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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신화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이충호 옮김 / 푸른숲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옛날 옛적에 그러니까 역사라는 시간개념이 없었던 적에... 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들 아주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 상당히 흥미진지한 이야기들을 다잡아서 신화라고 우리는 부른다. 그럼 신화(myth)는 무엇인가? 정말 신이라는 존재가 있어 그 신들의 이야기를 형식화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인간들이 지어낸 전설이나 우화처럼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가? 이러한 논지에 대해선 지금까지도 의견이 일치되고 있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자연세계의 여러 측면을 설명하거나 사회의 심리나 관습내지는 그 정신을 서술하기 위한 도구로 어느 특정민족의 세계관 내지는 가치관에서 기본적인 유형의 역활을 하는 초자연적 존재나 조상이나 영웅을 다루는 전통적인 옛날 이야기' 라는 점에는 수긍을 하고 있다.
이 책 <<세계의 모든 신화>> 말 그대로 세계의 거의 모든 신화를 총 망라한 신화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신화 시리즈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신화와 그리스로마신화를 포함하여 메소포타미아, 켈트족과 북유럽, 인도, 중국, 일본, 아프리카, 아메리카, 태평양섬들의 신화를 이 책 한 권으로 다 접할 수 있다. 특히 아프리카, 아메리카, 태평양신화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고 문자발명이 늦게 이루어지거나 아예 문자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관계로 수 많은 왜곡을 통해 전달되었던 점을 상기하면 필자의 객관적이고 올바른 신화추적을 높이 평가할 만 하다. 특히 그들의 불행한 역사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는 신화 복원문제는 우리의 또 다른 숙제를 던져 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신들을 접하게 된다. 창조의 신에서 부터 죽음을 관장하는 신, 그리고 신격화된 영웅신들을 만나게 된다. 각 민족별로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고 그 신들의 역활 내지는 신성이 상이 하지만, 또한 상당한 부분에 있어 공통점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지리적,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 이질감이 현대의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그 괴리감이 컸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신화속에 어떻게 그렇게도 비슷한 소재를 가진 신화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또한 가지게 된다. 이집트신화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를 보다보면 왠지 성서의 창세기를 읽는듯한 느낌을 받고, 인도신화를 읽다보면 그리스로마신화가 생각난다. 이는 아마도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자연을 보는 시각 그리고 인간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 만큼 고대 신화는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다. 단지 표현의 방식이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원형을 비교해보면 오십보백보이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찾을 수 없지만 아마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화라는 개념이 결국 인간의 역사를 대변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한 집단의 신성한 과거를 비롯해 주변 세계와 우주의 심오한 힘의 관계에 대해 그 집단이 지닌 생각이 신화라는 형태로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자발명이 있기전의 시대에 구전으로 내려온 이러한 신화들은 어쩌면 역사적비유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제정일치의 시대에 통치와 권력의 수단으로 신화가 위정자에게 당위성을 부과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을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신화를 단지 옛날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신화는 그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고스란히 담겨놓은 역사이다. 신화속에 나오는 신들의 포악함, 잔인함, 자비, 어리석음등이 결국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지 표현방식이 비유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을뿐(그래야지 신화다운 맛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신화만큼 그 민족의 가치관을 파악하기 쉬운 도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신화에 열광하는 이유 또한 이러한 우리의 모습이 아주 적절하게 투영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화는 그저 추운 겨울밤 따뜻한 난로에 오손도손 모여앉아 할머니에게 듣던 감미로운 옛이야기가 아니라 고대 인류가 자연과 삶에 대한 수많은 고민의 흔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인디언)의 사이에 전해내려오는 신화의 기본적인 맥락은 살아있는 모든것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개념이 있다. 이 말은 곧 모든 생명은 하등생물이나 우리처럼 고등생물이나 생명 그 자체로 고귀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지금보다 미개한 시대를 살았다는 이들의 가치관이 어쩌면 고도로 발달한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삶의 지혜를 던져주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신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점을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것이다.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는 역사가 있고, 그리고 전설이 있고, 종교가 들어 있다. 아마도 신화는 우리가 말로 표현이 가능한 절대진리에 가장 근접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접근 방법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신화를 갖고 있는 민족은 그래서 행복한 것이다. 신화는 그 민족의 삶의 터전이고 마음의 고향 역활을 한다. 태고시대부터 전승되어온 신화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또다른 모습을 신화라는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사람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사람이 심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것일까? 이 질문은 수천 년 동안 계속 제기돼온 질문이면서 그 해답이 없는 질문이다(종교적인 관점은 배제하더라도). 그래서 신화는 지금도 우리머리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