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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사진엽서를 통해 본 시선의 권력과 조선의 이미지
권혁희 지음 / 민음사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이미지들은 오랜세월 우리들의 잔상속에 혹은 시각적인 정형화의 모습 내지는 촉각으로 와닿을 수 있는 형체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특히 형이하학적인 실체보다 뜬구름 잡을것만 같은 형이상학적인 관념들의 지속성은 인간이 존재하는한 지속될 것이고 또한 세대와 역사를 거듭 되풀이 할 수록 재편성되어 우리 인간들의 뇌리속에 꽈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특히 근세에 탄생했던 이데올로기중 제국주의와 파시즘 그리고 이로인해 보편화 되었던 식민주의의 여파는 지금 탈냉전의 시대를 넘어 세계 각국의 국가주권주의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 시점까지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는 19세기말부터 세계를 강타한 제국주의와 그로인해 붐을 일으킨 식민지건설 당시의 조선의 모습을 [풍속사진첩], [기념엽서], [각종 관광팜플렛]등 남아있는 그당시 기록문화를 통해 세계에 비쳐진 조선 바로 우리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 조선의 풍경이나 인물사진 그리고 각종 풍습의 모습을 통해서 지금까지도 세계에 각인된 <은자의 나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 탄생의 배경과 그 허실을 저자는 제국주의 시각에서 통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칼을 목에 쓰고 촬영에 임한 죄수들의 모습에서부터 우리는 심상치 않는 제국주의의 view를 짐작할 수 있다.
산업혁명의 태두와 자본주의라는 경제시스템의 촉발로 인해 서구는 합리주의 그리고 과학주의라는 일대의 혁명을 성공리에 끝내고 더이상 내수시장의 한계로 인해 이러한 선진문명을 세계 각곳에 전파해야 한다는 교조주의적 기독교와 적절히 동거한 형태로 세계 각국을 마치 자기들 안방드나들듯이 유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이전 대항해시대부터 이러한 식민주의의 역사는 태동되었지만 당시 식민지개척의 역사는 순전히 하드웨어적인 면이 강조되었다면 19세기접어들면서는 문명전파라는 왜곡된 소프트웨어가 살짝 가미되면서 오히려 그 정당성을 상호간에(제국주의 국가들) 인정하게 되는 꼴이 되어버린다. 특히 사진기술과 인쇄매체의 혁기적인 발달로 인해 거의 전세계는 리얼타임으로 소식을 접하게 된다. 서구의 이러한 패러다임은 그동안 신들의 영역에서 서서히 인간의 지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된 시점에서 문맹률의 제고와 더불어 지식충족 그리고 지배자의 일종의 이벤트로서 역활을 하게 된다.
당시 서구의 시각은 극히 제한적인 면에서만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었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으로 무장된 그들이 바라보는 동양사회의 모습은 미개, 야만 그 자체였다. 비숍여사를 비롯한 최초로 조선을 방문하고 여행기를 남긴 이들의 눈에 조선의 광경은 그야말로 비위생적이고 비문명화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들에게 동양의 문화는 그저 한낮의 신기한 현상내지는 자국민들의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사진엽서나 풍속사진을 보면 대부분이 인종학적인 특징이나 과도한 여성들의 노출사진, 그리고 비위생적으로 보일듯한 생활상등을 담고 있다. 이러한 조선의 모습은 당시 서구에서는 알려지지 않는 은자의 나라 내지는 조용한 나라라는 타이틀 타고 각인되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일본이 먼저 경험했다. 일본 역시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이러한 이미지들이 서구에 전파되었고 자신들이 대동아 공영을 외치면 감행했던 제국주의 첫발의 희생양인 조선과 중국에선 확대 재생산 이미지를 창출하면서 더욱더 왜곡된 이미지를 각인시키게 된다.
어디 이러한 제국주의적 시각이 조선을 비롯한 동양에서만 자행되었겠는가?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의 노예등을 비롯해서 식민지역사를 경험했던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겪었던 뼈아픈 일이다. 백인을 제외한 유색인종들 같은 인간이 아닌 일종의 전시물로 여겼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이야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이 있을 수 없지만 당시 세계의 절반은 그렇게 생각했고 나머지 절반역시 아무런 대책없이 그리 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이 더욱더 무서운것은 이러한 이미지의 창출들이 타자의 문화를 이해하기는 커녕 타자를 철저히 대중화 시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고 각 민족의 개개인의 특성을 마치 그 민족 국가 전체적인 이미지로 포장해 버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현상들이 제국주의가 막을 내리고 민주국가들이 탄생한 현재에도 부지불식간에 확대 재편성, 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홍보하는 이미지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갓을 쓰고 긴 곰방대를 물고 있는 노인,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 외출용 장옷을 입고 얼굴만 내밀고 있는 여인, 홍두깨로 다딤돌을 두드리고 있는 여인, 마치 연애인을 방불케할만큼의 미모를 가지고 고운 한복을 입고 있는 여인들의 이미지가 한국을 홍보하고 있는 모습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게 되는 모습들이지만 이러한 컨셉에는 제국주의 시대 서구인들이 조선을 보았던 바로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대만 바뀌었을뿐 그때와 별반 차이점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서구인들에게도 익숙했듯이 이러한 제국주의적 시각은 우리들의 잔상에도 별 저항없이 자리잡고 말았던 것이다.
그 만큼 이념, 이데올로기의 잔상들은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그 잔해들을 남기고 있고 설혹 치유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고 복제되어 은연중에 남아있는 것이다. 역지사지로 우리가 아프리카를 생각할때 역시 서구가 만들어낸 view의 영향에서 자유로울수 없듯이 우리의 모습 또한 비뚤어진 은자의 나라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스틸사진에 불과한 한두장의 사진으로도 이러한 왜곡의 이미지들이 창출되고 있는데 매체의 천국이라고 하는 현대에는 두말해야 잔소리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이미지도 어떤 방향으로 인식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금의 이미지가 결국 세계인들의 인식에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가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