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잡영 - 이황, 토계마을에서 시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장세후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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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1501년-1570년)은 율곡 이이와 더불어 조선성리학의 대부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대표적인 사상인 이기호발설은 영남학파라는 학맥을 탄생시키면서 이이의 기호학파와 양대산맥을 형성하여 조선시대 학문번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물론 이런 학파가 단순한 학문정진을 넘어서 정치에 관여함으로서 당쟁이라는 돌이킬수 없는 부정적인 면도 보였지만 중국보다 더 깊은 학문적 성과를 발휘했던 것은 사실이다. 후대에 와서도 이황과 이이는 화폐에 등재될 만큼 우리에게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이다.  이러한 면들로 인해서 우리에게 이황은 고지식하고 원리 원칙적인 학자의 이미지로 비쳐지기도 한다. 대부분 이황을 접하게 되는것은 그의 학문적인 이론이나 정치적인 담론에 급급하다보니 한 개인의 인간성에 대한 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 이황은 대학자이기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그의 학문적 업적에 철저히 가려져 실상 인간 이황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퇴계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중에는 자식들과 주고 받은 편지나, 정계은퇴 이후 고향마을에 은둔하면서 지은 한시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주로 학문적연구성과나 정책조언등의 저술에 퇴계의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퇴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 공적인 면만을 부각하게 되었고 정작 퇴계가 일반대중으로 부터 멀어지는 사단을 낳게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퇴계의 편지집을 보게 되면 그야말로 한 인간의 애절한 모습을 보게된다. 부모의 자식사랑에서 부터 부부간의 애틋한 정,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가감없는 솔직한 감정을 볼 수 있어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점이 많아 오히려 퇴계를 알수 있는 단초가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퇴계잡영>은 은퇴 후 고향마을인 토계에 정착하면서 그간 정치적인 허탈감과 학문적인 고뇌, 선비로의 삶등을 한시로 남긴 것을 모은 책이다. 한시라는 특성이 아무래도 서찰 만큼의 개인적인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지는 못하더라도 퇴계의 개인적인 감정이 물씬 묻어있음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마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중간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한시들을 통해서 진정한 선비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고향집에서 마주하는 산천의 아름다움과 그 자연과의 친화을 담은 시는 고래로 부터 선비들이 추구했던 안빈낙도의 삶을 대변해주는것 같아 지금의 시대에 읽어봐도 몸과 마음이 참 편안한 구절들이다. 토계에서 바라본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변화를 인간의 삶에 투영시킨 시들은 삶의 의미를 재조명해주는 명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퇴계는 이러한 한시를 통해서 자신의 복잡하고 번뇌로운 감정을 드러냈을 것이다. 결국 대자연의 섭리앞에 굴복하는 모습이 아니라 동행하는 정신으로 이후 학문적 연구에 정진하고 완성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퇴계잡영>의 한시는 거의 토계마을에서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시냇물과 청명한 하늘 그리고 그 아래 푸르기만 한 산에서 풍기는 정취를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진흙탕처럼 어수선한 정치장을 떠났다는 안도감 또한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퇴계의 이러한 면들이 대학자 이황을 만든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조선시대는 학문과 정치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았다. 왕도정치라는 개념하에 성실한 학문이 곧 올바른 정치를 만든다고 믿었기 때문에 퇴계는 후학양성에 심혈을 기울렸던 것이다. 비록 그의 진정한 마음을 제대로 이해한 제자들은 드물었지만 향후 발생하는 당쟁의 원인을 영남학파의 태두인 퇴계에게 전적으로 그 책임을 물을수는 없는 것이다.
이 번 한시 모음집을 읽고 있노라면 현대사회처럼 바쁘게 살아가면서 정작 삶에 대한 한줌의 의문도 가질 수 없는 현대인들이 마냥 부끄럽게만 여겨진다. 그 만큼 퇴계는 그 자신을 학문이 아닌 자연에서 찾았다고 하면 억지로만 들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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