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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회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김동춘 지음 / 돌베개 / 2006년 11월
평점 :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올해로서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이 지난 60년동안 대한민국 아니 한반도는 수 많은 변화속에 흘러왔다. 처음 출발당시 주권국가라는 흐릿한 개념속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의 국가개념도 변화했고 그 국가 구성원들의 가치관 역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6월 25일을 전후한 몇일정도만 한국전쟁을 그나만 흐릿하게 기억할려고 할 뿐이다. 당시 전쟁참여자나 피참여자에게는 결례되는 말이 될지 몰라도 현실은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오랜세월속에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과 한국전쟁에 대한 해석의 담론들일 것이다.
그 담론은 바로 한국전쟁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담론이자 또한 그렇게 강요되었던 담론들의 확대 재생산판이었다. 구 소련의 몰락으로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시대를 지난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도 우리는 탈냉전의 시대가 아닌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전쟁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현주소이다. 좀더 나아가 그동안 말 많았던 최초공격자에 대한 해답이 구소련의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일단된 정도이고 노근리나 거창학살사건등의 공개로 인해 전쟁의 참화와 그 패해에 대해서 잠시 거론될 뿐 여전히 반공주의에 기초한 담론에 반기를 들 수 없는 분위기이자 확정된 담론이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세기가 훌쩍 지난 시점에서 전쟁당사자중 미국과 소련, 중국등에서는 잊혀진 전쟁으로 치부되더라도 남북한 양측의 입장에서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전쟁이자 잊어서는 안되는 전쟁이기에 한국전쟁에 대한 기존의 정치학적 담론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시각과 해석이 있어야 할 때이다.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다름아닌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정치적인 담론을 걷어내고 전쟁이 사회전반에 미친 영향과 가장 큰 피해자인 민족구성원 대다수가 바라보았던 전쟁의 실상에 대해서 날카로운 해석과 그동안 정치적 해석에 묻혀있었거나 봉인받았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어 공론화의 장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 전쟁중 작전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남북측과 미군의 학살행위를 통해서 국가와 국가구성원간의 관계 그리고 이러한 학살이 발발하게 된 역사적 동기와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었던 정치적 행위, 그리고 휴전이후 냉전체제속에서 묻혀버리길 강요받았던 원인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고 이러한 해석은 그동안 알고 있었고 알기 강요받았던 우리 대부분의 기억들과 상당하게 상반되는 해석이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이제 우리사회도 이러한 새로운 해석에 주목해야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새로운 해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전쟁에 참여를 강요당했던 민족구성원 대다수가 가장 큰 피해자로 남았기 때문이다. 일부 보수층에서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는 맥아더는 1954년 한 세미나에서 "한국이 우리를 구해 주었다"라고 밝혔고 커밍스는 뉴딜이 금세기 미국의 제1차 국가부흥의 계기였다면 한국전쟁은 제2차 국가부흥의 계기였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일본의 전 수상 요시다 시케루 역시 한국전쟁을 두고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하였을 정도로 한국전쟁은 남측의 국민이나 북측의 인민과는 전혀 무관한 그들만의 축제의 장이었다. 그리고 이런 축제의 장에서 가장 큰 해택을 누린 이들은 북측의 김일성과 그 정권지지자들 그리고 남측의 이승만을 비롯한 친일세력들이었고 이들 양측의 지배층은 한국전쟁을 기화로 자신들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다졌다. 이는 휴전이후 북측이 김일성 일인독재체제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고 남측역시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반공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을 보면 확연히 들어난다. 사실 1950년 5월 선거에서 치명타를 받은 이승만은 한국전쟁을 가장 적절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자신의 권력창출에 이용했던 인물이기도 하면서 이후 반공 멸공의 선봉장 역활을 화려하게 해내게 된다.
그동안 북괴가 내려왔고 유엔군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고, 압록강 근처까지 올라가 통일을 앞둔 시점에서 애석하게도 중공군이 내려와 후퇴를 하게 되고 결국 38선보다 조금 위로 올라간 곳에 휴전선이 만들어졌다는 판에 박힌 듯한 기존의 공식화된 한국전쟁의 해석에서 부터 비판을 가하고 새로운 해석을 가해야 할 때이다. 결국 한국전쟁은 정치적인 논리와 상황으로 모든 공식적인 기억을 봉인해 왔던 기존의 담론에서 부터 탈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양측의 국민과 인민의 대다수는 사실 전쟁과 무관했다고 봐야 한다. 신생해방국에서 주권의 개념이 자리잡기전의 구성원들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수용키 바란다는 것 자체가 넌세스이자 억측이었던 것이다. 전쟁발발과 동시에 몇차례에 걸쳐 남북을 왔다갔다했던 통치지역에서 일반 민중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살아남는 것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그네들에게 무의미했던가를 보여주는 단편일 것이다. 대다수의 민족구성원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은 정치적인 해석보다 몸소 겪었던 전쟁의 참화만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인민군에 의한 학살, 국군과 미군에 의한 학살, 그리고 관변단체들의 보복성 학살 그야말로 동족간에 강요된 이데올로기로 인해 발생했던 피비린내 나는 삶과 죽음이라는 현실이외에는 그 어떠한 의미도 없었던 것이다.
노근리사건이나 거창양민학살사건등 이제야 정치적인 해석에 벋어나는 새로운 해석들이 하나둘 들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봉인받기를 강요당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국가라는 거대한 틈바구니안에서 묻혀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당시의 비참한 기억을 새롭게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역이겠지만 이제 새로운 해석들을 통해서 정치적인 측면이 아닌 순수한 사회적 그리고 민족구성원들 대다수의 기억들을 봉인의 틀에서 끄집어 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러지 않고서는 또다시 정치적인 해석으로 인해 묻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4.19항쟁이나 5.18항쟁을 통해서 여실히 느끼지 않았던가. 그동안 내재되었던 기억들이 묻여가면서 똑 같은 일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듯이 이제라도 한국전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해석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인 것이다.
한국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남북한의 지배집단이었고, 최대의 피해자는 참전했다가 죽고 다친 군인과 그 가족들, 이산가족, 피학살 민간인, 미군범죄의 피해자, 기아선상의 북한 주민,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인해 응당 누려야 할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대다수 남북한 민중들인 것이다. 기존의 냉전적 국가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적이면서 인간적인 시각에서 민족구성원의 차별과 고통 그리고 희생의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억울하게 스러져 간 남북한의 모든 이름 없는 그리고 기억되기를 거부당한 영령들 앞에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살아있는 모든 이들의 몫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