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5 로마제국쇠망사 5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김혜진.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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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쁘게 달려온 기번의 로마 제국 서술은 이제 그 대단원의 막을 기다리고 있다. 포카스를 제위에서 밀어내고 헤라클리우스 황조를개창한 헤라클리우스에서 앙겔루스 황조까지의 대략 600여년간의 비잔티움 황실사를 기번은 간단 명료하게 한장에서 고찰하면서 개괄적인 로마제국 쇠망사의 결말을 도출해내고 있다. 물론 이 600년이라는 기간을 쳅터 하나로 마무리했다면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세간의 많은 역사서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번은 마지막 권에서도 기번만의 특유한 관점에서 로마 제국사를 고찰하고 있다. 비단 이 기간동안 역사적 사초의 부족이나 그간 알려져 왔던 수 많은 황제들의 치세를 다루는 것보다는 로마제국의 쇠망의 길에서 등장하게 되는 주변민족, 국가들의 흥망성쇄를 고찰하여 로마제국의 쇠망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교량역활을 자인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권의 키포인트라고 해야겠다. 


우선 로마황제중 배교자로 악명을 떨친 율리아누스에 버금가는 혹평을 받고 있는 성상 파괴자 레오4세와 레오 사후 자신의 아내인 이레나에 의해 다시 성상숭배라는 광기로 치닫는 교회사를 거론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쇠망을 다루고 있다. 또한 이미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이탈리아, 갈리아를 비롯한 기본 서로마제국의 패권을 역시 교회와 접목시켜 고찰한 점에서 기번의 날카로움을 엿볼 수 있다. 서로마제국 멸망이후 동로마제국 황제의 간헐적인 정치적 간섭을 받았지만 이미 이곳은 로마교황의 개인적인 영주로 자리 잡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후 롬바르드족의 왕인 리우트프란드의 일시적인 간섭이 있었지만 로마교회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고 그 파트너로 프랑크왕국의 대표주자인 카롤링거 왕조의 샤를마뉴가 선택된다. 로마교회와 사를마뉴의 조합은 동로마제국이 이미 포기해버린 형제의 땅을 효과적으로 아주 시의적절하게 통치 해나가게 된다.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시조격인 오토1세의 등장으로 프랑크왕국이 역사의 뒷편으로 살아져가도 여전히 한쪽의 파트너는 로마교회였다는 점에서 기번은 "교회와 국가의 영웅들은 공적 또는 사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어 단결했으며, 그들은 패배자들을 짓밟으면서도 아주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체하였다. 결국 교회의 통치권은 그들의 지상에서 천 년의 경외로까지 확장되었고 그들의 고귀한 호칭은 그들이 노예 신분에서 풀어준 대중이 자유롭게 선택했다"라는 논평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즉  교황과 카롤링거 가의 상호 의무는 고대와 근대 국가, 교회 역사의 중요한 연결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탈리아 정복에서 이 로마 교회의 옹호자들은 좋은 기회, 그럴듯한 명분, 대중들의 소망, 성직자들의 기도와 술책을 얻었다. 하지만 로마는 롬바르드 왕국의 개입으로 로마의 안전을 위협 받은 반면 자유를 보장 받았지만 이들이 살아지고 난 뒤로는 그나마 보장되었던 자유마저 불안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사기는 언제나 약하고 교활한 인간들이 사용하는 수단이다. 힘은 세지만 무지했던 야만족은 교회가 파 놓은 책략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 그만큼 교회는 이들보다 한층 더 세련되고 현란한 수사를 종교적 힘을 뒤업고 행사했던 것이다. 바티칸은 로마 교회의 권익을 증진시킨기 위해서 경우에 따라 다양한 허위 또는 진실한, 부패한 혹은 미심쩍은 행동을 하거나 숨기는 무기고이자 제작소 역활을 했다. 대표적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교령집과 기부장을 만들어 샤를마뉴에게 위대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관대함을 본받고 그의 이름을 되살리라고 훈계하고 주문했다. 이들 민족, 국가의 영웅들이 순서를 바꿔가며 자리매김을 하는 사이에도 교회는 굳건하게 자신들의 신분을 철저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레오4세이후 로마제국전역에 걸쳐 신학논쟁이 잦아들었던 점 역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사기를 한층 돋보이게 한 점도 있지만 이는 동방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광풍을 애써 무시한채로 이러한 술책과 사기들은 또 다른 다양성의 포기와 고립으로 나아가는 방편일 뿐이었다.

