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국화와 칼 Picture Life Classic 4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진근 옮김 / 봄풀출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루스 베네딕트를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국화와 칼>은 일본이라는 국가 그리고 구성원들인 개개인의 일본인들에 대한 심도깊은 성찰을 통해서 베일속에 감추어져 있는 일본을 수면위로 끌어올린 베스트셀러이다. 세계적으로 3천만부이상이 번역되어 읽혀진 그야말로 일본연구에 대한 바이블같은 존재이다. 물론 중간중간에 다소 오리엔탈리즘적인 편향적인 시각이 엿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일본연구의 총화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내용면에서 진일보한 저서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국내에도 여러 출판사를 통해서 출간되었지만 사실상 독자들에게는 다소 딱딱하게 다가왔던 것 역시 사실일 것이다. 제대로 된 일본을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다가 끝까지 완독했다고 자부하는 독자나 저자가 표명하는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독자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은것은 책의 질적인 내용보다는 전형적인 출판 방식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번에 출간된 <그림으로 읽는 국화와 칼>은 그동안 독자들에게 불만족스러웠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새로운 계기로 다가오는 것 같다. 우선 저자의 생각을 간략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해를 첨부했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의 정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과 일본역사를 추론하여 내용과 부합하는 각종 그림이나 사진자료를 함께 게시함으로서 저자가 논지하는 바를 보다 효율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돋보인다.  

사실 우리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불편한 존재이자 韓민족에게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짊어준 존재로 남아있다. 비단 세월의 흐름속에 이러한 과거를 묻고자 하지만 불현듯 느닷없는 그네들의 상식을 뛰어넘어버리는 망언들을 접할때 마다 우리는 일본의 정체성에 대해서 또다른 시각으로 곱씹어 보게 된다. 도대체 그들의 머리속은 어떠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길래 이런 일들이 별다른 여과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일까? 

<국화와 칼>은 사실상 세계2차대전 당시 진주만 기습을 당하고 나서 미국이 참전하면서 착수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발되었다. 특히 미국인들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구조였고(일본을 강제 개화시킨 당사자 역시 미국이었다는 점에서 그 아이러니를 엿 볼 수 있다.물론 일본은 이것을 자신들 명예에 대한 수치로 파악했고 부던히 칼을 갈았던 것이다) 그런 일본을 정확히 파악하는 길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지름길중의 하나라는 생각으로 착수했던 용역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정부로 부터 요청을 받은 저자는 비단 적국인 일본을 직접 방문하여 샘플링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미국내에 살고 있는 일본인과 그동안의 일본관련 서적을 바탕으로 불멸을 명작을 남기게 되었고 결국 일본의 패망으로 이어진 미군정시기에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지침서로서의 역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발발하기전까지도 봉건주의 시스템을 끌고온 보기드문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었다. 중국의 경우 봉건주의는 진나라가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 막을 내렸지만 일본은 그때까지도 막부를 중심으로 지방 영주인 다이묘들을 위시한 철저한 봉건사회였다. 이러한 봉건사회의 특징이 고스란히 일본민족 개개인의 속성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명예 즉 세켄이라는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일본인의 명예는 서양인이 갖고 있는 그 개념과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47인의 사무라이>라는 인기있는 일본의 고전에서 그 단편을 보여주듯이 명예에 흠집을 받을 경우 피를 부를는 복수내지는 극단적인 자기희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일본인의 특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명예는 국가에 대한 충과 의무 그리고 의리라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만나면서 일본 특유의 정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형식적이고 내면적인 행동양식이면에 극히 개인적이고 향략적인 행동들은 오히려 명예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탈출구로서의 역활을 담당했던 것이다. 

어느 국가나 민족에게는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 극단적인 면이 바로 전쟁과 평화이다. 하지만 일본인들 처럼 그 양면성이 극적으로 표출되는 민족 또한 보기 드문 것이 사실이다. 군국주의의 절정기에 일본은 국가자체가 천황을 위시하여 하나의 병영국가였고 모든 자원 심지어 식민통치한 국가들의 자원까지 동원하여 전쟁에 목을 걸었고 모든 시스템은 날이 새파랗게 선 칼날 같았다. 하지만 패망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듯이 점령군의 주둔을 쌍수들어 환영한 민족이 바로 일본인들이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만만치 않지만 바로 이러한 특징이 일본인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전체적인 역사를 개관하면서 일본인들의 사상과 그 기원 그리고 그들의 이해하기 힘든 정서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연구하였다. 그중 명예와 의리 그리고 의무가 지금의 일본을 만든 원동력으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점을 먼저 이해하고서야 일본의 행태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지금의 시대에는 이러한 현상들이 많이 퇴색되고 변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천년동안 뼈속 깊이 뿌리잡고 있는 일련의 정서들이 쉽게 변화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이런면에서 저자가 책 말미에 예견했던 몇가지 사안들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저자는 일본인 특유의 집단적 기회주의 성향에 대해서 전후 세계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군국주의 노선을 과감하게 포기한 일본은 전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물론 이러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에도 그들 특유의 명예와 의리 그리고 의무가 개입되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저자가 지적했듯이 미국의 지원이 있으면 그야말로 호랑이등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라고 했듯이 일본은 미국의 보호아래 세계2위의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저자는 끝까지 일본에 대한 기회주의 성향에 대해서 쉽게 단념하고 있지 않다. 언제든지 예전의 신념이었던 군구주의의 가치가 재확인되면 일본인들은 바로 전향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정서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지금의 일련의 사건들을 보게 되면 정말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저자의 주장이 일본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또한 시대의 거대한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엔 지금의 시대는 많은 제약과 희생이 따른다. 하지만 역사를 상고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역사라는 수레바퀴는 돌고 도는 것이다. 그러면에서 어쩌면 화사하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국화꽃 속에는 아직도 시퍼런 일본도가 그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언제든지 국화가 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민족이 일본이라면 너무나 가혹한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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