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3개 지상파 방송사의 메인 뉴스에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국상고사에 대한 확고부동한 논지가 재정립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이 단체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국민의 혈세로 설립된 단체이다)에 의하면 역사적인 사초와 기존 주류학계의 일목요연한 논지를 받아들여 우리 상고사의 결정적 KEY를 쥐고있는 浿水(패수)의 위치비정을 대동강이 아닌 한강으로 봐야 타당하다는 논지를 펼치면서 한사군은 분명하게 한반도내 한강이북에 존재했다는 기존의 정설이 확정되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행해진 독립무장항쟁에 대해서 국권회복운동이냐 對테러리즘의 일부이냐에 대한 견해도 금명간에 확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왔지만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동안 분열된 국론이 말끔히 정리됐다. 과거가 무엇이 중요한가 지금 현실이 중요하다. 특히 어린 학생들은 반응은 한결 더 하다. 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는 거랑 집에서 아버지께서 말해주는 역사가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혼란스러웠는데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네요. 뭐 독도고 고구려고 우리역사나 땅이 아니면 어때요 지금 대학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겐 별 도움이 안되었는데 잘된 일이죠" 의외로 한국희극인협회는 성명을 통해서 이보다 더한 코메디는 없었다라는 짧막한 논평을 냈다.』 상기의 내용은 가상의 기사이고 인터뷰이다. 물론 말도 안된다는 허튼 소리라고 할 지 모르나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사실은 우리 현실속에 버저히 존재하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어쩌면 이런 내용은 현재 대한민국 주류사학계에서는 내심 은근히 바라고 있는 기사일지도 모른다. 뭐 이렇게 생각하면 억측이나 기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세계사를 통틀어 우리민족 만큼 자국역사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이 높은 나라도 드물지만 반면에 우리만큼 자국역사를 폄하하고 모르는 민족 또한 눈을 씯고 찾아봐도 없다. 또한 학계가 양분되어 어디까지 내땅이고 어디까지가 남의 땅이라고 갑을박론하는 나라 역시 이 지구상에는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존재할 뿐이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재야 사학자 이덕일씨는 그동안 골리앗을 상대로 고분분투하였으나 결국 거대한 허상과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집단에 의해 그의 주장이 사장되었다. 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들 세력에 대해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동안 강단과 재야 양측학계의 공방대상이었던 사안을 그대로 두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에서 범국민적인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공론화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본서가 집필된 것으로 사유된다. 저자는 본서를 통해 한국사의 가장 논쟁거리인 한사군의 한반도내 존재사실,삼국사기 불신론, 조선후기 역사왜곡,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의 격하등 크게 4가지 부분에 대한 숨겨진 진실을 토로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이나 독도의 자국 영유권 주장 그리고 지금 거의 확정 되어버린 중국의 고조선,고구려,부여등을 중국변방의 역사 편입이라는 동북공정프로젝트를 접할때 마다 마치 양은냄비가 달아오르듯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대정부 강경대응등을 외치지만 결국 약간 그것도 아주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마치 무슨일이 있었느냐듯이 잠잠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국의 내노라는 사학자들이 알아서 상고사에 대해 축소해석해주니 중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 일이겠는가. 이는 일제 강점기때라면 아마도 귀족으로 작을 내려주고도 시원치 않을 만큼 환호할 일인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크게 두 분류의 집단에 의해서 자행된 행태라고 본다. 근본 교주주의 성리학으로 무장한 노론계와 그 후손인 친일식민학자들에 의해 우리의 역사는 철저하게 그들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중국 즉 중화라면 사죽을 못쓰던 노론계에 의해 고려사와 상고사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렸고 이들의 자손들인 친일식민학자들은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아예 새로운 역사를 창출해 문학작품으로 변질시켜 버렸다. 