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을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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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한쪽눈으로 봐서는 절대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파하는데 일등공신역활을 한 이덕일 선생의 새로운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가 출간되었다. 조선 27명의 군주중 태종,세조,성종,연산군,선조,광해군,인조,영조 8명의 군주를 각각 4가지 테마로 묶어 군주 자신들의 삶과 치세를 살펴보면서 후대에 많은 부분 왜곡되었던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주고 있다. 물론 이번 저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저자는 정사인 조선왕조실록과 그외의 역사적 사초를 근간으로 역사책은 글자를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앞뒤의 정황과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동안 우리의 역사적 시각은 바로 이러한 역사서를 있는 그대로의 문자로만 앞뒤의 시대적 배경이나 정치적 배경을 싹둑 걷어낸 골자만으로 인식되길 강요 받아 오다보니 사실상의 역사적 진실에서 한 발자국 벗어난 그야말로 자신의 역사관이 아닌 주입되고 강요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측면에서 이번 저작 역시 새롭게 조선의 군주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적절한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역사는 과거학이 아닌 미래학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사의 올바른 인식 부족이 가져오는 정치의 파탄(이는 절대군주국가였던 조선의 경우 그 패해가 더 했음은 두말할 필요성이 없을 것이다)과 그로 인한 소용돌이가 군주를 비롯한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컸던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고 그리고 미래를 살아가야 할 우리들에게 의미심장함을 넘어선 필연적인 선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지난날 조선에서 제왕학에 춘추나 자치통감등의 역사서가 필수과목이었던 이유 역시 과거의 사례를 반면교사삼아 현재를 상고하고 미래를 열어갈 수 있었기에 꾸준히 역사에 대한 관심과 성찰이 이었던 것이다, 비단 이러한 과정과 교육을 받고 보위에 올라서도 올바른 치세가 쉽지 않았던것이 바로 왕이라는 지존의 자리였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는 위정자들의 역사관과 그로 인해 파생되고 전파되어지는 담론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번 저서에서 주목해야할 군주는 다름 아닌 희대의 폐륜 군주로 각인된 연산군에 대한 평가이다. 그동안 TV사극이나 역사물 그리고 픽션등을 통해서 우리에게 연산군은 폭군이라는 두 글자로 대변되었고 절대군주시대에 상상하기 조차 힘든 신하들의 반정으로 보위에서 쫒겨나 죽임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정당한 정치적 흐름이었다고 배워 왔고 그리고 믿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흥청망청의 원조격으로 폐위되는 그 순간까지도 장녹수의 치마폭에서 해쳐나오지 못한 색마, 자신의 향락을 위해 민초들의 삶을 처절하게 짓밟은 폭군 그리고 선왕의 후궁들까지 스스럼 없이 살해한 살인마의 이미지로 연산군일기는 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실록을 바탕으로 전파된 야사는 연산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함으로서 군주폐위에 대한 정당성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과 그리고 실록을 세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연산군의 이미지에 대해서 의구점이 발견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님을 알게 된다. 연산군 이외에 또 다른 반정의 대상이었던 광해군은 끝까지 천수를 누린 반면 연산군은 폐위와 동시에 목숨까지 요구했던 것은 반정에 대한 정당성에 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점은 반정세력이 작성한 연산군일기에서도 자신들의 정당성을 전부다 세탁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찌보면 연산군의 비극의 원인은 세조의 찬시(왕위 찬탈과 단종의 죽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태종이 모든 악역을 자처하고 반석위에 올려놓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헌정질서를 송두리채 꺽어버린 세조의 등극과 그에 빌붙은 훈구공신들의 역사적 퇴행이 가져온 비극이었던 것이다. 이미 조선은 군왕의 나라가 아니였음을 연산군은 인지하지 못하였고 그나마 자신의 편인 사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사화라는 훈구대신이 파놓은 덫에 걸려서 몰락하게 된 것이지 그동안 왜곡된 연산군의 비행에 그 원인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시쳇말로 태종만큼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태종은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연산군은 그 힘이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했던 차이가 폐주로 가는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성종의 요절과 연산군의 폐위로 조선은 신하들의 나라 정확히 문신들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결국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치명적인 우를 범하면서 민중들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그들만의 국가로만 존재했던 것이다. 비단 소현세자나 이후에 정조라는 불세출의 개혁군주가 탄생했지만 이들 역시 신하의 나라에선 필요치 않는 눈에 가시였고 결국 그들의 뜻대로 제거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행태에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군주자신에게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끔 강요했다고 볼 수 도 있지만 결국 위정자의 잘못된 역사관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거울을 처다보듯이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저서를 통해서 다시금 그동안 알아 왔고 자연스럽게 인지 되었던 조선왕들과 그들의 삶 그리고 치세 및 역사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점이 역사는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이 될 수 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역사는 이를 보는 관점에서 正인 것이 反이 되고 反인 것이 正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냉철하게 살펴봐야 하는 것이고, 새가 한쪽 개로 날 수 없듯이 역사 인식이야말로 왼쪽 오른쪽을 모두 다 정확하게 살펴봐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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