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3 로마제국쇠망사 3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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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연합군에 대항하여 헥토로와 더불어 최후까지 대항했던 신의 아들(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이네이아스는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과 함께 고국 트로이를 떠나 크레타,카르타고등의 유랑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이탈리아반도의 라티움에 정착하고 그 곳 왕의 딸과 결혼하여 로마라는 도시국가를 탄생시킨다. 이후 로물루스라는 왕의 시대에 들어 본격적인 틀을 갖춘 로마는 이후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제정의 시대로 접어들게 마침내 세계유일의 제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로마제국은 콘스탄티누스에 의해서 서서히 동서로 분활되면서 마침내 서기 476년 이민족인 게르만족의 왕 오도아케르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질때 까지 무려 1200이라는 세월을 영위해왔다. 물론 나머지 반쪽인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은 앞으로 1천년이라는 세월을 더 영위하게 되겠지만 본토인 로마의 함락이라는 상징성을 보게 되면 사실상 로마제국의 사형선고는 게르만족의 왕인 오도아케르에 의해서 집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지만 로마제국 건국의 아버지와 서로마 제국 마지막 황제의 이름이 로물루스로써 똑같다는 점이 뿌린자가 거둔다라는 말로 회자될 수 있을뿐 오랜 세월 제국위치에서 주변 이민족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던 제국의 수명은 바로 이 이민족중의 하나로 인해 역사의 무대에서 떠나게 된다. 

테오도시우스황제 이후 로마 제국의 황권은 동서로마를 막론하고 정말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무게의 중심이 이미 콘스탄티노플로 옮겨간 이후 서로마 제국의 황위는 그야말로 이전투구의 장으로 그네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야외경기장의 검투사게임을 보는듯한 혼탁하면서도 암투에 의한 제위 교체이외에는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 스러운 시기였다. 수많은 황제(이름조차 파악하기 힘들만큼 잦은 교체는 제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자체 그것만으로 위안을 받게 한다)들의 난립으로 후대 역사학도들의 머리만 아프게 할 뿐이다. 그나마 동로마제국은 새로운 로마제국의 적자로 부상하면서 서로마제국에 비해선 황위의 대외적인 안정감이 서로마제국에 비할수 없을 정도로 높은것 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점은 콘스탄티누스의 뛰어난 혜안으로 인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서방은 동방에 비해서 다양한 이민족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동방은 페르시아가 가장 크고 정형화된 적으로 간주되었지만 서방은 게르만족을 필두로 한 다양한 이민족들이 보이지 않고 그리고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가상의 적으로서 언제든지 목을 조를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이 서로마제국을 더 빨리 쇠망으로 몰아갔던 것 역시 사실중의 하나이다. 

그럼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서고트족의 알라리크, 훈족의 아틸라, 반달족의 가이세리크, 게르만족의 오도아케르 라는 이민족만의 요인으로 돌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기번은 당연히 부정하고 있다. 기번은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이가 이런 이민족이었지만 비단 서로마제국이라는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사망한거나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 이미 로마제국은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제국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되었다. 초기 제국의 핵심이었던 다양성이 그리스도교라는 유일성으로 대체되면서 로마제국의 근간을 뒤흔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제국은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 본국와 그외 속주와 이민족간의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으로 대제국을 경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국의 경영에는 모든 문화와 종교를 포함한 각종 제도의 수용과 인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콘스탄티누스의 그리스도교 공인과 국교화이전까지는 약간의 마찰음이 발생하더라도 유지되었던 보편적인 진리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하나를 향한 열정은 이러한 모든 다양성을 거부하게 되었도 이러한 현상은 제국 전체적으로 불협화음을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로마제국의 멸망에는 외부의 요인과 버금가는 내부적인 요인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마나 기번은 그리스도교의 착실하고 획기적인 열정으로 그네들이 야만족이라 지칭한 이민족에까지 그리스도교를 전파했다는 것이 로마제국의 쇠퇴를 가속화시켰지만 승리한 새 종교는 멸망의 폭력성을 경감시키고 정복자들의 사나운 기질을 완화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 

기번은 이번에도 그리스도교에 대한 많은 양을 배분해서 그 실상을 파헤치고 있다. 암브로시우스, 그레고리우스, 아타나시우스 는 그리스도교 정통파를 대변하는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인물들이지만 막상 그들의 실생활과 권력지향적인 삶은 후세에 과대포장되었다는 점과 수도회와 수도사의 근원과 그들의 삶 그리고 발전등을 다루면서 오히려 세상과 등지고 살아갔던 이들 수도사들이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교가 아니였을까라는 개인적인 의견도 피력하고 있다.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집필하면서 유독 그리스도교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기번의 역사관점에서 로마 제국의 쇠망사에 결정적인 카운터 펀치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교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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