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사이언스 클래식 15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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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부家의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졌던 열녀문을 비롯하여 정형화된 현모양처(賢母良妻)의 개념은 비단 성리학적인 잣대 위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 결코 아니였다. 그 이전의 시대를 상고해 보더라도 현모나 양처에 대한 가치관은 깊숙히 우리의 문화속에 내재되어 있었고 성리학이라는 표준화되고 국가공식화된 이념의 또 다른 표출 방법중 하나였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치마열풍이나 강남열풍이니 하여 자식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주고져 밤낮 자식 걱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들에게 이어져 왔다. 이러한 어머니의 헌신(사회적으로 상식적인 한계범위를 벗어나더라도)은 모성애(母性愛)라는 감정이입까지 들추어 내어 마치 어머니라는 존재가 필수불가분하게 갖추고 있어야 하는 덕목이상의 개념을 요구하고 있고, 당사자인 어머니들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이러한 모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지표로 간주되고 있고 초창기 진화론자들에게 각인되어 인간 진화의 산물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럼 아직도 세계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해외입양이나, 중세 유럽의 영아 살해, 극동아시아권의 성 선별적 영아살해(임신중절)를 비롯한 수많은 일련의 사건들은 과연 어떻게 설명 되어야 하는가? 그저 일부 몰지각한 나이 어린 혹은 준비되지 않은 어머니와 민족별로 편향적인 문화적인 강압으로 인해 자식(주로 성별로 딸들)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어머니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그리 생각하고 있겠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어머니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어머니의 헌신이라고 일컫는 모성본능에 대한 역사적, 생물학적, 진화론적, 사회문화적 고찰을 통해서 과연 모성본능이 초기 진화론자들이 주장한 것 처럼 영장류에서 호미니드로 갈라져 나오면서 진화된 산물인 것인지, 혹은 수렵/채집시대를 거쳐 농경사회로 진입 하면서 탄생한 가부장제도의 권력이 만들어 낸 메타포인지에 대해서 방대한 동물, 인간들의 실험과 사례를 통해서 그 해답에 접근하고 있는 보기 드문 인간 해부학(정신적인 산물까지 포함한)적 저서이다. 특히 저자가 여성이라고 해서 결코 성 편향적인 관점에서 모성본능을 바라보거나 패미니즘의 사유가 엿보이는 그런류의 감성적인 저술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 더 섬세하게 그러면서도 적확하게 모성본능에 다가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돋보인다. 특히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 정립부분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현존하고 있는 수렵/채집집단과 영장류의 행동을 통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한 결과 흔히들 문명화된 집단이 가지고 있는 모성본능의 개념과 사뭇 다른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성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될 수 도 있고 한편으로 어미니와 모성이 가지고 있던 메타포에 대한 어마어마한 손질이 불가피 할 수 도 있다. 물론 저자는 모성본능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막연하게 형이상학적으로 규정된 모성본능에 대해서는 반기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한 역사적, 생물학적, 진화론적 증거는 무수히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좋은 어머니' 라는 개념에 반대하고 있다. 좋은 어머니 즉 헌신적인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라는 개념은 인류학적으로 진화된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 후대에 창의된 허상이라는 개념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강요되고 도식화되고 만들어진 '좋은 어머니'가 마치 인간이 진화된 과정속에서 자연선택을 받은 것처럼 비추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 모성본능은 과연 어떤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 냉혹하게 표현하면 C < Br (c:행위자가 부담다는 비용, b:수혜자에게 돌아가는 이득, r:연관도)라는 단순한 수학적 부등식 표현된다. 즉 행위자(어머니)가 부담하는 비용이 수혜자(자식)에게 돌아가는 이득과 수혜자와 행위자의 생물학적 연관도를 감안하여 최소한 비용보다 클 경우에 한하여 자식을 키울거라는 논리이다. 이 논거는 정상적인 부부관계, 미혼모, 두번째 아내 그리고 원하지 않는 분만을 비롯한 다양한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또한 어머니와 자식(태아를 포함한)의 관계 역시 자연선택의 범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대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논거이면서도 한편으로 수긍이 가는 논거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각인된 모성본능은 진화적인 시간과 역사적인 시간의 틀 속에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하나의 이념으로 자리잡은 발버둥과도 같은 개념으로 받아 들여진다. 마치 전체적으로 효과적인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한쪽에게만 강요되어진 구도이다. 이러한 구도는 '좋은 어머니'라는 메타포를 통해서 확대되어 전파 되었고 세대에 세대를 거듭 하면서 하나의 정설로 받아 들여지게 된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일련의 논거(비단 저자 뿐 아니라 많은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들이 독자들에게 그다지 반갑게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는 모성본능이라는 개념은 거대한 어머니 대자연이라는 틀 속에서 진화적으로 선택되었던 생물학적, 사회학적 진화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단지 그동안 모성본능에서 파생된 지고지순한 메타포에 감춰져 있는 내면을 보지 못했거나 보지 않을려고 했던 우리에게 문제가 있을 뿐이지 자연선택으로 촉발된 어머니 대자연은 지금도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행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저자의 취지는 이러한 모성본능을 종교적,사회문화적 잣대로 제단하고 은폐할 경우 그 패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한쪽 성인 여성에게 전가될 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결국 생물학적으로 번식의 상대편에 대한 편견은 종전체의 지속적인 건강한 삶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이번 책으로 인해 어머니와 자식 그리고 모성본능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그 실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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