헤라클리우스황제 시대에 동방 즉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새로운 광풍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적그리스도라 불이는 마호메드의 등장은 세계사의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하지만 로마제국의 몰락을 가속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버린다. 결국 다양성을 포기해 버리고 전제 일신교체제로 옷을 갈아 입은 로마는 자신들의 일신교에 맞먹는 또다른 전제일신교에 의해 같은 절차를 밟으면서 서서히 몰락하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 기번은 마호메드와 이슬람교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상세한 고찰을 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그리스도교 시작에서 비하되고 왜곡된 이슬람교에 대한 기번의 인식은 상당히 진일보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지금처럼 양단의 종교적 대립으로 인한 적대적 시각과 왜곡된 인식을 볼때 기번의 무게중심이 잡힌 사관은 놀라울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호메드의 출생에서 부터 성장 그리고 정치적 성공과 이슬람세력의 유럽확장등을 통해서 한층 더 이슬람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서술해 나가고 있다. 당시 유럽사회의 지배적이었던 시각에서 벗어나 마호메드의 사상과 그의 치적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특히 그리스도교에서 벌어졌던 살육이나 정복에 비하면 이슬람의 그 농도가 더 우호적이었다는 점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번은 이슬람 역시 전제일신교라는 점에서는 그리스도교만큼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배제해버린 사회의 결말은 그 끝을 보지않더라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 기번의 주장이기도 하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오현제시대로부터 앙겔루스황조시대까지의 로마제국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대저작이다. 기존의 역사서와 차별화되는 점은 다름 아닌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기번은 이러한 세계사적으로 대제국이었던 팍스 로마나를 달성한 제국이 어떻게 쇠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가에 그 촛점을 맞추고 그 과정을 서술하였다는 것이다. 대게의 역사서에서는 소상히 다루지 않는 가려지고 숨겨진 어두운 분야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는 점이 여타의 역사서와 다른 점이다. 기번은 카이사르가 진두지휘 하고 아우구스투스가 발판을 마련하고 오현제에 의해 그 정점에 올라던 제국이 멸망한 가장 큰 원인을 바로 로마제국 내부에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외침보다는 바로 제국이라는 제도를 고안했고 유지할려고 노력했던 역대 황제들의 포용성 즉 다양성을 포기하면서 로마라는 대제국은 서서히 죽음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그리스도교라는 전제일신교의 탄생과 성장을 비교해 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도시국가와 공화정시대를 거치면서 로마라는 작은 국가가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군사,제도,정책등의 하드웨어가 아니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는 세계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성을 용인했기 때문에 제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길을 통해서 물질과 더불어 문화,종교까지 로마로 통했고 로마는 이러한 이질적인 문화,종교에 대해서 넓은 아량과 관용으로 포용했던 것이다.

이것이 카이사르가 고안했고 아우구스투스가 확립한 로마라는 제국의 실체였던 것이다. 이러한 장점은 그동안 팍스라는 미명하에 세계사를 뒤흔들 몇몇 국가들과 비교하면 로마제국의 다양성이 그 얼마나 위대하였는가를 더 실감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은 기번이 살던 당시의 팍스 브리티아나나 지금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는 미국에게 던져주는 강력한 메세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양성이 결여된 일방적인 그 어떠한 체제나 정책 그리고 문화는 역사적 퇴보를 면할길이 없다는 점을 우리는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서 다시금 재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지금의 스토리텔링식의 역사서와는 비교가 되질 않을 정도로 고리타분한 맛을 가지고 있다. 원문과 맞먹는 방대한 주석을 통해서 책읽기의 괴로움을 배가 시켜주기도 하지만 기번의 저술의도인 제국의 쇠망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그리스도교의 상세한 서술과 그로 인한 다양성의 쇠퇴 그리고 제국의 몰락을 따라가는 여행은 왜 우리가 역사서를 읽어야 하는 가에 대한 해답을 주는 저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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