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苦悶)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며 애를 태운다는 뜻이다. 이 말은 세상의 이치나 도리에 대해서 자신 스스로 내적으로 번민하고 생각하고 애를 쓴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사자후를 토해 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순간마다 고민을 한다. 어쩌면 인간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고민에 잠겨서 생을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호모 페이션스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고민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고민에 대한 생각을 저자가 재일한국인 2세라는 특수한 환경속에서 자신의 근본과 자아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번민 그리고 비전이 담은 책이다. 혹자는 현대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도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발생적인 현상들이 리얼타임으로 다가오는 시대에 한가로이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과연 있기나 할까. 그 바쁜 시간을 쪼개어 설혹 고민을 한다고 해도 그 고민의 대상은 무엇일까? 출세, 밥벌이, 사랑, 돈, 자녀들 교육 쉽게 표현하자면 잘먹고 잘사는 방법이외 더 무엇이 있을까라고... 그 만큼 우리는 너무 멀리 와 있는 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이 하는 고민의 대다수가 바로 이런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세워본 적은 과연 몇번이나 있을까? 저자가 말하는 고민은 바로 이러한 자신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있다. 좀더 나아가서 자아와 타자간의 고민을 말한다. 대게 자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는 법이다. 자아에 대한 고민을 통해서 타자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어쩌면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길일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속에서 자아에 대한 정체성 고찰이 무슨 의미를 부여하냐고 할 수 도 있지만 타자와의 관계 정립을 위해서도 이러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결국 지금의 사회는 극히 개인적인 개인들이 만들어 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수백년전의 사회보다 고민하는 힘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기 고민을 통해서 타자에 대한 배려가 가능한 것이고 타자에 대한 배려는 바로 타자로 부터 나에 대한 배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자가 사랑에 대해 피력 했듯이 어떤 개인과 어떤 개인 사이에 전개되는 "끊임 없는 행위의 결과"가 사랑이기 때문에 한쪽이 행동을 취하고 상대가 거기에 응하려고 할 때 그 순간마다 사랑이 성립되는 것이며 그런 의지가 있는 한 사랑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듯이 바로 고민의 힘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고민은 나아가서 타자와의 관계 정립인 것이다. 지금처럼 황금 만능주의의 시대, 인스턴트 같은 사랑으로 충만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수렁에 빠진 자기 자신을 건져내는 힘의 원천이 될 뿐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의 키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청년시설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통해서 자아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주변인의 경계 속에서 저자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고민이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고민의 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누구나 하는 고민이지만 과연 그 고민이 누구를 위한 고민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