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독살사건 1 - 문종에서 소현세자까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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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을 죽였는가???

법률용어중에 미필적고의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가 왕을 죽인것이다.
왕을 죽이고도 안죽인척 하는 이들, 뻔히 왕을 죽인지 알면서도 외면하는 이들, 역사에 그런적은 없다는 가르치는 이들, 그말을 사실로만 받아들이고 잊어버린 이들. 바로 이들 모두 우리가 왕을 죽인것이다. 아니 역사를 죽인 것이다. 

대한민국 정통사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말안듣는 이단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덕일님의 <조선왕 독살사건>은 그동안 항간에 떠돌던 야담수준이라고 일축했던 조선왕들의 독살설혐의에 대해서 많은 점을 시사하는 책이다. 특히 저자의 그동안 저술행위으로 보아선 이들 정통학자들에겐 상당히 눈에 거슬리는 저술중에 하나일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조선왕조실록이나 여타의 역사적 사초에 의거하여 어느 왕이 어떻게해서 독살설의 가능성이나 개연성 있었고 그래서 그동안 야사나 야담수준의 내용을 좀더 역사적 사실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생각하면는 오산일 것이다. 그동안 저자의 다른 저작에서 일관되게 피력하고 있는 사관과 일맥상통하는 점을 역시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암시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왕 독살사건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얼마전 정조대왕의 어찰이 새로이 발견되면서 이 나라의 강단학계는 또다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그네들의 주장은 바로 발견된 정조어찰이 정조독살설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증거이고 정조독살설은 산간시골에서 떠돌던 야담이었다고 일축했다. 정조독살설 부정함으로서 재야학계의 연구자에 대한 우월성을 강조했다. 물론 이는 한바탕의 해프닝을 결론지어 졌지만 이를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해방된지 60년인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식민사관에 대한 그 뿌리가 대단함을 보여 주는 사례일 뿐이라고 본다. 

저자의 의도는 바로 이러한 사관에 대한 부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조선중기부터 내려온 노론적인 입장에서의 역사관과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식민사관이 만나면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금까지 가져온 것이다. 이런 정통사관에서 보면 당연히 조선시대에 국왕의 독살설은 부정된다. 아니 있을 수도 없고 있었도 안 될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관을 우리는 그대로 강요당했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번 <조선왕 독살사건>의 완결판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잡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그런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강요하게 하는 그 이면을 엿볼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은 조선시대 국왕들의 독살의혹을 뛰어넘어 우리 한국사 전반에 걸쳐 있는 큰 숙제인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조선왕 독살사건> 살펴봐야 할 것이다.  

왜 그들은 왕을 죽였는가???

유독 군왕의 독살설이 많은 나라가 조선이다. 조선왕조는 세계사에서 보기 드물게 500여년을 넘게 장수한 왕조이다. 역대 군왕만 태조를 시작으로 27명이 제위에 올랐던 국가였다. 공식적인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거의 과반수에 가까운 군왕과 차기 대권주자가 독사설에 휘말려 있는 왕조 또한 세계사를 통틀어 조선왕조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과반수에 가까운 독살설 음모속에서도 500여년이라는 기간을 유지한 왕조 또한 눈을 씯고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러면에서 조선왕조는 대단히 아이러니한 국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정권교체의 불안정속에서도 긴 세월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라는 의구심이 자연히 든다. 바로 이점이 군왕의 독살설과 많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조선이라는 국가 태생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여말선초시대에 부패한 왕조에 대한 반동으로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뭉친 신진사대부들과 이성계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이 둘은 권력창출을 위해서 이와 잇몸 같은 존재였고 상호간에 확실한 대의명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출발한 조선이라는 국가는 시작부터 왕권과 신권에 대한 상호간에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조선은 왕자의 난을 계기로 하여 태종의 왕권이 정도전의 신권에 판정승하게 되지만 태종의 뒤를 이은 군주에게 이러한 일련의 왕권강화조치는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조선초기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인종등의 독살설 의혹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들의 가장큰 시각차이는 다름 아닌 사대부는 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사대부중의 제1일자로 간주했고 국왕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동상이몽을 꿈꾸면서 정치적 여건이 안정적일 때는 큰 문제가 대두되지 않았으나 약간의 흔들림(이는 사대부에서 공신으로 둔갑한 훈구세력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 질 경우)이 있을때는 국왕을 배제한 사대부들의 강력한 단결력을 이끌어 낸 신조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택군론에 의해 자기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행동에 나서게 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차기대권을 노리는 정치세력과의 결탁도 한 몫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의 멸망때 까지 계속된다. 차이점이라고는 신권의 중심세력이 공신, 훈구세력에서 배제되었던 또 다른 사대부들(사림들)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중심세력의 권력이동은 많은 점에서 조선초기의 양상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된다. 사림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통성리학의 기수들이었다. 성리학으로 철저히 정신무장한 그들의 대의명분은 그동안 훈구세력의 정치적 행보에 비해 많은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대의라는 큰 범주내에서 보다 확실하면서 적극적으로 왕권을 견제하였던 것이다. 

