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찾은 고조선
이종호 지음 / 글로연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고조선은 신화인가 역사인가? 

<과학으로 찾은 고조선>은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많은 생각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니 알고 있다고 하는 우리민족 한민족의 정체성과 고조선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이나 개념들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할 기회를 부여하는 책이다. 그동안 일본 극우파들의 망언이 있을때 마다 혹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접할때 마다 민족적 자존심이라는 감정이 절로 표출되었던 우리의 역사관에 대해서 정말 차분히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 주는 책이다.  

독도의 영유권 문제나 고구려의 중국사 편입에 대해서 발끈하면서도 정작 그에 대한 준비는 전혀 없는 나라, 일국의 민족, 역사 정체성에 대한 기준의 척도라는 국립박물관에서 조차 그 뿌리의 흔적을 지워버린 나라, 그러다가 또 이런 문제가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무는 나라, 이러한 나라가 다름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마치 양은냄비에 물이 끊다가 갑자기 식어버리듯이 한때의 관심과 기억의 저편으로 흘려 보내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역사를 전공하고 연구한다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고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하다보니 정작 다른나라의 발굴과정에서 자국의 역사를 찾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나마 이러한 작태가 반복되어서 역사에 대한 끈을 아주 놓지 않은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혹독한 식민지시대를 겪다보니 여러분야에서 왜곡된 점들이 수도 없이 많고 아직도 제대로 고쳐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국권의 강탈을 넘어서 민족의 정체성 말살정책으로 한민족에 대한 근본적인 틀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학에 대한 왜곡은 그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을 흔든다는 점에서 아주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에서 우리는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식민사관으로 똘똘뭉친 학자들이 생각하는 역사관속에서 반세기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들어 재야민족사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로 인해 우리의 잃어버린 뿌리에 대한 사관이 많이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왔지만 아직까지도 강단사학계의 입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그 뿌리가 깊다.  

그런면에서 이번 <과학으로 찾은 고조선>은 의미있는 연구라고 봐야 하겠다. 강단사학계에서 그동안 마치 성서의 신앙처럼 여겨왔던 실증주의 사학에 대해 그들이 생각하는대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 제시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은 사관에 젖어있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물론 민족주의라는 감정만을 내세운 재야사학계에게도 반성의 기틀을 마련해 주는 연구이다. 비록 우리손이 아닌 중국의 손을 빌려 나온 결과이지만 이제는 양측의 학계에서 서로의 주장만을 반목하지 말고 발전적인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해주고 있다. 

우리의 상고사는 실증사학에서 주장하는대로 그 기록적 문헌이나 유적이 극히 작다. 그렇다보니 고조선에 대한 실체나 단군이 역사이냐 신화이냐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이런 점은 자칭 실증사학에 곡해를 한 이병도로부터 출발한 우리 사학계의 병패중에 하나일 것이다. 또한 한반도내로 그 강역을 비정해버린 상태에서의 연구이다 보니 그 한계가 여실히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는 사이에 다름 아닌 중국땅에서는 아주 큰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동안 중국의 역사관은 황제헌원을 시조로한 황하문명을 자국사로 인지했었다. 그러니까 황하문명을 기준으로 해서 문명이 동서남북으로 전파되었다고 하는 華夷觀을 바탕으로 국가형성의 시점을 대략 기원전 2000년경으로 추정했던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우하량 홍산문화의 발굴 그리고 하가점하층문화, 하가점상층문화의 발굴과 연구가 진행되면서 중국의 역사관은 일대 대 변혁을 갖게 된다. 바로 중화5천년이라는 신개념이 형성된 것이다. 이는 그동안의 황야문화보다 1500년정도 앞서는 시기에 그들이 오랑캐의 지역이라 생각했던 요하에서 신비의 왕국이라는 국가의 형태가 존재했다는 유적이 나오면서 수정된 역사관이다. 즉 이것이 바로 동북공정의 실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은 이지역에서 발굴된 청동기유물과 유골 그리고 분묘의 형태가 기존 중국역사관과는 동떨어진 결과를 접하고 당혹해왔다. 바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잘 알려진 비파형청동검(세형청동검), 적석총, 옥기등의 형태가 대량 발굴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골의 인류학적 분석도 중국인이 아닌 동이계열이라는 결과를 접하게 되었다. 이는 그토록 중화를 강조했던 그들에게 심한 상처를 주었지만 중국은 이들 문화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시조마저도 화하족이 아닌 동이족이라고 인정해 버렸다. 그래서 그동안 적대시 되었던 치우가 어느날 갑자기 황제와 같은 반열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익히 듣고 있는 동북공정의 실체이다. 현 자국의 영토내에서 발생한 역사는 모두가 자국의 역사라는 것이다. 단지 고구려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근원에 관한 문제이기에 더 무서운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동안 고조선의 연구에 대한 강단학계의 공통된 의견은 한반도내에서 이루어졌다. 평양중심설을 비롯하여 한사군의 문제 더 나아가 기자조선과 단군조선에 대한 부정 이는 독일사학자 랑케가 주창한 실증사학을 기초로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발견에 있는 것이다. 타국의 역사를 자국역사로 변모시키려는 나라에서 자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나라의 비밀이 발굴되었다는 현실이 정말 아이러니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선 중국학자들에게 감사라도 해야할 입장이다.

그들의 발굴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갑론을박하고 있을 나라가 있을테니까 말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 우리의 청동기시대에 대한 역사적 추정도 많이 수정이 되어야 한다. 또한 고대국가의 성립조건을 도식화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홍산문화를 통해서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한반도내에 존재하는 많은 유물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집중되어야 할 때이기도 하다. 이점은 바로 요동과 한반도의 문화적 연결성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여튼 이번 발굴과 연구를 통해서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에 대한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확인 의미를 100%를 수용할 수 있는 단계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적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중국측에서도 인정한 바이다)이다. 그렇지만 이번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해서 우리 학계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역사적 문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단군을 신화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신화라는 것은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이나 기억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홍산문화를 통해 발굴된 유물들을 유추하여 한민족 나아가 동이의 산물이라고 단정하기에도 아직까지는 무리한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단지 과학적인 큰 틀의 개연성으로 보아서 우리민족의 근원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제는 이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나갈것이가에 대해서 강단학계나 재야학계가 머리를 마주하고 노력해야 할 때임은 분명한 것이다. 개인의 조상에 대한 뿌리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이는데 하물며 민족공통의 뿌리를 찾는 일에 의견이 분분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동안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 고조선에 대한 실체가 하나 둘 씩 표면위로 나오고 있다. 이제는 이런 파편들을 잘 연결하여 성숙한 역사관 확립을 도모해야 할 때인것이다. 언제까지 왜곡된 역사관을 후손들에게 되물림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