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묘 18현 - 조선 선비의 거울
신봉승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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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 [文廟]는 중국 당나라때 공자를 문성왕으로 추봉하면서 문성왕묘라는 말에서 후대에 문묘로 통칭하게 된다. 유가의 좌장인 공자와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4성()과 그 밑의 10철()의 신위를 배향함으로서 명실공히 유가의 산실이자 정신적인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에서 시작되어 고려조에 대성전을 건립하여 배향하였으나 본격적으로 신주를 받들기 시작한 것은 성리학을 정치적 모토로 출발한 조선시대에 와서야 정확한 자리를 잡게 된다. 더욱이 조선초기 신생국의 정치,사회,경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훈구대신과 사림들간의 맞대결에서 사림들이 승리를 거두면서 중국의 성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성현들의 배향문제가 대두되면서 문묘에 종사되는 문제로 이해집단간의 혈투가 벌어지게 된다. 

<문묘 18현>는 바로 서울 문묘에 배향된 조선의 성리학자 18명의 삶과 개인사를 다룬 역사 에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조선왕조 5백년, 소설 한명회로 대중적인 역사소설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의 새로운 변신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굉필,조광조,정여창,이언적,이황등을 비롯한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18인의 삶과 그들이 군주에게 상소한 명문들을 고찰함으로써 선비로서의 정신세계를 잠시나마 엿 볼 수 있도록 작가는 조선왕조실록과 그들이 개인문집 및 각종 역사적 사료를 검증하여 이들의 삶을 추적해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조선시대에 선비로서의 가장 큰 영광은 다름 아닌 죽어서 문묘에 배향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사회적으로 공적이념인 성리학을 통해 학문과 정치, 그리고 백성들의 교화를 목표로 햇던 사대부들에게 있어 문묘가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측면에서 문묘에 배향되었다는 의미는 학문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 하면서 선비로서의 올바른 자질을 갖춘 성현의 반열에 올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말은 문묘에 뱅향된 18인의 삶도 당연히 성현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과연 순수하게 선비로서의 자질을 갖춘이들이 문묘에 배향되어 있는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 배향된 18인(특히 조선시대 인물 14인)에 대한 역사적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암 송시열이 효종에게 상소한 내용중 공자가 말하기를 "하늘은 사사로이 덮는 것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싣는 것이 없고, 일월은 사사로이 비추는 것이 없다" 라는 말은 바로 성리학을 요체로 하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공통된 관점을 대변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고려한 사사로운 감정을 뛰어 넘어 대의적인 관점을 지향해야 한다는 면에서  절대군주인 왕에게도 직언을 마다 하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논리를 펼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타의 모범이 됨은 물론이고 선비 자신이 표방하는 성리학의 완결을 의미하는 것이였기에 조선이라는 절대군주국가가 그나마 제대로 흘러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김굉필과 조광조를 비롯한 초기에 배향된 인물들의 삶을 통해서 투영된다. 조선초기 정국은 공신들의 사사로운 이권으로 얼룩지게 되고 이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사림이 등장하면서 인,의,예에 기반을 둔 왕도정치를 표방하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초기 사림들의 희생이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정암을 비롯한 초기 배향된 인물들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지만(물론 이도 사림이라는 계층들의 시각으로) 이후 배향된 인물에 대해서 과연 송시열의 상소문처럼 개인의 나아가 당파의 사사로움 없는 진솔된 정책과 학문을 펼쳐나갔는가에 대해서 상당히 의문스러운 점이 많음을 다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선조대에 이르러 동서인으로 양분되기 시작한 당쟁과 이후 노론의 집권으로 야기된 정치파행과정을 과연 공자의 가르침대로 따랐느냐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한 것은 사실이다.  

전반적인 구성면에서 역사적으로 신선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실록의 상소문이나 문집의 인용부분이 너무 많고, 논란의 쟁점이 있는 역사적 사건(광해군,소현세자,효종,현종의 죽음, 송시열의 북벌정책등)에 대한 작가의 역사관점이 다소 편향된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다만 최치원과 설총등 상고시대 학자들과 고려시대 인물들에 대해서 재조명되었다는 점이 소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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