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김대중 3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한발의 총성으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또 다시 한번 요동치게 된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에 총을 쏘았다"라는 말을 남긴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최후진술처럼 그렇게 유신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은 어이없이 너무나 허무하게 저편으로 지기 시작했다. 이는 4.19에 이은 한국 현대사의 또다른 부흥을 예고하는 시발탄이었다. 유신치하에서 김대중을 비롯한 온국민은 그야말로 유럽중세의 암흑의 시대를 방불케하는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촛불만을 바라보는 처지였다. 이제 그 어둠의 장막이 거치면서 따뜻한 춘풍과 함께 서울의 봄이 오기 시작한다.

김대중과 한국현대사는 바늘과 실처럼 항상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특히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찾아오는 일련의 정치사태는 김대중을 떼어내고선 역사진행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을정도로 상호간에 많은 관련성을 가지게 된다. 긴급조치위반으로 정치활동이 중지되었던 김대중과 김영삼등의 정치인들은 박정권의 몰락으로 인해 해금조치되게 된다. 하지만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출신의 신군부에 의한 새로운 정권창출 내막을 막아내는데는 아직까지도 나이브한 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김대중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치권이 전두환에게 호의를 보이면서 그들의 음모는 일사철리로 진행되게 되었고 마침내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한국전쟁을 제외한 가장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1980년 5월 전라도 빛고을에서 발생한 광주민중항쟁은 지금까지도 사건해결이 미흡할 정도로 우린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잔혹감과 처절함은 인간이기를 거부해 버린 짐승보다 못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자행했다. 그날의 상혼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앙금으로 남아있을 만큼 많은 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버렸던 것이다. 또한 다시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일어설 기반을 상실한 채 수면밑으로 강제 잠수당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물론 신군부들의 정권욕에 대한 치밀한 계획성과 그 추진과정에서의 비도덕성을 최우선으로 질타할 수 도 있지만 결국 김대중과 김영삼등을 비롯한 정치권의 불협화음이 4.19이후 찾아온 봄날을 놓쳐버린 결과라는것에 대하여 부인할 수는 없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는 김대중의 설득을 포기하고 결국 광주항쟁과 연관시켜 내란음모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하는 또 하나의 웃지못할 희대의 코메디를 연출하면서까지 정적제거에 열을 올렸지만 결국 권력의 정통성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과 협의하에 김대중을 풀어주게 된다. 

<만화 김대중 3>는 이렇듯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질곡이 깊었던 1980년대를 다루고 있다. 정치적 해금에서 다시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언도 받고 영어의 몸으로 수감생활을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이번권에서도 DJ대한 정치적 행보와 정치역동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만 집필의도에서도 밝혀듯이 인간 김대중에 대한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김영삼계열과의 불협화음 과정이나 신군부들의 회유과정에서 한 인간으로서 받게 되는 선택의 길목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서 그도 역시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선고재판에서 재판장의 입술모양만 뚤어지게 쳐다봤다는 일화 역시 누구나 공감이 갈 수 있는 솔직한 고백이었을 것이다. 또한 수감생활에서 이희호여사에세 보내는 편지를 보노라면 위대한 정치인을 떠나 일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을 억압했던 군부세력에 대한 최후진술로 다시는 이땅에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나 청주교도소로 이감되어서 삭발을 강요했던 교도관에게 후일 대통령에 당선되어서까지 연하장을 보냈던 사연등은 비록 그의 반대편에 서있는 이들은 정치적 연출이라 폄하하지만 이는 받아 들이기에 너무나 억지주장일 것이다. 생사의 문턱에서 그의 모습은 정치인의 모습이 아닌 세상을 초월한 성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은 아무리 사상적 스팩트럼의 위치가 좌냐 우냐를 떠나서 정말 숭고한 철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김영삼의 단식투쟁과 맞물려 민추협을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고 다시금 민주주의 실낱같은 희망을 국민들에게 전해주는 단초가 된다. 1980년대는 김대중 개인이나 한국현대사 둘다 사형선고가 내려졌던 시대였다. 결국 그는 다시 살아났고 우리의 현대사 역시 다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마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처럼 초라하지만 웅장하게 민주주의는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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