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 고대 국가의 근원을 찾아가는 역사로의 여정
이형석.이종호 지음 / 우리책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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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게만 느껴졌던 이국땅 하지만 왠지 낯설지 않는 땅 바로 중국 요하지역이다. 이곳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지금으로 부터 기원전 7000년 현재 중국땅 내몽고 지역 적봉시 인근 소하서촌이라는 곳에 다량의 동북아시아 최초의 신석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이한 것은 흙으로 만든 사람의 얼굴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인근 흥륭와촌에서 대략 기원전 6200년경에 형성된 최대규모의 신석기 집단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신석기 유적 발굴은 여서 멈추지 않고 요령성부근 몽고족 자치현 사해유적, 상택지역, 부하지역 및 조구부지역에서 출토가 되면서 대략 기원전 4400년이라는 절대년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까지 이들 지역에서 국가라는 개념의 틀을 형성한 집단들이 형성했다는 증거는 들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신석기유적집단에서 멀지 않는곳요하지역 우하량에서 기원전 4000년전으로 추정되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대량으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바로 홍산문화라 지칭하는 유적지이다. 그리도 이어서 하가점하층문화, 하가점상층문화가 속속 발굴되기 시작한다. 이들 유적지에서 주종을 이루는 발굴내용은 결상이식옥기(귀걸이), 청동제기와 비파형청동검, 적석총, 제사를 지내는 제단등과 신분을 구분하는 무덤의 형태를 미루어 보아 고대국가의 틀을 잡았다고 확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옥기제품, 고인돌, 비파형청동검, 적석총등이 발견되므로서 그동안 고조선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달리하게 되었다. 특히 하가점하층문화의 경우 고조선의 건국연도인 기원전 2333년과 일맥상통하는 측정년도를 나타냄으로서 고조선 최초의 발상지라는 학계의 학설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또한 분묘에서 발견된 인골의 인류학상 검토를 통해 우리의 조상이라는 사실이 들어나면서 전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홍산문화에서 하강한 일부세력이 중국 대표적인 상(은)나라를 건국한 세력이었다는 사실이 고고학적증거에 의해 증명되므로서 중화주의 역사관을 견지한 중국측은 일대 혼란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결국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이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세웠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식민사관으로 뭉쳐져 있던 우리학계의 주장 역시 허구였음이 이번의 연구결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은 중국 요하지역을 거점으로 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는 것이다. 그 중심세력에 고조선이 이었고 일부세력은 남하하여 상나라를 건설했던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의 쾌거는 한마다로 신화로만 인식되었던 고조선이 고무당당하게 역사의 첫페이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  -고조선은 신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어느 기자의 보도-

상기 내용은 팩션이다. 팩션은 팩트와 픽션의 혼합어이다. 사실 같기도 하고 허구 같기도 한 것이 팩션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팩션은 팩트을 기준으로 작성된다는 것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는 실증주의 사관을 주창하였다. 실증주의 사관이란 쉽게 말해서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역사로 봐야하는 것이지 평가자의 주관적 관점이 첨가되어서는 안된다는 논지이다. 이 사관은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강단사학계의 신앙같은 존재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확하고 객관적인 역사관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실증주의의 비밀이 있다는것도 알아야 한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에 서구열강들의 왜곡된 침탈 논리로 바로 실증주의사관이 큰 역활을 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식민지시대 일본의 내선일체전략으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왜곡된 부분이 바로 우리의 상고사이다. 식민지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임나일본부설을 창조하였고 우리의 뿌리인 고조선은 한반도내에만 존재했고 그 또한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관이 일본어용학자들에 의해 뿌리깊게 설파되었다. 그런 시대에 역사교육을 받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학자 이병도를 필두로 그를 추종하는 강단학계에는 지금까지도 고조선은 신화라는 논지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게 현실이다.  

신화라는 것은 문자가 발명되기 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공통된 경험을 구두로 설파한 역사의 한 갈래이기도 하다. 권력의 신성화를 정당화하다 보니 다소 허구성 깊은 내용들이 가미되고 긴세월을 구도로 전달하다보니 내용이 가감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화를 그냥 이야기로만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신화라는 것에 담긴 축약적인 의미를 잘 파악해 보면 바로 역사적 사실을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트로이의 발굴처럼 세계적인 대발굴의 시발점은 바로 이런 신화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학계는 실증주의 사관이라는 논거로 절대부족인 상고사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고조선에 대한 평가를 해왔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발굴되지 못한 유물의 발굴로 인해 그동안 주장했던 논거가 흔들리고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편협하고 입맛에 맛는 고문해석으로 고집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이 역사왜곡을 단행한 중국의 학자들에 의해서 사실로 판명난 점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를 통해서 한민족의 직접적인 조상인 동이계열이 고대국가를 형성하였고 그 문화의 전파중 한 갈래가 중국 황하문명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 중국학자들의 의견이자 정설로 자리 잡고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 강단학계는 그 개연성은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고 부인하고 있다.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일대에서 시쳇말로 발로 차면 나오는 고인돌, 적석총, 비파형동검등의 고고학적 유물들이 산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반대로 홍산문화를 우리것이라고 주장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행간을 읽을줄 알아야 제대로 역사파악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역사적 개연성에 대해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분명 이들 지역에서 나온 유물들은 전통적인 동이계열의 유물이지 한족의 유물이 아님은 분명한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면서 우리는 먼저 고구려를 떠올린다. 고구려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것이 동북공정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동북공정의 실체는 다름아닌 이런 홍산문화를 중국의 최초 고대국가로 편입함으로써 자연히 우리가 주장하는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중국역사로 편입하는 것이다. 자연히 고조선의 맥을 있어다는 고구려나 부여 역시 중국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동북공정은 무서운 것이다. 한민족의 뿌리가 고조선에서 시작하지 않고 신라에서 출발되어지기 때문이다. 수천년의 역사가 지워지는 아주 심각한 역사침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심각성에 대해서 잘 견지하지 못하고 있다. 막연히 가끔식 민족주의 감정이 앞서서 한때 잠시남아 성토하는 선에서 끝난다. 그리고??리편이 아니다. 그런 시간속에 중국의 역사침탈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중국측에서는 적반하장으로 한국이 자국의 역사를 침탈한다고 대서특필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잃어버린(아니 포기했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상고사 고조선이나 고구려를 생각하면 항상 가슴한 구석이 텅빈것 같은 허전함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우리의 학계가 강단과 재야로 나뉘어 갑론을박하는 사이에 고조선은 이미 우리의 역사에서 이탈하고 있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국민 그것도 명망있는 학자들이 자기들 영토안에 존재했다는 고대국가의 역사에 대한 주장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동안 재야학자들 중심으로 이런 식민사관에 대한 반성과 수없는 노력으로 이제 고조선에 대한 많은 부분들이 실체를 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중국처럼 일관된 목소리는 아직도 들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교과서에 고조선에 대한 건국이라는 말을 게재하기까지 반세기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국립박물관에는 고조선이라는 명칭도 없다. 물론 중국처럼 대놓고 역사왜곡을 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역사는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 것이다.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는 일본이나 중국을 매도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들의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우물안 개구리식의 편협하고 왜곡된 사관에서 탈피하여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사관을 하루빨리 수용해야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말했듯이 "고조선 없는 한국사는 없다" 라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고조선은 신화가 아니다. 고조선은 분명한 역사이다. 이는 과학적이고 고고학적인 유물이 말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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