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꽃 1 - 2009년 제25회 펜문학상 수상작
유익서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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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춘춘시대 전국을 주유하면서 온갖 박해와 비웃음을 사면서도 그 행보를 멈추지 않는 것은 다름아닌 주나라때의 올바른 정치를 재현코져, 특히 禮를 근본으로 하는 정치를 설파하고자 하였다. 물론 당시의 세인들은 이러한 공자의 시도를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폄하 하였다. 결국 맹자에 이어 한나라때에 이르러 공자의 생각은 빛을 보게 되었다. 공자가 주창한 예에는 음악 또한 포함되어있다. 특히 조선의 성군 세종의 경우 궁중음악인 아악을 새로이 정립하면서 중국의 음악이 아닌 조선의 음악을 갖고저 부단히 노력을 하였다. 이는 음악이란 본디 특정나라 특정민족의 정신을 반영하여야 제대로 된 음악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예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사고라는 형식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음악은 문자보다 더 먼저 이러한 사고와 감정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그 역활을 해나가고 있다. 우리가 대중가요을 들어면서 음률과 그 노랫말을 무심코 흘려듣는것 같지만 그 노래가 전달 할려고 하는 감정들은 우리의 뇌리속에 자리잡게 된다. 달리 표현해서 노래는 바로 인간들이 삶을 대변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소리꽃>은 한 歌人의 삶을 조명한 소설이다. 300여년만에 한적한 사찰의 석탑 밑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된 항아리와 그리고 가인의 일생을 요약한 목판을 통해서 진정한 자신만의 노래 그리고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노래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속 화자인 역사학자의 시각은 바로 작가의 시각이고 작가는 이러한 시선을 통해서 주인공 솔이의 삶을 그리고 있다. 녹색손님의 권유로 구곡산에서 가루라와 경주를 하고 음악의 신이 현현한 가릉빈가에게 인정받아 항아리를 손에 넣게 된지만 솔이의 고난의 역경은 바로 항아리에 소리를 담아야 하는 운명으로 결부된다. 그것도 여태까지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노래만이 항아리에 담을 수 밖에 없다는 숙명으로 다가 온 것이다. 조선 중기 인조반정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소설은 그동안 성리학에 철저히 길들여진 음율 다름아닌 조선의 것이 아닌 중국의 것을 모방한 음악일색이었다. 또한 이 음악은 바로 가진자 양반들의 사상을 대변할 뿐 절대다수인 대중의 삶은 그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솔이 역시 저절로 있었도 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노래에는 타고난 가인이었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노래 역시 전시대에 정형화된 노래였을 뿐이었다.  

판소리가 일반 평민문학을 대변하는 것은 다름아닌 일반민중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배계층의 고고한 기상이나 절개와는 다른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노래형식으로 달리 표현했을 뿐 판소리 자체가 사람들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 내용은 구구절절히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것이다. 솔이가 새로운 노래를 찾아 길을 나서 겪게 되는 과정이 바로 교방한켠과 같은 작고 죽어 있는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닌 현실 그 자체 살아있는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한다. 몰락한 양반으로 저자거리에서 이야기를 팔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전기수 대우, 반정성공으로 전도양양한 앞길이 보장되었지만 모든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진경을 그리고져 노력한 고강, 불우한 출생을 겪고 어머니를 찾아서 남사당패에 들어간 어름사니 도일, 소작농으로 어렵게 자신의 논을 장만하였으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최개동 통해서 사장된 음악이 아닌 일반대중속에 살아있는 삶을 그대로 표현한 노래를 찾아가는 여정은 눈물겨울 정도로 고난이 연속이다. 마치 평민문학인 판소리가 탄생하기 까지 그 얼마나 많은 질시와 힘겨움이 있었겠나 하는 추측을 반증하기로 하듯이...

전기수 대우에게서 전체적인 노래의 스토리 전개과정, 어름사리 도일의 몸짓에서 느리고 빠른 장단, 소작농 개동의 삶을 노래한 무녀 선이네의 간장을 녹이는 애틋함, 고강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을 바로 바라보는 눈에서 마침내 솔이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파격적인 새로운 노래를 완성하게 된다. 솔이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항아리는 바로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살 수 없듯이 노래 역시 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서양의 클래식과 팝에 익숙한 지금의 우리에게 새삼 우리의 가락 우리의 노래 판소리는 너무나 멀리 비현실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명절때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면 듣기조차 힘든 노래가 판소리이다. 흥부가, 심청가등 대표적인 판소리를 우리는 단지 권선징악이라는 유교적인 교훈이 담긴 계도적인 형태로 인식하고 있지만 판소리에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일반 대중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어떠한 새련미나 포장도 없이 그냥 그대로 사람들이 느꼈던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고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있다. 소설속 승종이 솔이의 노래를 듣고 노래가 너무 길어서 어찌 이해가 되겠냐고 반문했듯이 판소리는 이러한 삶을 담고 있기 때문에 길 수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판소리보다 진한 감동과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 만큼 판소리는 노래가 아닌 일반 대중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는 식민통치기간 내내 판소리를 폄하하고 왜곡했던 것이다. 그 만큼 판소리를 노래가 아닌 대중의 사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판소리를 비롯한 우리 고유의 노래는 관심밖의 세상에 자리잡고 있다.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우리 고유 의식 박탈은 음악이라는 장르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한번 쯤은 우리 고유 노래를 음미해 볼 여유를 가져야 할 때는 아닌가 싶다. <소리꽃>는 그야말로 노래가 꽃으로 승화한 소설이다. 동살, 돋을볕, 씨아, 생청스러운, 기직자리는 노래처럼 그리고 화사한 봄날에 예쁘게 활짝핀 꽃처럼 아름답지만 여태까지 제대로 모르고 있는 우리말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솔이가 항아리에 노래를 담듯이 작가는 소설속에 우리의 혼을 담고 있다. 마치 우리 소리의 한을 작가는 독자들 마음속에 자리한 항아리에 담고 싶어 하는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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