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6 로마제국쇠망사 6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김혜진.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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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년 11월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신이 그렇게 원하신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신의 뜻이오 십자가는 그대들을 구원하는 상징일지니 붉은 핏빛 십자가를 철회할 수 없는 신성한 계약의 증표로 그대들의 어깨나 가슴에 걸도록 하라"로 촉발된 십자군 전쟁은 그마나 제국의 버팀목 역활을 했던 약간의 다양성 표출에 직격탄을 날리고 하느님의 휴전이 확인될 때 까지 유럽과 중동인근을 대 혼란의 시대로 몰아가게 된다. 물론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역사라는 수레바퀴는 변함 없이 굴러갔지만 이 전쟁이 가져온 댓가 역시 수레바퀴의 동력만큼이나 값비싼 댓가를 지불해야 했다.

기번은 십자군 전쟁을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평가한다. 그것은 "야만적인 광신의 표출" 이다. 원래 성전(聖戰:holy war)이라는 의미는 평화시대의 군주을 섬기는 자들이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불가피하게 정당한 싸움에 나서는 경우가 아니라면, 파괴의 칼을 뽑은 명분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다고 본 기번은 십자군 전쟁의 본질에 대해서 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종교가 속세의 영역속으로 들어오면서 급기야 속세와 종교의 통상적인 잣대를 단하나 종교의 잣대로 저울질 하면서 벌어진 참흑이었다. 결국 십자군원정의 구성원들은 빚이나 이자, 명예훼손죄, 세속의 처벌 면제등 속죄에 대한 댓가로 십자군 원정에 참여를 독려받게 되고 이러한 모든 속세의 죄들이 성전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면죄부를 받다 보니 결국 전쟁의 결과는 불을 보듯 명확약관해 지는 것이다. 이는 비잔티움 함락 후 발생했던 마호메트 2세 군대의 약탈행위 보다 십자군 원정으로 인한 약탈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음을 전쟁으로 인한 약탈은 문명인과 야만인의 차이를 매우 작게 만든다라는 기술로 그 씁쓸한 뒤맛을 느끼게 한다. 그만큼 십자군 전쟁은 광신으로 둘러싸인 일부 지도층의 광기와 더 이상 삶의 존재가치를 창출해내지 못한 민중의 분풀이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실패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정작 그리스도교가 로마를 장악했지만 로마시민들 대다수에게 로마 교황청의 이름과 권위는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만큼 현실적인 괴리가 존재하였고 물론 이는 현세적인 괴리만큼이나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평민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그리스도를 거부했듯이 로마인들이 화려하고 거만한 현세적 지배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리스도의 대리인(교황)을 몰라본 것처럼 말이다.이러한 괴리감은 결국 교황의 선출과정을 바꾸는 계기로 이어진다. 기존에 성직자와 민중의 투표로 추대되던 방식에서 1179년 알렉산데르3세와 1274년 그레고리우스 10세에 이르러 추기경으로 만 구성된 협의체(콘클라베) 탄생하면서 성 베드로의 제자들은 민중과 결별을 선언하게 되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그 정체성에 대한 확신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번은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마무리 하면서 1430년 포기우스라는 인물이 로마의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올라 황폐해진 로마시 전역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회로 자신의 대작을 마무리 한다. 아이네이아스와 로물로스의 건국으로 시작된 로마가 공화정과 제정을 거치면서 해가 지지 않는 세계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정작 지금 포기우스의 눈앞에 서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패허나 다름없는 쇠잔한 정경으로만 다가온 이유를 기번은 티투스의 원형경기장으로 잘알려진 콜로세움의 붕괴 과정을 네가지 이유를 상정하여 설명하고 있다. 

 1) 시간과 자연에 의한 훼손
 2) 야만족과 그리스도교도들의 적대적 침략
 3) 건물 자재들의 도용과 남용
 4) 로마내부의 분쟁 

기번은 특히 위의 4가지 요인중 두번째와 네번째 요인에 주목하고 있다. 야만족으로 대변되는 알라리크와 가이세리크의 병사들이 승전의 열정에 취하여 무분별한 탐욕과 잔학함을 휘두르긴 했지만 그들이 주 목적은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귀중품이었지 집정관들과 황제들이 남긴 기념비들을 철저히 파괴하는 무익한 행동은 아니였다.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눈에는 악마의 조각상이나 제단, 신전들은 모두 증오의 대상이었고 로마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선조들의 우상 숭배 흔적을 없애기 위해 열과 성을 다 바쳤고, 다만 신앙의 논쟁거리에서 살짝 비켜간 공공건물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그만큼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현격히 살아지면서 세상을 이분법적인 잣대로만 생각한 후대인들의 로마계승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대략 4천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과 본문에 맞먹는 주석으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일반 독자들에게 그야말로 고리타분한 고전으로 인식되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나가기에 상당한 인내와 고통을 수반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여기에 로마제국의 번성기를 다루는 내용도 아닌 쇠망기를 다루다 보니 역사적 인용자료가 방대하다 못해 기번 자신 역시 긴가민가하는 주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다소 산만한 내용들과 중복되는 내용들이 상당부분 차지 하고 있는 것 역시 가독성을 저해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기번이 살았던 팍스 브리타아니아시대나 지금의 팍스 아메리카나시대에서도 로마라는 대제국에서 멀어져서 사유할 수 없는 이유를 기번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로마는 그리스도교라는 암적인 존재(물론 이 표현은 로마제국의 입장에서 해석한 말이다)가 출현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해가 질 수 없는 대 제국이었다. 도시국가에서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다름 아닌 문화와 종교를 비롯한 각종 사회제도 심지어 인종적인 편견에서 까지 모든 것을 다 수용하고 받아들인 다양성과 포용력에 그 근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사회를 잠식하면서 로마는 두 가지의 원동력을 상실한 채 선이 아니면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가치관으로 점철되면서 결국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로마는 서양역사와 문화 그리고 제도등에서 지금도 서양 대부분의 국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다만 로마死後 등장한 열강들이 진정한 포스터로마가 되지 못한 것은 로마의 진정한 정신인 다양성의 포용을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포스터로마를 자처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국가들에게 로마의 흥망성쇠는 역사속의 지는 노을이 아닌 현실속에서 엄연히 살아 숨쉬고 있는 교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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