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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 지식의 대통합 ㅣ 사이언스 클래식 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4월
평점 :
대체적으로 인류의 기원의 거슬러 올라 가면 지구라는 행성이 46억년전에 탄생했고 그중에서도 길게 잡아 600만년전에 영장류가 탄생했다. 좀더 현생 인류와 직접적이고 유전적인 연관성을 가진 조상은 200만년전으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물론 이는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보는 지구와 인류의 역사이고 다른 시각에서 보는 관점 또한 존재하고 있다. 근본적인 창조론을 믿고 있는 신봉자들은 지금도 지구의 역사는 대략 길게 1만년전으로 신이라는 지적설계자에 의해 하루아침에 온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숭배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상 지구의 반이상의 사람들이 이러한 믿음에 빠져 있기도 하다. 그러면 과연 어느 것이 진리인가? 우리 인류는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믿음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하나씩 그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는 중이며 아직까지도 그 해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면에서 사회생물학의 시조격인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진위여부를 가리고자 않는 이분법적인 해결방안을 제공하기 보다는 이러한 인류가 보유하고 있는 믿음 내지는 지식의 효과적인 통합적인 방안에 대한 논거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종교 그리고 종교을 뒤받침하는 신학이라는 학문체제내에서 많은 시간을 살아왔다. 또한 이러한 신학에 뿌리를 둔 철학을 비롯한 인문사회학이 주류 지식체계로 우리의 생활양식 전반에 깊이 내재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시대와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가장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사고와 지적인 의구심은 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세계를 창출하였고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과학의 위치는 새로운 범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현대인(물론 어떠한 형태의 종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유신론자들이 비상식적이라는 말은 아니다)들에게 진화론과 창조론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자체가 난센스가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또한 이러한 논쟁자체가 의미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금 이시각에도 이러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왜 이러한 비생산적인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필자인 윌슨은 우리들의 지식체계가 극히 편협한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인문학, 사회과학, 종교, 과학이라는 학문이 상호간에 연계성이 없고 자기들만의 지적회로 속에서 배타적인 생각만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수십세기에 걸쳐 전달되었고 특히 과학이라는 신규업체의 등장으로 그 배탕성은 극에 달했다고 본다. 수천년에 걸쳐 확고한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던 기존의 업체가 한순간에 자신의 고객들을 침탈해간 신규업체를 도저히 묵과할 수도 없을 것이고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신규업체역시 점유율 향상을 위해 그야 말로 제로섬게임을 펼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한때는 점유율이 역전현상도 가져왔지만 그 결과는 상대편에 대한 수많은 적개심만을 낳게 한 비생산적인 구도를 양산했을 뿐이다.
윌슨은 이러한 해답없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분법적인 지적 사고가 아닌 과학과 인문사회학의 지적인 대통합을 통해야만이 인류의 새로운 도약이 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물론 그 통합의 주도적인 견인차 역활은 두말할 것 없이 과학적 지식에 그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점 또한 잊지 않고 있다. 이런면을 보면 이 책은 과학적 사고와 지식을 기저에 둔 다소 편향적인 통합 방법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발상자체가 없었다는 점에서 보면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고 할 수 있다. 윌슨은 이 책을 통해서 인문학, 사회과학, 종교와 윤리등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도 자연과학적인 통합을 통한 한단계 발전된 지식의 통합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한다. 윌슨은 다윈의 자연선택이나 문화적 진화, 후성규칙, 지적설계자의 디자인등에 대해서 근본적인 진위문제를 논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인류와 지구의 환경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시점에서 자연과학의 오만함과 과학이외의 분야의 타성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체계로서는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들은 그야말로 극히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한 것이다. 불과 몇세기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지식이 인류가 갖고 있는 지식의 근간이 될 수는 있었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이러한 지식은 소용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들의 통합체인 지혜야 말로 지금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우울한 현실에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과 여타분야가 통합된 참된 지혜만이 지금이 복잡한 시스템속에서 인류라는 종의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는 종의 생존여부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물론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인류가 자처한 원인에 의해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심각한 위기상황에서 어느 한 분야의 단편적이고 편협된 지식체계로는 이 난국을 슬기롭게 풀어 나가지 못한다. 진정한 지식의 대통합만이 대안중에 하나일 것이다. 과학만이 지금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자체가 극히 위험스러운 것이고 또한 과학은 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 역시 무지의 소치일 것이다.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기를 살아가면서 인간성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저변에 깔려있던 시대 또한 인류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과학과 그외의 분야가 물과 기름같은 존재가 아니라 한지붕을 맞대고 살아갸야 하는 동거인일 수 밖에는 없다는 또다른 반증이기도 하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시점이다. 이 역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각종 현상을 보면 이제 독불장군식으로 자기 영역만의 지식체계로서는 현상들은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학문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영위하게 위함이며 인간의 사고체계을 확장시켜주기 위함이다. 그동안 우리는 역사을 통해서 편협된 지식체계가 가져다 준 폐악에 대해서 값비싼 댓가를 치루면서 뼈저리게 학습해왔다. 이제는 이러한 학습효과는 충분히 경험했다 볼 수 있다. 모든학문의 지식 대통합을 통해서 새로운 인류역사의 시발점을 찾아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 책은 전반적인 내용에서 자연과학에 기준의 초점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윌슨은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윤리, 종교적인 문제를 과학적인 사고체계에서 해부해 나가고 있어 다소 편향적인 지식 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견해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빠져나올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과학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한가닥만이 아니듯이 과학과 과학외의 분야가 하나로 통합된 실타래만이 지금의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이라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동안 우리가 만든 편협된 지식의 미궁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만 그 진탕속에서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