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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2 ㅣ 로마제국쇠망사 2
에드워드 기번 지음, 김희용.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로마는 아프리카, 브리타니아, 도나우강주변, 달타미아,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강주변을 경계로 하는 로마제국의 정지척 심장이자 문화와 문명의 중심지였고 당시 로마제국과 변방의 국가들의 로망이었던 제국의 수도였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확립된 제정은 로마라는 도시국가를 공화정을 거쳐서 제정이라는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하는 동안 항상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불변의 법칙이라고 여겨졌다. 제정 성립당시 최초의 황제를 비롯한 초기의 황제들은 로마의 원로원과 귀족출신이었고 이후 로마제국이 특성이 다양성이라는 조수에 의해 변방 속주 출신의 황제들이 제위에 오르게 된다. 물론 제위 계승은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로마라는 제국의 수도에서 그 즉위식을 거행하고 원로원과 로마시민, 군대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으로 모든 불법적인 도발은 합법으로 당연시 받아 들려졌던 것이다(아마도 합법화하는 방법이 제국유지에 필수불가분한 역학관계를 자아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만큼 수도 로마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이러한 정치적 의미와 제국 변경의 속주민들 사이에서도 어마어마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제국 인프라적인 측면을 살펴봐도 모든 가도는 로마를 중심으로 뻗어나가 제국의 최하단의 변방까지 정비되어 있을 만큼 수도 로마는 제국의 성장과 함께 그 영욕을 같이 했다. 이러한 수도 로마가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에 와서는 거의 그 역활을 상실하게 된다. 마치 세계의 모든 문물이 빠르게 수로 로마로 집중했듯이 그에 비례하여 수도 로마의 권위 또한 빠르게 쇠퇴하게 된다. 당시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한 야만족이 잦은 로마국경 침범과 약탈로 인해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편볍적인 변혁을 꾀하게 된다. 제국을 동방과 서방으로 구분하여 공동황제 제도를 선출하고 각각의 정황제 아래에 향후 안정적인 권력이양을 위해서 부황제라는 황제에 준하는 권력구도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머나먼 제국변경을 괴롭혀온 야만족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측면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서방제국은 밀라노를 중심으로 번성하게 되고 동방은 니코메디아를 중심으로 수도 로마의 역활을 대신하게 된다. 이후 수도 로마의 역활은 원로원이 존재하는 형식적인 수도로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2>는 바로 제국의 수도인 로마의 몰락과 새로운 시대의 장을 여는 비잔티움의 대두를 사실상 로마제국의 쇠망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에 의해 대제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게 되는 콘스탄티누스의 콘스탄티노스플의 창건은 새로운 시대의 도약이 아닌 로마제국 특유의 정신이 다양성의 몰락으로 본 것이다. 이후 발렌티아누스의 선출과 발렌스의 공동통치로 인해 로마는 동서 제국으로 양분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비잔티움시대는 로마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강력한 동기가 될 것이다. 물론 당시 고트족을 비롯한 야만족으로 간주된 민족들의 끊임없는 침략과 동방의 페르시아와의 피할수 없는 대결때문에 제국의 분할통치가 불가피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결국 이러한 외침보다는 내부적인 권력의 배분이 로마의 쇠망을 더 가속시켰기 때문이다.
기번은 이번에도 그리스도교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이교도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서 후대에 대제로 일컫어지는 콘스탄티누스와 배교자라는 낙인이 찍힌 율리아누스의 치세기간을 비교 검토함으로서 그동안 일방통행격이었던 역사적 판단에 제동을 걸고 있다. 좀더 나아가서 기번은 율리아누스를 제정시대를 연 아우구스투스와 감히 비교하여 비록 짧았던 치세였지만 율리아누스의치세기간이 로마의 꺼져가는 혼을 되살린 마지막 기회였다고 단언하고 있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로마의 정신은 다양성과 그런 다양성의 포용력이었다. 이런 정신이 근간이 되어 로마는 각양각색의 민족과 이념 그리고 종교를 인정하고 그런 다양성의 화합이 제국의 버팀목 역활을 해왔던 것이었고 역대 황제들(제위의 정상적인 계승이나 찬탈은 차치하고)역시 창시자의 정신을 계승하고 철저히 지켜나갔던 것이다. 비록 그들의 치세가 후대의 비뚤어지고 편파적인 역사적 판단을 받는다고 해도 로마제국의 안정과 계승이라는 대의적인 명분에는 충실했다는 것이다. 이러면에서 그리스도교의 확장과 이를 적절히 활용한 콘스탄티누스의 등장은 새로운 로마의 첫출발이라는 형식적인 면보다는 내용면에서는 전혀 다른 로마의 출발점이기도 한 것이다. 비록 율리아누스의 일시적인 과거로의 회기가 시도 되었지만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의 흐름을 거스릴수는 없는 것이었다.
기번은 1권과 2권의 상당량을 할애하여 그리스도교의 성쇄와 로마제국의 정치구도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어 다소 개인적인 역사관의 피력으로 기우는 듯 인상을 준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편에서 로마제국의 영원한 골치거리였던 야만족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통해서 다시 한번 자신의 박식함을 독자들에게 은근히 내비치는 장을 마련해 놓고 있다. 방대한 주를 통해서 그리고 각 야만족의 기원과 의식주, 통치구도등 정치,문화,경제등 각종 제도적인 면에서 두루두루 상세한 설명을 해 놓고 있다. 고토족을 필두로한 설명은 로마와 반대편에 있을수 밖에 없는 야만족들에 대한 변명으로도 비쳐 지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철저하게 반로마적인 입장에서 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기번이 살았던 역사시대의 한계였을 것이다. 특히 페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를 다루는 장에서 기번의 오리엔탈리즘은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어 방대한 그의 저작에 흠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기번이 살았던 대영제국의 당위성을 로마제국에서 찾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기번 역시 아시아와 야만족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히려 로마제국이 바라보았던 시각보다 협소하면 협소하지 더 나을 것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로마제국는 그동안 수많은 야만족의 외침을 로마 특유의 정신으로 정복하고 회유하고 협상하면서 그 변방을 지켜왔다. 정복할때는 아주 단호하게 밀어 붙이면서 포용할때는 로마시민이나 원로원 자리를 수여함으로서 로마제국내로 흡수하였지만 국가라는 개념보다 피로 연결된 민족의 개념이 훨씬 강했던 야만족의 본성을 충족하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속에도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역사서에 새로운 장을 개척한 것 만은 사실이다. 이번 편 역시 시시콜콜한 면도 있지만 본서에 맞먹는 방대한 주석을 통해서 당시 로마시대 인물들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 되었고, 그리스도교 초기 삼위일체로 분열된 종파싸움의 내막의 진실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로마제국을 둘러싼 경쟁민족들의 삶과 명멸에 대해서 일목요연한 정리는 로마제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게끔 해주는 기번만의 보너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