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장의 귀환 - 위기의 시장경제 경제학 거장에게 길을 묻다
마크 스쿠젠 지음, 박수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작금의 경제상황에 대한 대안이나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그런 경제서적은 아니다. 필자의 집필의도중의 하나인 경제학사를 통하여 과연 어떤 방식이 가장 경제적인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픈 심정에서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하여 지금의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의 경제학 전반의 역사를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존 케인스라는 3명의 거장을 통해 경제학사의 흐름을 파악하게 하는 책이다.(물론 필자 개인적인 사상의 가미가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경제학이란 학문자체가 일반인들이 접근하고 이해하기엔 왠지 거리감이 많은 학문임에 틀림없지만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알아야 할 학문 역시 경제학이다. 그동안 막연한 논쟁중심의 경제학에서 수학을 도입한 계량경제학의 발달로 인하여 오히려 일반대중에겐 더 난해한 학문이 되어 버린 것 또한 사실이지만 전반적인 경제학사의 개괄을 통해 경제학의 태생에서 부터 발달과정을 한눈에 보여 준다는 필자의 의도는 일단 성공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인 편견을 제외하고는 경제학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는 많은 도움이 될 만하다.
애덤 스미스 의 <국부론>은 그야말로 일대의 혁명적인 사상을 전파하였다 기존 중상주의자들의 논거를 한방에 날려버리고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구축한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 또한 그의 자연적 자유에 의한 자유경제라는 개념과 ’공정한 관찰자’의 정의와 자유, 경쟁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완전균형을 이룬다는 이론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사고였다. 비록 스미스의 고향인 영국에서는 맬서스나 리카아도, 밀에 의해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프랑스의 세이을 비롯한 학자들에겐 복음과도 같은 이론으로 전수되었고 이후 이들에게 우리는 고전학파라는 타이틀을 부여하게 된다.
하지만 스미스의 이론은 어떻게 성장하는가에 촛점을 맞추었다면 리카도는 성장보다는 분배라는 입장에 촛점을 맞추면서 마침내 한 획을 긋은 인물을 탄생케 한다. 바로 카를 마르크스, 계급투쟁과 노동가치설을 주장하면서 국가개입을 강력하게 주장한 그는 결국 자본주의 자본주의 자체의 결함으로 망하고 사회주의로 전개될 수 밖에 없다는 이론을 설파하면서 사회의 큰 파장을 불러오게 되고 결국 나중에 발생하게되는 전제적사회주의의 폐배를 본의 아니게 고스란히 안게 되는 불명애를 가지게 된다.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신고전학파가 등장하게된다. 한계효용이론과 화폐수량설을 이론적 무기로 장착한 그들은 마르크스의 이론을(특히 노동가치설)을 격파하면서 다시금 시장경제를 불활시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세계는 유사이래 없었던 대혼란을 겪게 된다. 대공항을 맞이하면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이가 바로 존 케인스이다. 기존의 고전학파, 신고전학파의 이론을 무시하고 정부의 역활만이 기나긴 불황을 타계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나섰고 그 해법은 맞아 들어가 길고긴 대공황의 막을 내리게 한다. 이 후로 대세는 케인스주의가 세계경제를 이끌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의 등장으로 인해 케인스주의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게 되고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루커스의 합리적 기대이론, 뷰케넌의 공공선택이론의 등장으로 케인스주의는 심각한 파국을 맞게 되면서 작은 정부가 마치 유행처럼 전세계를 강타하게 된다. 물론 기존의 케인스주의를 보완한 스티글리츠을 필두로 한 신케인스학파가 등장하여 경제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양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소련의 몰락으로 인해 마르크스주의가 동반으로 몰락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마르크스의 사상을 연구하고 그의 저작을 이해 할려고 하는 이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략하게만 봐도 경제학사는 많은 굴곡과 변화를 거쳐왔다. 그 시대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이론과 학파가 등장하여 발생하고 있는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해 분명히 노력했고 그 노력의 결과물을 한시적이지만 세계가 공유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은 경제학사를 전반적으로 정리한면에서는 긍정적인 평점을 받을수도 있게지만 필자가 신자유주의입장에서 집필하다 보니 무게의 중심이 상당히 신자유주의쪽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제사로 기우러져 있다는 점이 애석하다. 특히 마르크스나 케인스의 극히 사적인 부분(마르크스의 사생아 출산, 케인스의 동성애적인 성적편견, 경제학사전에 스미스보다 케인스나 마르크스에 대한 설명부분이 좀 더 길다는 점등)들 까지 언급하는 것은 경제학사를 다루는 책으로서는 적절치 못할 정도로 개인적인 감정이 표출된 부분이다. 그러면 그리도 자유무역을 주창했던 스미스가 말년에 밀수와 관세를 담당하는 세관고위직을 역임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가 난감해진다. 마르크스나 케인스의 이론은 그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고 그 이론들은 지금의 시각으로 논평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필자의 극히 개인적인 견해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보여 진다. 특히 서두에 필자가 밝힌 이들 3인에 대한 서열나열방식 또한 수긍하기 힘든 것이다.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라는 대학자들을 1,2,3등이라는 서열로 나열한다는 발상 또한 유아적인 발상이 아닐까 한다. 결국 이러한 논리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양산할 수 밖에 없는 논거를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는 마치 산불이 번지듯이 거칠것 없이 전세계적으로 전파되어 우리의 경제까지 위협하고 있다. 1930년대 시작된 대공황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에 필적할만한 경제위기상태라는 것은 신케인스주의나 신자유주의자 다들 인지하고 있는 현실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살아가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계화라는 시장자유화 조치로 인해 전염성이 과거?? 있다. 그런면에서 정책입자안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의 사고방식 또한 과거에 비해 많이 복잡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위기상황을 신자유주의 입장에서 보면 정부의 왜곡된 시장개입이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신케인스주의 입장에서 보면 보다 적극적인 정부개입이 소홀했기 때문에 이런 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지금도 정부정책을 가지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명확한 해답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바로 절대라는 개념이다. 특히 경제처럼 유동성이 활발한 분야에서 절대주의라는 고집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을 역대 경제이론이나 학파들의 주장을 통해서 확인하지 않았는가? 국가개입주의 극단을 달린 전체사회주의 몰락을 보았고 신시장자유화를 복음으로 선택한 라틴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의 경제위기를 두 눈과 온몸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이런 경제정책의 실패는 무슨 무슨주의를 채택하는냐를 앞서 무슨 무슨주의만이 대안이라는 절대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인한 폐해였던 것이다.
우리가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알프레드 마샬이 말했듯이 인간의 일상생활에 유익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치로서의 학문이 경제학인 것이지 경제학의 각종 이론으로 인해 절대주의자를 양산하는 그런 학문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연구하는 철학, 사회학, 인문학, 역사학, 논리학, 자연과학등은 바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학문들이다.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중에 기본일 것이다.
경제는 시시각각 그 모습을 바꾸면서 변화한다. 이 말은 경제학에 대한 절대주의적 가설이나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 말인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사를 보면 각종이론과 각종학파가 존재했던 것 아닌가. 물론 대표적인 이론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개방성은 적어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포용과 개방성이 없는 학문은 죽은 학문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미스나 마르크스, 케인스가 주장했던 진정한 의도를 우리가 곡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