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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함께 읽는 중국 역사이야기 2 - 전국시대
박덕규 지음 / 일송북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中國이라는 나라는 한민족인 우리와 별도로 떼어서 생각하긴에 힘이 들정로 상호간에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상고시대로 부터 종주국을 자칭하면서도 고구려의 강대함에 눈치도 보면서 또한 정치적, 문화적인 면에서 많은 영향을 준 나라가 중국임을 부인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반문하면 제대로 대답하는 이들이 없을 것이다. 어떠한 나라에 대해 가장 알기 쉬운 방법이 그 나라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바탕에 있어야 그 나라의 문화, 경제, 정치 및 민족성에 대한 파악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오랜시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중국에 대해 특히 역사에 대해 다시금 고찰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굳이 지나간 역사 그것도 남의 역사를 고찰해야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동북공정등을 필두로한 역사왜곡이 진행되는 밑바탕에는 사실상 우리가 그네들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부분 또한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춘추시대를 시발점으로 청나라까지의 중국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서가 출판되었다는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상고시대인 춘추전국, 진, 한, 삼국시대등은 우리의 상고사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유심히 지켜봐야할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명멸한 국가의 이름 또한 우리와는 사뭇 다르게 엄청나고 나오는 인물 또한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시대이지만 큰 맥락을 잡는데는 무리가 없어 보이는 책인 것 같다.
춘추오패가 자웅을 가리던 춘추시대는 오나라와 월나라의 세력팽창 및 두나라 간의 오래된 숙원과 복수를 거치면서 중국 역사의 새로운 장으로 흘러간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오나라와 월나라의 관계를 끝으로 춘추시대는 지나면서 앞시대와는 사뭇다른 방향으로 중국역사는 흘러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국시대이다. 戰國時代는 BC 403년 그러니까 춘추오패중의 하나인 진(晋)나라의 국력이 쇄하면서 진나라의 삼대가문이 자립한 삼진(위,조,한)을 시작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 BC 221년 진(秦)나라의 왕 영정이 초, 위, 조, 한, 연, 초, 제(전국 7웅)나라를 차례로 복속시켜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성립하는 시기까지를 말한다.
보통의 경우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굳이 구별하지 않고 춘추전국시대라 통합하여 고찰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유가, 도가, 법가등을 대표로 하는 제자백가라는 사상의 르네상스시대를 지칭할 경우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보통의 관례이지만 엄격히 말하면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시대상황은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할 수 있다.
주(周)나라의 통치권약화로 인한 제후들의 난립으로 인해 주왕(천자, 천왕)의 권위와 통치권은 땅에 떨어지고 사실상 제후(왕)중심의 역사였지만 춘추시대에는 그래도 주의 천자 내지는 천왕에 대한 충성과 신의라는 개념과 대의명분이 확실히 살아있던 시대였다. 각 제후국들이 서로의 강역확장과 시세확장에 노력은 하였지만 중국역사에서 누누히 강조하는 대의명분를 어느 정도 지켜면서 자웅을 겨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나라와 월나라의 앙숙관계를 끝으로 하여 전국시대로 들어오면 이러한 대의명분의 정치는 찾아보기 힘들어 진다. 전국시대라는 말에서 보여주듯이 戰爭으로 시작해서 戰爭으로 끝나는 시대였던 것이다. 가장 먼저 진(晋)나라의 분할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는 힘을 가진 대부들이 왕을 지칭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또한 진나라의 거대함을 막기위해 전국 7웅중 나머지 6개국이 펼치는 합종연횡등의 전략등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중국역사상 국가경영의 각종 전략과 전술이 가장 활발하게 제시되고 채택되고 사라진 것은 전국시대말고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전국시대는 하루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수 없는 백척간두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시대를 전국7웅들은 뼈저리게 느꼈고 온몸으로 저항했을 것이다.
특히 철기농기구의 보급으로 인해 전국시대에는 가히 혁명적으로 농업산출물이 증가함으로서 농토와 인원에 대한 필요성이 춘추시대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게 되었다. 결국 이는 국가간의 영토분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명분 보다는 실리가 앞섰던 것이다. 또한 전쟁의 방식에서도 춘추시대에 전차가 주종을 이루었다면 전국시대에는 보병과 기병으로 대체되면서 전쟁학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또한 국가기반을 다지기 위한 내치에 힘을 쓰게 되는 시기였다. 국가번영을 위해선 적국의 인재라도 초빙하는 인재등용방식은 지금의 시대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전국시대는 그동한 몇백년에 걸쳐 분할된 중국대륙이 진(秦)나라를 중심으로 서서히 통일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상고해 보면 하나가 오래되면 필히 분열이 오고 분열된 상태가 오래되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을 수없이 보아왔듯이 중국의 상고시대도 이러한 전철을 밟게 된다. 춘추오패와 전국7웅이 자웅을 가렸지만 독보적인 절대강자의 출현은 마치 한겨울을 나고 꽃을 피우는 따뜻한 봄을 기다리듯이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물밑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렇다고 이 시기가 가만히 정체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정치, 외교, 경제, 국방등의 문제에서 통일된 과정으로 성숙되어 가고 있는 시기였던 것이다. 특히 사마천의 자객열전에도 나오듯이 연나라 태자 단과 형가의 진시황 시해라는 마지막 카드마저도 결국 진나라의 중국 통일이라는 대세를 멈추지 못하게 하는 만큼 이제 통일의 기운이 성숙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전국시대는 통일이라는 대세로 가는 과도기의 역활을 톡톡히 했던 것이다. 물론 그 댓가는 상당했지만...
결국 진나라는 중국최초의 통일왕조가 탄생하게 된다. 진제국는 중국최초의 통일왕조라는 면도 중요하지만 내용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 제국이었다. 봉건제의 폐지와 군현제의 시행을 통한 중앙집권통치를 확립하면서 관권대리라는 인재채용방식을 채택하면 이후 중국역사의 가장 기본적인 정치제도의 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러한 진제국의 성립이 가능했던 것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다져지고 검토되어었던 제도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전국시대가 단지 약육강식의 시대 내지는 혼란의 대시대로만 폄하하긴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고찰할때 가장 쉽게 그리고 오래토록 기억속에 남겨두는 방식이 아마도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역사접근방식일 것이다. 특히 자국의 역사가 아닌 타국의 역사 고찰에서는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그러면에서 이 책의 서술의도는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 처럼 수없이 많은 나라 그리고 수없이 많은 군주들의 이름과 사건들 단지 년도 순의 편년체식으로 서술을 했다면 정말 감을 잡기가 힘든게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사성의의 유래와 더불어 그와 관련된 인물과 사건들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서술한 점은 중국역사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