기획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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