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행복 이야기
천진 지음, 현현 엮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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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행복한가? 혹은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선뜻 "네"라고 대답하는 한국인은 생각보다 그다지 많지 않다. 영국의 레스터 대학이라는 곳에서 발표한 세계국가별 행복지수를 보게 되면 대한민국은 143개국중 68번째로 행복하다고 한다. 특히 행복지수가 44.5로 과반수가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 발표에 따른 행복지수 1위국가는 과연 어디일까? 우리보다 문화,경제적으로 선진산업국인 미국?유럽국가들? 일본?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을 뒤집고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로 선정되었다. 1부터 10위까지가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국가이고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베트남이 선정되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는 나라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대한민국보다 더 행복지수가 낮게 조사되었다. 물론 행복지수를 우리가 정의하는 행복이라는 가치관을 가장 유효 적절하게 평가했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러한 연구결과가 주는 의미는 분명하게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음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행복(幸福, Happiness)은,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부족함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 하는 심리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그 상태는 주관적일 수 있고 객관적으로 규정될 수도 있다. 단, 행복은 철학적으로 아주 복잡하며 금욕을 행복으로 보기도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생물에도 이에 상응하는 상태가 있을 수 있다. 라는 극히 사전적인 용어를 떠나서 행복에 대한 인간의 추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중에 하나이다. 갑자기 <지리산 스님들의 못말리는 행복이야기>와 이러한 행복에 대한 논거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라고 의구심도 들지만 사실상 이 책은 우리가 행복하다,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해야 한다라는 두서 없지만 꼭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에 대한 원론적이고 각론적인 행복론이기 때문이다. 지리산 홍서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정봉스님과 천진,현현스님의 수행이야기는 전작인 <못말리는 수행이야기>를 통해서 일반 독자들에게 전해졌고 그 파장은 은근하게 그러면서도 진하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전작이 만찬을 들기 위한(아마도 이러한 표현자체가 이분들에게 누가 되겠지만...)에피타이저였다면 이번 책은 그야말로 정말 맛있고 향기로운 메인코스라고 해야 겠다. 물론 저자가 불도를 닦고 있는 불제자이기 때문에 고성제,집성제,멸성제,팔정도(정견,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를 중심으로 종교적인 색체가 묻어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는 불교를 통한 행복의 도달이라는 종교적 가르침보다는 오히려 행복론 일반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쉽게 보면 정봉스님이 중간중간에 던져주는 법문은 선지식적인 면도 있지만 불교지식이나 종교적으로 귀의하지 않는 일반대중들에게 정말 쉽게 인도해주는 행복길라잡이라고 할 수 있다. 

석가가 설파한 무소유, 욕구나 욕망의 갈구자체를 뛰어넘어 편안한 상태를 진정한 행복이자 해탈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일반 대중에게는 이러한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엄청난 수행이나 자기희생이 사실상 어렵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럼 이 책이 독자들에게 던져 주는 화두가 우리는 심신산골에서 맑은 공기에 청정음식을 먹으면서 석가여래를 받들고 그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으니까 행복하다 그러니 당신네들도 우리같은 삶을 살아보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스님들이 던져주는 화두는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듯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아닐까...
즉 이말은 불교라는 종교를 넘어서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다 같이 한번쯤 사유해보자는 취지가 더 강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부족함이나 불암감을 느끼지 않는 심리적인 상태를 행복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 아마도 세상 어느 누구도 행복한 이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욕망충족에 대한 자의적 주관적인 측정불가능한 잣대를 저마다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보다 스님들이 제시하는 행복론은 이러한 명사적 의미의 행복론이 아닌 행복을 찾아 끝없은 구도를 걸어가는 수도승처럼 일련의 과정에서 바로 절로 행복을 찾게 된다는 동사적 의미의 행복론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한다. 이러한 동사적 행복론에는 스님들처럼 법문에 귀의하여 석가의 가르침을 하나씩 익혀가는 과정일수도 있을 것이고, 일반 대중들이 속세를 살아가면서 맞부딛히는 세상사에서도 찾을 수 있는 움직이는 행복일 것이다. 물론 삼성제와 팔정도라는 원론과 각론이 행복찾기에 좀더 효율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함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를 모른다고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그저 각자의 행복찾기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행복지수를 보면서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롭기만한 선진산업국의 국민들이 개발도상국의 국민들보다 오히려 더 불행하게 생각한다는 자료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욕망과 욕구의 충족이라는 명사적 개념으로 행복을 받아 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듯이 총족에 대한 정답은 없는 것이다.  행복을 단순하게 통장의 잔고개념인 stock으로 받아 들여서는 그 크기에 변화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할 뿐이다. 행복은 fiow의 개념으로 진행되는 과정 움직이는 동사의 개념을 받아 들여야만 진정한 행복 찾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의 표지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천진스님과 현현스님의 얼굴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이의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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