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古來로부터 禁書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일반대중에게 보여서는 안되는 기록들 즉 집권계층에게는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내용들로 이루어진 책을 말함일 것이다. 하물며 한 민족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리고 그 민족의 역량이 대범치 않다면 금서는 영원히 금서로서만 남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여기 한민족의 근원의 비밀을 담고 있는 금서의 행방과 그 비밀을 파헤치는 여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 바로 <천년의 금서>이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당황하고 분노했다. 일본보다 중국측이 더 못된 짓을 자행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하지만 마지막장을 덮으면서는 낯이 달아오를 만큼 부끄러웠다. 아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마도 이런면에서 작가는 <천년의 금서>를 집필하는 동안 수 많은 고뇌의 바다속을 허우적거리지 않았나 하는 상상을 갖게 한다. 우리상고사의 뿌리인 고조선 이전의 "韓"이라는 존재를 찾아가는 여정과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비밀과 음모, 마침내 금서의 비밀을 풀고 역사의 실마리를 찾게 되지만 왠지 통쾌하다는 생각은 어디에도 들지 않는다. 그저 가슴 깊은 곳에서 한심하고 부끄러운 심정만이 눈 앞을 가로 막는다.  

 

우리나라 가장 오래되고, 공식적이면서 현존하는 역사서인 三國史記를 보면 B.C 56년경 박혁거세에 의해 신라가 건국 되고 이어서 고구려, 백제가 고대국가로서의 출발을 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다. 물론 삼국사기의 정체성에 대해선 역사학계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이런 신빙성에 대한 의혹을 보내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삼국사기는 우리의 뿌리는 고조선 및 고조선이전의 국가형태에 대해서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작성할 시기에 이미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서인 유기, 신집, 서기가 유실되었고 또한 신라를 정통으로 역사서를 서술하다 보니 초기 3국의 연대부터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후 일제감정기시대에 실증사학을 모토로 이병도를 비롯한 친일사학자들에 의해 굳어진 우리의 상고사는 그야말로 오류와 허점 투성이로 점철되어 왔다. 지금도 우리학생들의 교과서엔 이러한 자취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시각들은 어찌 보면 이미 우리들 자신들의 뇌리속에 각인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수많은 외침과 불안정한 정세속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는 식으로 자기폄하식 자조가 깃들여져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식민사관속에서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왔다. 한국가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립박물관의 역사연대표에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다. 정통강단학계에서 고조선을 고대국가로 인정하고 있질 않기 때문이다. 이유인즉 실증사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우리의 강단학계(랑케의 실증사학을 우리만큼 철저히 고수하고 있는 곳도 없으리라)의 공식적인 입장은 그 어떠한 고고학적 증거로 고조선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이러한 발상은 지금 사학계의 거두로 알려진 이병도의 역사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내선일체를 주장했던 일본학자들의 영향으로 우리 상고사를 한반도내로 확정해 버린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지금도 우리학계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단재 신채호선생을 필두로한 좀 더 나이브한 재야사학자들의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서서히 우리상고사의 실체가 하나둘씩 들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통설에 밀려있는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영유권주장에 분개하면서도 실상 그 대처방안에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 중국의 동국공정확정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의 뿌리인 상고사마저도 중국변방의 역사로 편입되어버렸다는 자체가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국의 유명한 역사학자들도 부정해 버린 역사인데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일반적인 국민적정서와 학계의 학문적 정서는 상당한 괴리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실증사학에 근거해 문헌이나 고고학적 유물로 그 확정을 지울 수 없는 현상을 학자적인 양심에서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북공정프로젝트에서 발견된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 유적발견에서 우리의 뿌리실체가 들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 학자들도 인정한 한민족의 정체성인 것이다. 이러한 명백한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학계의 입장은 그리 명쾌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과학적으로 증명할수 없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이제는 이러한 유물의 발견과 동시에 과학적 입증방법을 통해서 현실화되어 있지만 여전히 고전적인 논거에 집작하고 있는 것이 그저 서글픔만이 남는다.

작가는 이러한 우리 강단사학계의 폐단을 사학자인 여주인공이 과학적인 방법론을 동원해서 역사적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네들이 강조하는 실증사학적 접근방식이 어떤 것이며 또한 실증의 방법론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요 몇 년 사이 새롭게 발굴되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요동땅의 우리 유물들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항변일 것이다. 마치 이렇게까지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인정 못하냐는 식의...

책의 말미에 한은원교수와 보수 정통학자들간의 논쟁 과정을 보면 <시경>편의 해석과정과 <단군세기> 오성취루, 남해조수퇴삼척의 과학적 증명을 둘러싼 논쟁들이 바로 우리 학계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정말 사학자들이 꼭 한번은 읽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학문이라는 대의의 달성이라는 것 역시 사소한 부분을 무시하고선 그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我와 非我와의 투쟁이다” 라는 단재 선생의 일갈처럼 결코 우리 스스로 찾지 않는 역사는 그 어느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소설속 주인공들의 목숨을 건 사투를 보면서 느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도 일본이나 중국처럼 역사를 왜곡하자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단지 최소한의 자기의 정체성 그 뿌리에 대한 인식은 저버리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뿐이다. 우리 선조들이 피땀흘려 이룩한 역사적 자취를 후대에 이르러 외면하고 폄하해서야 되겠는가 각 가정에서 족보를 신성시 여기듯이 우리 민족이 근원인 상고사에 대한 애착이 너무나 흐려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할 뿐이다. <천년의 금서>를 통해서 작가는 또다시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반성과 자각의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역사서 한권의 의미가 어떤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뿌리는 과연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  이는 앞으로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미완의 숙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역시 김진명이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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