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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4 ㅣ 로마제국쇠망사 4
에드워드 기번 지음, 운수인.김혜진.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평점 :
로마의 눈에는 야만족 그리고 로마를 제외한 다른 시각에서는 개척자라 칭할 수 있는 게르만족의 대왕 오도아케르에 의해 정확히 로마의 반쪽이 역사속에서 사라졌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사실상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한 동로마제국은 비잔티움제국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부여받게 되지만 로마의 생명력은 자신들의 지배통치 방식 만큼이나 새롭고 끈질기게 연명하게 된다. 로마제국으로서는 최대의 위난시대였지만 달리 생각하면 새로운 출발을 위한 시의적절한 판단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를 국시로 새롭게 신장개업을 한 동로마제국의 입장에서 같은 형제이지만 이단과 이교도로 득실거리면서 그 옛날 로마 번성기의 향수에 빠져서 올바른 가치판단을 하지 못하는 형제는 이제 더 이상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였던 것이다.
서로마제국의 몰락은 이런 측면에서 보게 되면 예견된 길을 걸었고 이미 사형선고를 받는 말기암 환자에게 인공적인 생명의 연장조치로 간신히 버텨 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그 장대한 죽음을 그다치 수치스럽게 맞이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그동안 세계사를 둘러보아도 아주 온건하고 평화적인 정권교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던 서로마제국은 이제 더이상 유럽의 지배자가 아니였다는 점은 분명해진 것이다. 서로마제국 멸망이후 동쪽 끝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제국은 새로운 도약을 길을 모색하게 된다. 어찌 보면 그들 국교의 신이 위대한 하느님이 보우와사 또 하나의 대제를 그들의 땅에 내려줌으로써 다시 화려한 번창기를 맞게 된다. 그 구세주는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이다. 로마 역사상 대제라는 칭호는 받은 황제는 단 두명이다.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하고 로마제국을 기독교 제국으로 변모시키고 동로마제국의 시조가 된 콘스탄티누스대제. 그리고 서로마제국 멸망이후 의기소침해 있던 제국을 재정비한 유스티니아누스법전으로 더 잘알려져 있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이다.
이런 면에서 로마는 다른 여타 제국에 비해 그 운이 좋은 제국임에 틀림없다. 아우구스투스로 부터 출발한 제국은 휘청할 때마다 구원투수들이 등장해서 위기의 순간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게임을 마무리 짓는 형태를 보여주었다. 오현제가 그렇고 디오글레티아누스가 등장하여 제국의 분할정치를 창안하여 안정을 찾았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구원투수의 등장으로 로마는 유리한 카드를 쥐게 된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을 운으로만 몰고 가기엔 무리가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로마제국만의 특수성과 탁월적이고 효과적인제국통치방식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비록 기독교라는 일신교가 무대의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면면히 내려오는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은 아직까지도 로마제국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기에 걸출한 황제의 탄생이 가능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진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업적은 다양한 경로와 문헌 그리고 남아서 존재하고 있는 유적들을 통해서 알고 있는 바이지만 여기서 기번의 해석은 또 다시 로마제국의 포용력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록 일신교 제국이었고 향후 기독교에 의해 대제라는 반열에 오르게 되지만 유스티니아누스는 황후 테오도라가 죽음을 맞고 말년에가서야 종교에 대한 맹신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그의 대부분의 치세 동안은 극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제국을 통치할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그 결과물들을 얻어냈다. 또한 이미 죽어버린 형제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반대를 무릅쓰고 이탈리아반도를 어느 정도 회복했고 제국내의 법을 재정비하여 흔들리던 제국을 제자리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유스티니아누스도 결국 그리스도의 단성론과 관련된 종교문제로 인해 치세 말년을 이탈리아 교황과의 한판 승부로 소진하게 된다. 기번은 이번에도 결국 로마라는 제국이 일어설수 있는 실마리마저도 외면해 버린 기독교에 대한 맹비난을 가하고 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테오도라가 유스티니아누스의 황후가 아니였다면 또한 그녀가 정치적인 성향이 약했더라면 로마제국의 앞길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이 무의미하지만 유스티니아누스의 말년과 그리고 이어지는 동로마제국의 역사를 보게 되는 충분히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네스토리우스파, 야고브파, 마론파, 아르메니아파, 콥트파등 수없이 많은 분파와 칼케돈 공의회를 통해서 신학적인 접근을 통일시켜 나가게 되지만 결국 이러한 일련의 행보가 과연 로마제국에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사를 던지게 된다. 이번 권 역시 기번은 그리스도교의 분파와 치열한 신학논쟁 그리고 신학논쟁에서 확대되는 정치분열등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전통적인 로마사상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하는 견지를 이어가고 있다.
다시한번 상고해 보더라도 로마라는 거대한 호수는 그 샘이 마르지 않고 그 어떠한 불순물이 흘러들어와도 자체 정화능력과 불순물을 불순물로 받아 들이지 않는 위대한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본적인 틀에서 로마라는 제국은 다양한 고난속에서도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형제의 한쪽을 잃고 홀로 남은 동로마 제국 역시 자신의 근본적인 사상에서 너무 멀리와 버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잠시 나마 유스티니아누스의 제동으로 그 물결을 멈출 수는 있었지만 결국 거대한 일신교의 흐름을 거역하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