해방이후 반민특위의 무산으로 새로운 역사인식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버린 대한민국 사학계는 결국 이들의 길러낸 제자들에 의해 학계의 머리수가 채워지면서 지금까지도 철옹성 같은 철밥통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 OECD회원국이자 G20회원국이고 세계경제 열손가락안에 들고 있다고 동네방네 홍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동북공정의 역사왜곡에 대응하라고 혈세를 투입하여 세워준 단체에서 오히려 중국사학계보다 한발 더 앞서 알아서 교통정리를 해주는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과연 이나라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나라에 사는 우리는 이러한 행태를 뭐라고 해야하나? 우리에게 역사라는 것은 과연 존재했기나 한가? 아무리 재야학계에서 중국고대문헌과 그리고 실존하는 중국의 역사유물(홍산문화유적,하가점상하층유적등)을 제시해도 이병도를 교주로 한 주류사학계의 신앙은 변치 않는다. 이러한 현실은 사학이라는 학문을 폄하시키고 젊은층으로 부터 외면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면서 결국 일반대중과 괴리되는 현상을 자아내게 했다. 결국 역사는 그들만의 역사로만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제 일회성 이벤트 형식이 아닌 좀더 먼 안목을 가지고 우리 역사 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가장 늦었다고 할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어찌보면 너무 늦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새로운 역사인식에 촞점을 맞추어 왜 우리의 역사가 반만년인가에 대한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할 때이다. 단재선생은 역사는 我와 非我의 투쟁이라고 누누히 역설했다. 지금의 시대는 과거처럼 총과 칼로 다투는 시대가 아니라 문화와 경제그리고 역사로 패권을 다투는 시대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의 역사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그 어떤 누구도 지켜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의 뼈아프고 부끄러운은 경험을 통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한줌의 흙밖에 되지 않는 집단에 의해 한민족의 역사가 뿌리통채로 흔들려서야 어찌 말이 되겠는가. 지금에 와서 당시의 대동아 통합을 캐치프레이로 내건 대일본제국을 너무나 흠모한 나머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표의문자인 한자를 음독하여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한반도내에 한사군을 일본보다 더 적극적으로 비정해 버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외모마저도 일본인을 닮고 싶었던 철없는 학자 개인을 질타하자는 것은 아니다.(이는 역사가 두고두고 그의 반민족행위를 기억할테니까 굳이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감정적일 수 밖에 없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것은 이 사람을 사학의 태두로 신봉하는 무리들이 문제가 되면 더 된다는 것이다. 진보적이고 적극적사관을 설파하는 저자를 비롯한 재야사학계를 너무 감정적인 면에 치우치고 실증사학을 배제한다고 몰아가는 그들이야 말로 정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경우인 것이다. 재야학계를 비롯하여 국민들은 단지 우리 역사의 진실을 알고져 할 따름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과연 우리 한국사에 단 한번이라도 진실이란 것이 존재하기라도 했던가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있게 강단사학계와 재야사학계가 범국민적인 여염을 받들어서 제대로된 우리 역사를 새롭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아니 새로운 구성이 아닌 있는 사실 그대로 기술되어져야 한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대체로 유교권의 국가뿐만 아니라 서양의 경우에도 한 집안의 역사를 담고 있는 족보 내지는 가계도에 대한 전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물며 한민족의 근원인 뿌리를 찾는 문제는 두말하면 잔소리일뿐이다. 우리가 스스로 찾지 않는 우리의 뿌리는 그 어느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다것이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통해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나는 저자가 이번 저서를 통해서 저자처럼 전문적인 지식으로 역사인식하자는 소리는 아니라고 본다. 단지 그동안 알아왔다고 여겨졌던 한국사에 대한 인식을 커다란 범주내에서 재고찰할 필요성을 제시해주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서산대사가 남긴 시 한편이 지금 우리 한국사 연구와 접근방법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에 대해서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 " 눈 내린 들판을 밝아갈 때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마라, 오늘 우리가 걷는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라는 말처럼 지금 한국사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의 후손들은 또 다시 남의 발자국을 보고 걸어 가야만 하는 운명에 놓일 것이다. 이 문제는 전적으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전부의 몫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