훈구세력의 몰락이 가져다 준 정치판은 사림들의 분당과 당쟁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고 이제는 대놓고 왕권에 대한 위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수많은 국왕과 차기대권주자가 독살설 이나 반정등에 휘말리게 된다. 이들은 국왕보다 같은 당파 당수의 의견을 절대시하였다. 그런 당파성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절대군주까지 교체해 버릴 정도로 대범한 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저자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보듯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군왕의 나라가 아니라 노론의 나라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그 어떠한 정책이나 인물(그가 비록 군왕이라고 하더라도)은 철저히 제거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면에 그들의 정신적 모태인 성리학의 왕도정치 실현이라는 대의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태조 이성계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지하에서 목놓아 후회를 하였을 것이다. 그만큼 사대부들의 정치적인 힘이 클 수 밖에는 없는 태생적 구조를 가졌던 것이 국왕에 대한 많은 독살설 의혹을 낳게 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독살설에 휘말린 국왕이후의 정치적인 행보를 보면 더욱더 독살설에 대한 혐의를 둘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효종의 경우 치세기간 동안 캐치플레이었던 북벌의 잔재를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행위나 정조의 개혁정치 역시 정조 사후의 반동정치에서 보듯이 국왕사후에 철저하게 선왕의 치세를 지우는 작업을 최우선시 했다는 점이 다름 아닌 그들의 행동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조선멸망의 근본원인이 무능한 몇몇의 군주에게 있다는 말을 하지만 이는 100%로 신뢰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앞서 보왔듯이 조선의 군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유일하게 태종 이나 숙종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국왕도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갈 수 가 없었다. 한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군주로 추앙받은 세종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종도 신하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정책을 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정책실현에 길게는 18여년이 걸린적이 있을 정도?정적으로 보면 이러한 왕권과 신권의 줄달리기가 성립해서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단일왕조로 장수를 했던 비결중에 하나라고 하면 그나마 위안거리일 것이다.  

<조선왕 독살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조선왕 독살사건>을 통해서 통찰해야 할 것은 다름아닌 각론적인 역사적 사실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정조대왕의 어찰(편지)이 발견되면서 학계와 언론은 흥분의 도나기속에 빠졌다. 그동안 재야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정조 독살설이 잘못된 주장이라는 근거가 어찰을 통해서 확인되었다고 하면서 모처럼 재야에 대한 판정승을 거두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하지만 흥분도 잠시뒤로 저자의 주장에 의해 독살설이 더욱더 힘을 얻게 되므로서 지금은 아주 조용한 때를 보내고 있다. 

바로 이점이 아주 큰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각론적인 관점에서 부터 시작된 왜곡된 사관이 결국 한국사라는 크나큰 정체성에 대한 위기로 대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통사학계에게는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국사교과서를 봐도 알 수 있고, 한나라의 역사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국립박물관에 가봐도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다름아닌 대한민국 사학계의 정설이다. 우리가 아무리 주장해도 통설은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저자는 이러한 식민사관의 잘못된 점을 다양한 저술활동을 통해서 지적해 왔다.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에서 부터 작게는 여인열전에 이르기 까지 그동안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식민사관의 제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저작 역시 저자의 일관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독도의 영유권문제나 중국의 동북공정을 대할때면 나라전체가 들썩거린다. 그러다가 시간만 지나면 언제그랬냐듯이 조용해진다. 그러는 동안 역사왜곡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역사왜곡은 다름아닌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다. 자국사에 대해서 일가견 있다는 학자들이 자국사라고 인정하지 않는 역사를 과연 세계의 그 어떤 나라가 인정해 주겠는가? 

조선왕 독살사건은 이러한 역사적 왜곡에 대한 빙산의 일부일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군주에 대한 위해사건은 얼마든지 있었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그 해석은 하늘과 땅차이만큼 거리감이 커지는 것이다. 흔히들 역사는 행간을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역사를 볼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바로 그 행간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그동안 가려왔다고 하면 이는 큰 문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와 같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올바른 눈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관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저서임에 틀림없다. 

누가 왕을 죽였는가? 왜 그들은 왕을 죽였는가? 조선왕 독살사건이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창공을 나는 새에게는 오른쪽날개와 왼쪽날개가 있다. 아주 단순한 논리이지만 어느 한쪽 날개로는 날수없는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가 역사를 재단하는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한쪽 날개에 의존한 역사비행을 했다면 이제는 정말 올바른 역사비행을 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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