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
이세벽 지음 / 굿북(GoodBook)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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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는가?
이정표가 없는 거리, 이정표가 없는 지하철역 과연 어떤 세상일까 사람들은 제갈길을 찾지 못해 이쪽 저쪽을 왔다 갔다 할거이고 거리의 차량은 꼼짝하지 못하고 서있지 않을까. 아마도 이정표 없는 세상은 인간에게 또 다른 재앙으로 다가 올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하게 이정표가 사라져 제각각 목적지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 하는 것 이상의 의미이지 않을까?

우리는 산업혁명을 통해서 인류역사상 겪어 보지 못했던 부의 폭발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겪으면서 그야말로 부의 황금시대를 만끽하며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지 못하지만 그 옛날과 비교해 보면 평균이상으로 우리 인간의 생활은 살기 좋은 쪽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의 변천을 겪으면서 덩달아 우리의 물질적인 삷의 질도 대폭적으로 향상되었다. 이제 돈만 있으면 하지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과학기술의 발달과 세계화에 힘입어 우리 삶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물질적인 발전의 이면에는 인간의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자본주의 병폐가 상존하고 있다. 일명 물질만능주의라고 하는 이 병은 어느날 갑자기 인간세계에 자리잡기 시작하여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암환자 처럼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정신을 야금야금 장악하고 있다. 누구나 이런 암적인 존재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그 어느 누구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물질만능 황금지상주의인 것이다.

<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소설이다. 이정표(理程標)란 무엇인가? 이정표는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목적지를 수월하게 안내하는 역활을 하는 것이 이정표이다. 이정표는 바로 인간이 올바른 길을 가기위해 고안한 장치중에 하나로 그 옛날부터 우리 인간들과 공존해 온 일종의 삶의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이정표 그것도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지하철역의 이정표 도난사건을 통해서 어느날 갑자기 도난 당한 이정표를 통해서 지금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처음 이정표가 사라지기 시작할때의 혼란과 의구심들이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서 거대한 음모와 타협하게 되고 그 음모를 그대로 인정하게 되는 모습에서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의 명암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도심지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역에서 자본주의 경쟁세계에서 철저하게 패배당한 노숙자들의 삶과 자본이라는 거대한 힘을 통해서 세상의 부와 권력을 쥐고 행사하는 거대자본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거대자본의 내막을 알면서도 거역하지 못하고 거대자본의 그늘속에서 안주 하려고 하는 대다수의 소시민들의 행동은 왠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는 소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렇게 꿈과 희망보다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고 항변하고 있다. 바로 지하철역 이정표를 통해서 말이다. 지하철역 이정표는 작가에게 단순한 거리방향의 척도가 될 수 없다. 이정표는 다름아닌 우리 가슴의 남아 있는 꿈과 희망의 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인 것이다.
어떤이는 출퇴근길에 어떤이는 여행 목적지를 위해서 이정표를 보고 출발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꿈과 희망이라는 이정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거대자본의 상징인 황금쥐는 이러한 이정표를 없애 자기만의 지하국가를 건설한다는 거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자본만이 진실이고 정의가 되는 그런 국가를 건설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황금쥐는 모든 사람의 지표인 이정표를 없애기로 하는 것이다. 처음엔 다소의 혼란과 반대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본의 단맛을 본 이들은 아무런 저항없이 거대자본의 음모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장면은 다름아닌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따라 왔던 것이다. 그동안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수없이 많은 善과 진리가 자본속에 묻혀 버리고 매장당했으며 이러한 현실을 알면서 우리모두는 외면했던 것이다.
자본의 길에 편승하는 것만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이정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꿈과 희망이 없다. 아니 그 꿈과 희망을 도난 당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게 소소한 물건 하나라도 잃어버리게 되면 찾게 마련인데 우리는 이런 꿈과 희망을 찾질 않는다. 왜 물질적으로나 형태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지금당장 자본으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찾질 않고 그러한 꿈과 희망을 말하는 이들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실폐한 인생쯤으로 치부하는 지도 모른다.

꿈과 희망을 만들어 내는 발전소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들 자신의 몸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꿈과 희망의 발전소
를 가지고 있다. 단지 그 발전소로 가는 이정표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찾지 않는 것이다. 이 소설은 우화적이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 되어 있지만 소설을 통해서 꿈과 희망을 생산할 수 없는 발전소의 미래는 무엇이며 꿈과 희망으로 가는 이정표 없는 여정이 과연 어떤 삶인가를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언제가 우리의 꿈과 희망의 발전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어 온 세상이 꿈과 희망으로 가득차  "다음역은 꿈과 희망으로 가는 역입니다" 라는 지하철 안내방송을 듣는 것을 소망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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